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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문우답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한국 교회(5)

조연호 작가 승인 2019.05.30 14:59 의견 0

현문우답

한국 교회 비판과 비난은 당연하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이상한 수준이다. 원래 가진 게 많고, 권력이 크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 현재는 다시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개혁이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성도들이다.

교회 내부에는 우매해진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처럼 떠받들고(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온 것이라고 하는데) 실수를 이해하고 격려한다. 대통령이 실수하면 탄핵도 하는 국민인데, 왜 목사는 탄핵하지 못할까 혹, 외부에서 비판이라도 하면 교회는 더 단결한다.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이라고 생각한다(명성교회가 꼭 그렇게 하고 있다).

아울러 교회는 우매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성경 메시지를 교묘하게 전달한다. 사랑이 필요할 때는 공의를, 공의가 필요할 때는 사랑을 전한다.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종’이 단상 위에서 단정 지어서 설교하니 감히 고개 들고 대항하지 않는다.

목사의 성추행과 돈에 대한 탐욕은 너그러이 이해하고 사랑으로 용납한다. 그러나 성 소수자들의 아픔은 죄악이라고 단정하고, 정죄하면서 상처를 준다(필자는 성 소수자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그러나 보수를 가부장적 권위로 생각한다면, 다른 보수다. 가장(家長)이기에 아픈 자녀들을 더 애써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필자는 신촌에서 퀴어 페스티벌을 개최할 당시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헌금을 은행 이자로 바치면서 거리노숙자들에 대해서는 게으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봐라! 서구의 잘 사는 국가, 그리고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다 기독교 국가 아니냐 그러니 한국도 기독교의 성장 덕분에 잘살고 있다.”라고 포효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일본은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데요 라고 반문했더니, 그 대답이 가관이다. “일본에 있는 기독교 인구의 숫자는 적어도 그들의 도덕성과 신앙 수준이 깊어서 지금의 일본이 된 것이다. 숫자가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혹은 “그래서 지금 저 모양 아니냐”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런 궤변이 어디 있을까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면 성도 수를 불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교회 성장을 추구할 이유가 없으며, 이런 사고를 확장하면 선교의 당위성도 약해진다.

이처럼 교회 대응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교회의 대응 수준은 유연성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라고 해야한다. 시대를 반영한 발전이 중요한데, 한국 교회는 발전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해서 발전의 시기를 놓치고, 정체하고 퇴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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