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피플] '우지마라' 미스트롯 김양

"정해진 운명이야 팔자라거니 달려라 외길 인생 후회는 없다"

정영혁 강남피플 발행인 | 기사입력 2019/05/15 [09:44]

[강남피플] '우지마라' 미스트롯 김양

"정해진 운명이야 팔자라거니 달려라 외길 인생 후회는 없다"

정영혁 강남피플 발행인 | 입력 : 2019/05/15 [09:44]

▲ 강남피플 2호의 표지를 장식한 미스트롯 김양     © 정영혁 강남피플 발행인


정해진 운명이야 팔자라거니 달려라 외길 인생 후회는 없다

 

종합편성채널 예능으로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트로트 인기 부활을 꿈꾸는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의 ‘내일은 미스트롯’이 대중들의 눈과 귀 그리고 심장까지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후문에 ‘TV조선 제작진조차도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에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회 방송 후 예상을 뛰어넘어 대박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 중도 탈락이라는 안타까운 12년 차 무명 가수 김양이 단연 화제였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큰 키의 김양은 첫 방송부터 심사위원 장윤정과 친구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데스매치를 펼치는 장면을 시청하며 김양의 펜이 되었다. 음 이탈이라는 뼈아픈 실수로 김양은 무대를 떠나야 했다. 김양은 심사 결과에 승복하며 “좋은 무대를 못 보여드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계기가 될 것”이라고 겸손함을 드러내며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패자부활전에서도 끝내 김양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최종 결과 발표 후 장윤정은 곧바로 친구인 김양의 대기실을 찾아 “너무 속상하다”라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김양은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그런 장윤정을 끌어안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곡가 김경범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양에게 새로운 싱글 앨범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전에 김경범 작곡가와 안면이 있었기에 바로 전화를 했다. <강남피플>의 표지로 김양을 촬영하고 싶으니 소개를 부탁한다고. 2시간 만에 김양의 매니저와 소통이 됐고 표지 모델 제안이 승낙됐다. 지난달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강남피플>의 표지 촬영을 위해 미스트롯 김양을 만났다. 

 

▲ 미스트롯심사위원 장윤정과 친구사이라는 사실이 공개되며 화제가 되었던 김양. 그러나 뼈아픈 실수로 무대를 떠나야 했다.     © 정영혁 강남피플 발행인

 

12년 차 무명가수지만 프로다. 미스트롯에 출현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있었을 텐데.

 

“매니저인 오빠를 통해서 TV 조선 ‘내일이면 미스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어요. ‘포맷이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고, 오디션의 경쟁구도가 있다’는 사실에 출현을 한다는 것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죠. 무명이지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더욱더 그랬어요. 그러나 오빠와 작가의 말 한마디 ‘출현하면 시청자들이 반가워할 것이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출현을 결정했어요.”

 

첫 회 방송 후 반응이 뜨거웠다.

 

“스스로 놀랐어요. 그 당시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에 내 이름이 올라왔고, 미스 트롯이 기대 이상의 선전했다는 소식을 접했죠. ‘우지마라’와 ‘김양’을 대중에게 다시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어요. 무엇보다 무대에 오르니 오랜 친구였던 장윤정 씨가 심사위원으로 앉아있어서 순간 당황했고 부담감이 몰려왔어요. 아무래도 친구라는 사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았어요. ‘우지마라’를 부르는 동안 장윤정 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순간 저도 울컥해서 어떻게 노래를 마쳤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아요(웃음).”

 

장윤정과 친구라는 사실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호재거리는 맞는 것 같다. 반대로 심리적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고.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미스트롯 촬영 기간 갑상샘 혹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어요. 스트레스로 혹이 목을 누르는 상황에 이르러 제거하지 않으면 소리를 내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거든요. 데스매치 때 제 실력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쉬었어요. 그러나 이 역시 제 실수죠. 스스로 몸을 관리하지 못한 상황조차도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무대는 한순간에 사라져요. 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 내야 해요. 그게 프로의 세계죠. 그런 측면에서 변명의 여지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라 더욱 아쉬웠어요.”

 

과거에 돌아가 보자. 언제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나.

 

“중학교 시절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했어요. 방과 후 선생님이 제 노래 듣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원미연의 ‘이별여행’을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웠고요. 당시 휘파람으로 에릭 클랩톤 Eric Clapton 곡을 너무나 멋지게 불렸고, 머라이어 케리 Mariah Carey의 Without You를 즐겼죠. 그리고 가족 전체 모임의 저녁 식사 후 한국에 노래방이 처음 도입된 시절 노래방에서 장기자랑 하듯 신나게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나요. 당시 친지들로부터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듣곤 했죠.”

 

끼 많은 소녀였다.

 

“아버님은 노래를 아주 잘 하셨고, 어머니는 춤과 끼가 많은 분이세요. 첫째 언니는 어머니의 유전자 영향으로 한국 무용을 전공했고요. 오빠는 연기에 관심이 많아 한때 연기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저를 돌봐주고 있어요. 저는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실용음악을 전공하며 실력을 갖추기 시작했어요.”

 

▲ 가수 송대관의 눈에 띄어 트로트 가수로 데뷔. <우지마라>도 송대관의 작곡한 곡으로 2008년에 발표된 곡이다.     © 정영혁 강남피플 발행인

 

어떤 연유로 ‘우지마라’가 첫 공식 싱글 앨범이 되었나.

