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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들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억이 기록으로, 기록이 기억으로”⑤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5.19 20:28 | 최종 수정 2019.07.15 14:36 의견 1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5·18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전두환의 독재 정권에 불복한 광주 시민들이 대항해 일어난 운동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발 나아가게 한 운동입니다.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진상규명 및 피해자 대상 보상 사례도 여러 나라에 좋은 선례가 되었습니다.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해외 학자들도 5·18 민주화운동을 ‘전환기의 정의 (transitional justice)’라는 과거 청산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사례라 말하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의 전개, 이후의 진상 규명과 보상 등의 과정과 관련해 정부, 국회, 시민, 단체 그리고 미국 정부 등에서 생산한 방대한 자료들이 잘 정리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기록을 담고 있는 정보나 기록을 전하는 매개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합니다.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 유산이면서 훼손되거나 사라질 위험에 있는 기록유산들을 보존하기 위해서지요. 현재 우리나라의 기록유산은 총 16건이 등재되어 있으며, 5.18광주민주화운동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5·18 민주화운동기록물로 지정되어 있는 기록물은 ①공공기관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 만들어낸 자료, ②국회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 ③사진(흑백필름)자료, ④군사법기관의 재판자료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자료, ⑤국가의 피해자 보상자료, ⑥1472명 시민들의 증언을 담은 기록, ⑦시민들의 성명서·선언문, 일기, 취재수첩, ⑧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⑨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 등 총 9개 분야입니다.

▲ 공공기관이 생산한 5·18 민주화운동자료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① 공공기관이 생산한 5·18민주화운동 자료

5·18민주화운동이 발발한 1980년 5월 18일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각 기관에서 생산한 문서들입니다. 중앙정부는 계엄포고령을 내리고 계엄업무에 협조하라는 지시, 비상계엄 및 소요사태에 대한 지시와 관련한 공문서를 생산해 지방정부에 보냈습니다.

이에 전남도청, 광주시청 등 지방정부는 5·18사태일지, 피해상황, 수습대책, 복구기준, 시체 매장계획, 사망자 인적사항 조사보고, 매장자 명단 등을 만들어 보고했습니다. 경찰은 시민과 학생들 수 백 명을 포고령 위반죄로 구속하여 기소한 처리지침 및 지시, 포고령 위반 무혐의 처리 수사기록, 포고령 위반사범 접수 및 조사현황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 자료의 원본들은 그 동안 광주동부경찰서에서 보관되었으나 최근 국가기록원이 맡아 보존하고 있습니다.

▲ 국회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② 국회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

1988년 국회는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꾸려 5·18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개최했습니다. 청문회는 ①5·18민주화운동의 발생배경, ②집단발포 명령권자와 책임 소재, ③미국의 책임여부, ④5·18민주화운동의 성격규정 등 네 가지 중요한 쟁점을 두고 사건을 파헤쳤습니다.

총 17회에 걸쳐 67명의 증인이 소환되었고, 모든 청문회 과정이 TV공중파를 통해 중계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기록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현재는 국회도서관에서 보존·관리하고 있습니다.

▲ 연합통신 나경택 기자가 촬영한 필름원본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③ 사진(흑백필름)자료

<전남매일>, <동아일보>, <전남일보>,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이 당시 광주의 참상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특히 당시 전남매일 나경택 기자는 198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최초로 5.18 사진전을 개최하며 사진집을 발행할 때, 비밀리에 간직해오던 흑백필름들을 전부 제공했습니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흑백필름 2,017컷, 사진 1,733점이 지정되었습니다.

