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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섬이 된 교회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한국 교회

조연호 작가 승인 2019.05.29 16:55 의견 0

교회는 견고하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굳건하게 터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국가전복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비판하고 교단 내에서 지적해도 대형교회는 콧 방귀도 뀌지 않는다.

비판을 위한 비판만하고,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대중매체의 자극적인 입담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외부 비판의 한계는 교회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일면만 가지고 판단하는 자체에 대한 설득은 부족하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조직도와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비판하는 건 교회 자체에서도 수용하기 힘들다.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서 오히려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측면은 인간의 특성에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아니던가 처음에는 충격적이고 깜짝 놀라게 했던 일들도 어느 순간에 그 임계점에 도달하면 무감각해진다. 예를 들어 대형교회의 부자세습은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비판했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앞에 모여 시위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맹렬하지 않다. 질타가 있지만, 이미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명성교회의 부자세습으로 인해 꽤 시끄럽긴 하다) 한 번이 어렵지 반복해서 하다 보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원래 그러려니 한다. 일종의 관성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세습해도 현존하는 헌법과 법률로 교회 세습을 막을 수 없다. 당연히 교회에서 만든 법으로도 세습을 제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독립적인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교단에 속해있고, 국가에 속한 기관이지만 그 내부를 샅샅이 파헤치지 않는 한 법적으로 단죄하기 힘들다. 물론, 소송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큰 타격으로 교회가 무너졌다는 보도는 없다.

교회 세습은 국가, 교단에서 제재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보루는 교회 성도들이다. 그러나 담임 목사의 절대적 권위 앞에 고개 숙이고 있는 성도들이 세습을 막을 수 있을까 대통령은 촛불시위로 탄핵에 이르게 했지만, 대형교회 목사를 내치기 위해서 성도가 예배당에서 기도시위, 혹은 찬송 시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종종 장로와 목사의 대치가 벌어져서 성도들이 눈살 찌푸리며 알아서 떠나는 상황은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라는 옛말이 현재 교회에 어울린다.

과거에는 교회의 문제점들이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 비판 자체가 큰 결단이었고,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많은 대중매체가 한국 교회를 파헤치고 있으며 문제점을 대중들에게 잘 편집해서 공개한다. 일반 대중들은 교회와 관련한 일에 큰 관심이 없지만, 대중매체의 부정적인 정보 전달은 기독교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정보는 수용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자극적일 수 있지만, 좋은 정보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며, 혹 좋은 정보라고 하더라도 스크롤에 익숙한 수용자는 그대로 지나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전파되는 문제점에 대해 교회의 대응 방법은 무익하고 유치하며, 아예 귀를 꽉 막아 버리기도 한다. 교회 밖에서는 억측이 난무하고, 잘 못 된 정보가 확장하고 있는 데도 교회는 세상에 장벽을 세우고, 도랑을 파서 스스로 섬이 되기를 선택했다. 이런 현실은 청년 기독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필자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신앙인들의 모임 안에서 떠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선교단체에서 그저 그런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대표를 맡았던 선배한테 단체의 수동적인 모습과 학내 문제와 관련해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비판했다. 그리고 달라져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선배는 “너와 우리 모임이 맞지 않는 것 같다.”라는 답을 해주었다. 결국, 모임을 떠나게 됐고, 다른 모임에 참여해서 기독교 학생 사역을 이어갔다.

활동과 관련해서 가장 진취적인 역할을 해야 할 대학생들이었지만, 당시 대학교 내 선교단체 수준은 주어진 동아리 방을 수호하고, 기존 학생 수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교회 자체가 섬이 되기를 자처한 상황에서 대학생들은 더 작은 섬이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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