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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나는 한 시간 크리스천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한국 교회

조연호 작가 승인 2019.05.23 14:20 의견 0

프롤로그:나는 한 시간 크리스천이 아니다!

개신교는 19세기에 한국에 들어왔다. 1832년 유대계 독일인 루터교 목사 칼 귀츨라프에 의해 한국에 처음 개신교가 전파됐다. 약 200년에 가까운 연원이다. 이 기간 안에 우리 외가(外家)는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4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이 됐다. 혹설에 따르면, 기독교를 믿으면서 3대 이상에 이르면, 그 후손들이 경제·사회적으로 괜찮게 산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가난하고, 사회적으로도 큰 존재감 없이 살고 있다.

사도 바울은 본인이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나 바리새파 가마리엘 문하에서 수학하고,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갖고 태어났다고 했다. 필자는 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4대째 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선교사가 설립한 대학교(연세대학교)에 다녔으며, 선교단체에서 훈련받고, 기독교 시민운동도 상당 기간 했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양육하는, 흔히 말하는 ‘간사’ 역할도 10년 이상했다. 다양하게 경험했고, 사역자로 20년 가까이 살았다.

장황하게 기독교 약력을 적는 이유는 필자가 ‘선데이 크리스천’, 혹은 ‘한 시간 크리스천’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신학을 전공한 목회자가 아니기에 “네가 교회를 어떻게 알아”라고 할 수 있는 의문에 대한 답으로 필자의 신앙력을 언급한 것이다.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교회에 다녔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35년쯤 됐다.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6살짜리 아이는 시장통 상가 건물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교회는 나갔다. 외할머니, 혹은 어머니와 함께. 대부분 아이가 다 믿는 산타할아버지는 6살 때부터 믿지 않았지만, 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믿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믿고 있다.

자발적으로 교회에 다닌 시점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친가 쪽으로는 내가 믿으면 불교로 4대째 믿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조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조부의 허락을 얻어야만 했다.

필자 : (간곡한 목소리로) 엄마, 여기도 교회가 있는데, 다녀도 돼요

어머니 : (웃으면서) 다녀도 되는데, 대신 할아버지께서 허락하시면 다니도록 해.

필자 : (신나서) 알았어요!

어머니 허락은 쉽게 떨어졌는데, 할아버지 허락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신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부모뿐만 아니라 조부모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다.

어머니 허락을 받은 나는 방앗간에 가신 할아버지를 찾아 울퉁불퉁한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올라갔다.

필자 : (기대에 찬 목소리로) 할아버지 저 교회 다녀도 돼요

할아버지 : (잠시 고민하시다가) 그래, 저 위에 있는 교회 말이지

필자 :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네, 맞아요. 서울에 있을 때도 다녔어요.

할아버지 : (웃으시면서) 그래, 다녀도 된다.

필자의 할아버지는 자상한 분이셨다. 특히, 필자를 너무 사랑하셔서 원하는 것은 대부분 들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린 손자가 본인 생각보다 교회 다니는 일에 열심을 보이자, 불안하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 : (차분한 목소리로) 연호야, 네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뭐지

필자 : (진지하게) 좋은 말씀도 듣고, 공책도 받고, 좋은 점이 많아요.

할아버지 : (진지하게)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공책 500권을 사줄 테니 교회에 다니지 않으 면 어떨까

필자 : (고민하지 않고) 그럴 수는 없어요. 한 번 다니기로 한 거니까, 끝까지 다녀야 하죠.

초등학교 1학년, 8살 봄에 있었던 일이다. 그 후로 할아버지께서는 더는 만류하지 않으셨다. 그저 손자가 기독교인이 돼 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셨다. 종종 명절 때 작은아버지들의 강압적인 방해도 있었지만(노골적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한두 번에 불과했다. 오히려 가정 형편상 자주 이사하면서 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면서 교회에 나가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다시 지방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매주 교회에 나갈 수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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