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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집내기가 비판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한국 교회

조연호 작가 승인 2019.05.28 14:29 의견 0

흠집 내는 것이 비판인가

기독교 비판을 주제로 한 책을 보면, ‘내가 기독교인이어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라는 식의 동기를 제시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 신앙의 수준은 차지하더라도 글쓴이 삶의 여정을 따져봤을 때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기독교 이해는 성경을 꽤 읽고, 기독교 역사 등에도 관심 두고 학습해야 함을 의미한다).

누구나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을 일반 윤리적 잣대로 비판하는 것은 기독교 비판이라기보다 기독교 흠집 내기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비판을 넘어서 저자의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만을 위한 비판은 ‘누워서 침 뱉기’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기독교 비판 저작들은 기독교 흠집 내기 크게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판 내용을 보면, 대형교회의 비리, 기독교 기업의 타락, 목회자들의 비리와 타락 등이고 그 수준이 일반인, 일반기업 등보다 심각함을 지적한다. 최근에 나온『권력과 교회』에서는 ‘교회 권력의 부패’를 주제로 다루면서 교회 부패 원인을 ‘권력’에서 찾고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교회는 당회장 목사를 포함해서 일부 당회원 중심으로 모든 대소사를 의결하고 진행한다. 당연히, 권력 집중으로 인한 문제점이 파생할 수밖에 없다.

20여 년 전부터 대중매체에서 교회 비판을 시작했다. 여러 대형교회를 비판했고, 그 전파력이 작지 않았다. 꽤 강한 카운터 펀치를 맞고 비틀거릴 줄 알았던 교회는 더 큰 한 방으로 응수했다. 바로 방송국 점거였다(만민중앙성결교회 성도들의 방송국 점거). 이단(異端)이라고 교회를 고발하고 목회자의 횡령 등을 고발했더니 목사는 교회의 빚을 갚기 위해 라스베가스에서 도박했다고 고백했고, 교인들은 목사를 믿어줬다. 목회 세습 반대시위를 하면, 교회 성도들은 “너희들이 뭔데”라고 하면서 인상을 구긴다. 목회자들도 잘못됐고, 성도들 처신도 잘못됐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비난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대안이 필요하다

비판은 필요하다. 비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비판은 무용하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무엇인가를 잘 못 했을 때, 훈계와 비판이 필요하다. 그런데, 비판과 더불어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래서 사람한테는 어른이 있고, 스승이 있다. 기업은 컨설팅받고 개혁을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비판과 더불어 대안을 제시한 책들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 서적은 비판을 위한 텍스트지 대안은 빠져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부분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맹목적인 비난만을 일삼는 서적도 있었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긍정적인 역할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와 같은 일들은 다루지 않는다. 그저 현재 잘 보이는 모난 부분만 발췌해서 알리는 데 혈안 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논리적으로 보면 오류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상황을 바로 잡으려 하는 학자들은 찾을 수 없다. 물론, 보수 교단의 경우는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기에 더 많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회는 안팎으로 날아오는 수많은 돌팔매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길게 이어지면서 일반인들에게 광신도 집단처럼 매도되기도 했다. 교회를 경험하지 못한 일반인들이 방언하는 기도집회나, 통성 기도회에 참여하면, 적응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도하면서 방성통곡(放聲痛哭)하는 사람들을 보거나 찬양 시간에 미친 듯이 손뼉 치는 성도들을 본다면, 깜짝 놀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전부가 아니다. 즉, 전체적으로 볼 때 왜곡된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왜곡된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전해지면, 당연히 왜곡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는 현대인들 사고역량의 부족을 지적하는데 그 원인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즉 텍스트를 읽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화면의 정보들을 훑어보는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텍스트를 읽고 깊이 생각하는 것과 무분별하게 주어지는 정보를 훑어보면서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정보 전달 매체의 발달과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서 정보 취사 선택하는 능력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또한, 정보와 관련한 다른 책들도 정보 과용을 말하면서 취사 선택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취사 선택이라는 언어 자체가 사고를 통한 판단을 전제로 해야 하기에, 사고 훈련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그리고 대중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보다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교회 비판은 교회의 문제가 근원이나, 그 문제점을 과장해서 혹은 자극적으로 전달한 비판자들과 그 비난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에게도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비판 대상이 된 교회가 스스로 개선책을 만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교회는 계속 비판자들의 지속적인 펀치를 맞고,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교회 전체가 비판에 젖어서 온전한 모습은 오간 데 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대중들도 그 비난이 옳다고 생각하고, 함께 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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