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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OB vs YB (7)] '이남장' 그리고 '경일옥'

칼럼니스트 조현석 승인 2019.05.07 18:58 의견 0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인 일제강점기 시절, 종로와 을지로에는 설렁탕이 크게 유행했다.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 당시 설렁탕은 매우 천박한 음식으로 취급했다. 설렁탕이 소뼈와 뼈에 붙어있는 고기로 만들어지는 까닭에 소를 잡던 백정들이나 이와 관계된 사람들이 설렁탕을 파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신분제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에는 천한 백정이 만드는 설렁탕을 천박한 음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실 설렁탕은 대중음식의 3대 조건인 ‘맛’, ‘속도’, ‘가격’ 모두를 충족시키는 음식으로 일반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다. 서민음식이었지만 고관대작들도 몰래 즐겨먹을 정도였다. 사료에 따르면 1930년도에는 설렁탕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종로와 청계천 일대에 100여개의 설렁탕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카페와 비슷한 밀도로 설렁탕집이 있었던 셈이다. 그 시절 설렁탕은 경성 사람들에게 단순히 배를 채워주는 음식을 넘어 소울 푸드와 같았다.

설렁탕은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소설과 문학작품에도 등장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에서 퇴근길 아픈 아내를 위해 사가는 설렁탕이 대표적인 예다.

오늘은 이러한 설렁탕과 관련 있는 이남장과 경일옥 핏제리아를 소개해볼까 한다.

¶ OB - 이남장

이남장은 을지로 3가와 청계천 사이에 자리한 설렁탕 집으로 1973년부터 약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설렁탕을 판매하고 있는 노포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입구에서부터 4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입구를 지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1970년대로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근처 직장인들부터 연세 많은 어르신들,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국적의 사람들이 설렁탕을 즐기고 있다.

설렁탕의 어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끓여먹었다는 선농단설과 눈처럼(雪) 진한(濃) 탕(湯)이라는 의미의 설농탕이 설렁탕으로 변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러한 설처럼 이남장의 설렁탕은 인위적으로 뽀얗지 않고 눈처럼 흰 국물에 큼직한 고기가 듬뿍 담겨져서 나온다. 다른 곳의 얇고 질긴 고기가 아닌 두툼하고 부드러운 고기다. 특 설렁탕을 주문하면 뚝배기에 이렇게 두툼한 고기를 국물보다 고기가 많을 정도로 큼지막하게 담아줘 가위로 잘라서 먹어야 할 정도다.

▲ 이남장의 고기 가득한 설렁탕 ⓒ 칼럼니스트 조현석


이남장의 설렁탕은 인위적이지 않고 사골과 소의 맛 그대로를 잘 살려내었다. 최근 설렁탕집들이 고소함을 위해서 땅콩버터나 치즈 등을 첨가하거나 심지어는 프리마를 넣는 경우도 있지만 이남장에서는 그러한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설렁탕을 절반쯤 먹다가 맛이 심심하게 느껴질 때 즈음 깍두기 국물을 넣어서 먹으면 칼칼하고 새콤한 맛으로 즐길 수 있다.

뚝배기를 가득 채우는 두툼한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서 김치와 곁들여 먹으면 왜 일제강점기 시절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도 설렁탕을 몰래 찾아먹었는지 이해가 된다. 이들도 사람인지라 고된 하루를 지낸 뒤 푸짐하고 따뜻한 국물이 간절할 때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 YB - 경일옥 핏제리아

경일옥 핏제리아는 화덕에서 구운 피자를 파는 곳이다. 설렁탕 이야기를 하다 왜 뜬금없이 피자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이곳도 설렁탕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경일옥(京一屋)은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과거경일옥 핏제리아 사장님의 부친이 운영하던 설렁탕집 이름이다.그 이름과선대께서 운영하시던 설렁탕집의 모토를 그대로 받아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핏제리아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 경일옥이라는 가게 이름은 부친이 운영하던 설렁탕집에서 따왔다고 한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을지로 3가와 충무로 근처에 위치한 경일옥은 얼핏 외관만 봐서는 피자를 파는 곳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간판도 이전에 있던 인쇄 가게에서 쓰던 간판을 그대로 써서 잘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흔히 피자나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은 외관을 고급스럽게 하지만 을지로 경일옥은 외관보다는 피자의 맛에 더 방점을 찍은 곳이다. 안에 들어가면 화덕의 열기가 토마토와 치즈의 향이 온몸 가득 느껴진다.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배우고 대회에서 수상한 이력도 있는 사장님은 정통 이탈리안 피자를 모토로 한다.

그래서인지 경일옥의 피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패스트푸드점의 피자와는 차이가 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을 쫄깃하게 구워진 도우, 진한 토마토소스, 그리고 고소한 치즈가 잘 어우러져 느끼하거나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고 산뜻하게 즐길 수 있다.

▲ 을지로 경일옥의 마르게리따 피자 ⓒ 칼럼니스트 조현석


토핑 역시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바질이나 체리 토마토와 같은 베이직한 토핑, 그리고 치즈와 화덕이 만들어내는 피자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가장 잘하는 집이라는 모토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괜한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맛으로 증명한다.

2019년의 피자, 그리고 1909년의 설렁탕은 묘하게 닮아있다. 현재도 대표적인 대중음식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100년, 2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을 받을 음식임이 분명하다. 경일옥 피자에 시원한 맥주 한 잔, 이남장에 설렁탕에 소주 한 잔하며 서민의 고된 삶을 잠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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