▲ 광주사건,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한 군법회의재판기록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④ 군사법기관의 재판자료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자료

1980년 5월 비상계엄령을 위반한 자는 군사재판을 받았습니다. 5·18 관련 구속된 인사 수백 명이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겪었습니다. 이들은 무기징역, 사형 등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이감되었으며 상당수의 일반시민들은 훈방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군검찰부 수사기록, 불기소 처분 수사기록, 기소 중지자기록, 군사재판자료 등이 남아 있습니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사태는 빨갱이 김대중으로부터 사주를 받은 광주지역 불순분자들이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선동하여 일으킨 내란 폭동”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김대중은 5·18민주화운동의 배후조종자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80년 9월 17일 사형선고를 받았고, 1981년 1월 29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1995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관련자들의 재심 청구로 명예회복이 이루어졌고,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2003년에 재심을 청구해 2004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 피해자들의 보상결정서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⑤ 국가의 피해자 보상자료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피해자 보상법>이 제정되고 국가는 사망자, 부상자, 구속자 등 관계 법령에 따라 5천명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3,880권, 695,336쪽에 달하는 자료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보상기록이자 유형별 피해의 규모와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원본은 광주광역시청에서 보존·관리하고 있습니다.

▲ 피해자들의 구술증언을 기록한 테이프와 CD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⑥ 시민들의 기록과 증언

1980년 중반부터 80년 5월을 기록하고자 하는 각계각층의 노력이 있었고, 유족, 피해자, 목격자들의 구술녹음, 영상녹화, 채록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총 1,472명의 기록과 증언이 담긴 자료가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방대한 기록물은 5·18기념재단, 전남대5·18연구소,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분산되어 보존·관리하고 있습니다.

▲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와 선언문과 도청 분수대 위에서 낭독한 학생들의 성명서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⑦ 시민들의 성명서·선언문, 일기, 취재수첩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물 중에는 당시 시민들이 작성한 성명서, 선언문, 일기, 취재수첩 둥 시민들의 기록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명서·선언문은 1980년 항쟁기간 동안 광주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기록물입니다. 시민들은 신군부의 폭력적 만행을 고발하고, 이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며,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자 글을 작성했습니다. 총 15개의 성명서, 호소문이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당시 광주여고 3학년이었던 주소연, 광주우체국 공무원이었던 조한유, 천주교광주대교구 직원이었던 주이택, 주부 조한금이 남긴 일기 역시 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김영택 취재수첩 3권, 최건의 취재수첩 1권도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습니다. 시민들의 기록물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보존·관리하고 있습니다.

▲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⑧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미국은 5·18이 발생하자 시시각각으로 상황을 보고받고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미국 국무부와 주한 대사관 사이에 실시간으로 주고받은 전신 자료 및 국방부와 CIA에서 생산한 문서에는 5·18이전 한국의 상황, 12·12관련, 한국군 내부동향, 한국의 주요 정치인물 관련 문건, 5·18당시 시간대별 상황, 미국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인식, 미국에 미칠 영향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보고했습니다. 원본은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CIA가 보관 중이며, 비밀해제 된 사본 일부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부상자 진료비 청구서)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⑨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부상자 진료비 청구서)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에 부상자를 치료한 병원에서 작성한 진료비 청구서자료 총 30권 12,766매에 달하는 기록도 소중한 기록유산으로 남겨졌습니다.

광주지역 내 전남대학병원, 조선대학병원, 기독병원, 적십자병원, 개인병원 등에서 병원의 진료비청구서와 청구목록, 진료기록부, 병상기록부 일부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시민들의 사망 및 상이의 종류, 원인 등이 정리되어 있어 시민들의 피해와 각 병원의 치료 실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입니다.

원본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보존·관리하고 있습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온라인 사료관 <오픈아카이브> ⓒ오픈아카이브홈페이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온라인 사료관 <오픈아카이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온라인 사료관인 <오픈아카이브>는 4.19혁명, 한일협정반대운동, 3선개헌반대운동,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까지 우리나라 현대사에 굵직했던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오픈아카이브>는 기록을 발굴하고 발견해 이를 해석해 발행하며, 기록정보와 사람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몇 가지 절차를 통해서 이곳을 직접 견학할 수 도 있습니다. 크게는 사료, 사진, 구술로 나누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사료의 경우는 파일을 스캔해서 보관하고 있으며 구술은 동영상을 게재해 당시 치열하게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검색하는 데서도 다른 사이트와 달리 차별점을 두었습니다. 5.18, 광주항쟁, 광주사태 등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콘텐츠의 개수, 그리고 각 사료별 중요시 보아야 할 자료까지 추천해주면서 말그대로 사료를 잘 모아 정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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