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미국이민_이야기(36)] 물류업에 뛰어들다(下)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5.11 09:32 의견 0

회사 전체적으로는 포워딩과 창고업이 핵심이었지만 내가 들어간 지점은 통관 위주로 포워딩 일은 많이 하지 않았다. 업무량이 많지 않으니 편하게 놀고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막상 일이 많지 않으면 눈치를 보게 된다.

나는 주로 담당하던 포워딩 업무보다 자잘하게 처리하던 통관일에 관심이 생겼다. 회사의 통관은 지점장님 본인이 미국 관세사로서 자기 라이센스를 걸고 하는 것이었다. 본사에서는 포워딩에 대해서만 관여할 뿐 통관은 순수하게 지점장님의 몫이기 때문에 가져가는 돈도 그만큼 많았다.

통관만 해서는 영업도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라 어렵지만 물류를 같이 하다보면 가만 있어도 걸리는 식의 어카운트가 계속 생겼다. 마침 지점장님도 다른 주에 또 사무실을 낼 계획이어서 이왕이면 회사 직원이 관세사 자격증을 땄으면 좋겠다고 했다.

딴 건 몰라도 책 보고 시험 치는 건 자신이 있어서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 싶었다. 알아보니 미국 관세사는 연방세관에서 직접 라이센스를 발급하는데 반드시 시민권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아직 영주권도 안 나와 노동허가증 들고 윽엑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1년 좀 넘게 일하고 있었던 때였다. 삼촌과 연결된 캘리포니아 소재 포워딩 회사가 시카고에 지점을 내기로 했다며 전담해서 운영할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이제 막 업계에 발을 디딘 처지에 감당할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본사의 베테랑들의 지휘감독 아래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고 해 용기를 내 지원했다.

포워딩으로만 먹고 사는 회사답게 업무량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이제야 진정한 짐쟁이로 거듭나는 기분이었다. 다른 물류회사 건물 귀퉁이에 책상 하나 놓고 1인다역을 하느라 많이 바빴다. 많지는 않지만 월급도 전에 비해 더 올랐고 무엇보다 포워딩 업무를 깊게 알아갈 수 있어 좋았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농반진반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공항에서 누가 픽업하느냐에 따라 평생 직업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회계사인 친구가 픽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 노릇을 하다 물류업으로 전직했기 때문에 이 법칙이 들어맞지 않은 경우다.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돌아가는 일을 가만 보면 맞을 때가 많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처음에 알게 된 직종이 평생 가곤 한다.

미국의 한인 물류업계에서는 우스개소리로 한번 이 바닥에 발을 디디면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자기 회사를 차리지 않고 월급쟁이로만 살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해서다. 언론사처럼 사람들이 자주 바뀌거나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해본다고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한다.

나도 일을 하다보니 그렇게 나쁘진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칼퇴근이 가능했고, 받는 돈도 아주 박봉은 아니어서 애들이 클 때까지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듯 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포워딩 월급쟁이로 남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딱히 뭘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냥 일이나 많이 배우자는 생각이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