 

“대학 졸업 후 듀엣으로 한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2년 정도 있었으나, 회사와 계약 문제로 그만두게 되었어요. 어느 날 공고를 보고 MBC 합창단에 원서를 넣고 합격한 후 2004부터 2006년까지 3년간 활동하기도 했고요. 합창단 활동 당시 가수 송대관 선생님의 눈에 띄어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어요. ‘우지마라’는 송대관 선생님이 본인의 곡을 주신 곡으로 2008년에 발표했답니다.”

 

그렇다면 행운이 아닌가. 트로트 대선배 송대관 선생님에게 발탁되어 곡을 받았으니.

 

“맞는 말이에요. 오디션을 통해 뽑혔고 직접 선생님에게 곡을 받았으니 말이죠. 당시 ‘송대관의 후계자’ ‘송대관의 제자’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우지마라’는 인간의 운명, 인생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가사가 너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럼 ‘우지마라’를 통해 트로트 가수가 되었나.

“네, 발라드나 소울 풍의 가수를 꿈꾸었으나 송대관 선생님의 권유로 트로트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잘 결정한 일이에요.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의 김양’은 대중에게 없었을 테니까요. 감사한 일이죠.” 

 

포기하지 않으니 초등학교 시절에 꿈꾸었던 가수의 길을 이루었다고 보인다.

 

“어려운 시절도 많았어요. 고2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은데 제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못했어요. 결국 중도 포기하고 귀국하여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공주영상대학 실용음악에 입학했죠. 졸업 후 연습생 시절에 계약 문제로 마음고생만 하고 2년은 허송의 세월이 되기도 했죠. MBC 합창단원 시절 신촌의 1평 남짓한 크기의 고시원에서 3년을 버티며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당시 귀갓길에 신촌의 노숙자들을 보며 저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2008년 ‘우지마라’ 이후 하루에 7개 스케줄을 소화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나 이후 곡들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며 무명의 가수로 11년을 보냈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좌절하지 않고 역으로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이 굳건했어요.”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왔고 또 다시 도전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역경의 시기를 지나니 홀가분해요. 많은 난관들을 극복하고자 내 자신에 충실했고 정도를 걸으며 미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내일이면 미스트롯’이 나 자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했다고 생각해요. 탈락에 대한 자존심의 문제로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인드로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를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말이에요. 왜냐하면 대중의 사랑을 재확인 했고, 프로의 세계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재정비의 시간이 되었거든요.”

 

▲ 인터뷰를 마치며...     © 정영혁 강남피플 발행인

 

중도 탈락 이후 어떻게 그렇게 빨리 ‘흥부자’라는 신곡을 발표하게 되었나.

 

“오빠가 SNS를 통해 프로듀싱팀 ‘플레이사운드’ 작곡가 김경범을 알고 있었어요. 드라마 OST 그리고 전통 가요와 트로트 작곡가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김경범에게 전화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3월 말, 작곡가 작업실에서 첫 미팅을 가졌고 오빠가 곡을 요청했죠. 4월 초에 가이드 녹음을 마치고, 4월 말 ‘흥부자’가 탄생했습니다. 경쾌하며 노랫말이 쉽고 중독성이 강한 느낌의 곡으로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이에 작곡가 알고보니 혼수상태(김경범), 김지환은 “요즘 유행어인 ‘흥부자’로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어 두었다. 모든 곡은 그 곡에 어울리는 주인이 숙명처럼 나타난다. 애써 곡을 픽스 시키기 위해 비즈니스 하지 않는다. FM 엔터테인먼트 김대중 대표의 연락을 받고 일련의 과정들이 물 흐르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분위기 있는 애절함의 곡들을 가창한 김양에게 이전의 곡과 전혀 색다른 톤의 곡이다. 마치 행진곡을 연상시키듯 김양표 국민곡 ‘흥부자’가 탄생했다”라고 밝혔다. 

 

스스로 어떤 김양을 원하는가. 그리고 대중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길 원하는가.

“대중들의 사랑으로 빛을 발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감사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착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가수로 영원하고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면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을 하고 싶고요. <마리아 마리아> 그리고 <미스 사이공>을 관람하며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노래(소리), 몸짓(행위) 그리고 영혼의 결합으로 종합 무대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인내를 가지고 실력을 키우며 도전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끔씩 가사를 쓰곤 해요. 고생하신 부모님에 바치는 곡을 꼭 쓰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자리를 같이한 매니저인 오빠가 말했다.

“김양(본명 김대진)은 동생이지만 독립심이 강하며 자생력이 큰 친구예요. 여기까지 오는데 우려곡절도 많았고 마음고생도 심했어요. 갑자기 집안 사정이 힘들어진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이겨 냈어요. 오빠로서 큰 도움이 못돼 늘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미스트롯 이후 몸이 많이 지쳐있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고 요즘 힘이 난다고 말하곤 해요. 무리하지 않고 정도를 걸으며, 항상 노력하고 겸손한 가수 김양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요.”

 

‘우지마라’의 가사 말에 “달려라 외길 인생 후회는 없다”처럼 김양은 운명처럼 트로트 가수로 오늘에 이르렀다. 후회 없는 인생의 길을 걷는 김양에게 “한 번뿐인 인생길에 놀다 갑시다 ~ ~ ~, 근심걱정 모두모두 날려버려요”의 ‘흥부자’가 도래했다. 구김살 없이 밝고 쾌활한 성격의 김양에게 그녀만의 외길이 잘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인터뷰: 정영혁 / 사진작가, 강남피플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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