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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한일역사(17)]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세계 최초 철갑선일까?①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승인 2019.06.01 10:53 의견 0

1971년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1915∽2001)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그리스 선주를 설득하여 허허벌판 울산에 조선소를 지었다.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던 과거 500원권 지폐.

당시에 우리는 500원 지폐에서 보듯이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알았다. 과연 거북선은 (1) 이순신이 처음으로 만들었고 (2) 세계최초의 철갑선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과장된 것이다.

먼저 이순신이 거북선을 처음 만들었다는 것부터 살펴보자. 거북선은 이순신이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조선 3대 임금 태종 때부터 거북선이 있었다. 1413년(태종 13) 2월5일자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자.

“임금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

2년 뒤인 1415년 7월16일자 태종실록에 거북선이 다시 등장한다.

“병조를 맡은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병비(兵備)에 대한 상소를 했다. 거북선[龜船]의 방식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따라서 거북선은 이순신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나대용을 비롯한 부하 군관들과 함께 종래의 거북선을 개선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순신의 거북선은 왜군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약 120여명이 타는 돌격전투함이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하루 전인 1592년 4월12일에 전라좌수영에서 거북선 진수식을 하였다. <난중일기>에 이 내용이 나온다.

[4월12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배를 타고 나아가 거북선에서 지자(地字) ·현자(玄字) 포(砲)를 쏘았다.]

거북선은 이순신이 2차 출전한 5월29일 사천해전에서 처음 등장했다. 거북선 돌격장 이언량·이기남이 지휘하는 거북선 2척은 왜군 지휘선을 향해 돌격하여 일본 수군을 놀라게 했다. 두 척의 거북선은 전라좌수영 본영과 방답진(여수시 돌산읍 소재) 소속이었다.

이어서 한산도해전(7월8일), 부산포해전(9월1일)에서도 거북선은 돌격선으로서 위력을 발휘했다.

다음으로 거북선은 철갑선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선조수정실록 1592년(선조 25년) 5월1일자에 거북선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하였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 전후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횡행(橫行)하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바람에 쓸리듯 적선을 격파하였으므로 언제나 승리하였다.”

이를 보면 거북선은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따라서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덮개를 씌운 배이지 철갑선은 아니었다.

서울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있는 ‘충무공이야기’ 전시관에도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덮개를 덮고 창칼을 꽂아 적이 뛰어 오르지 못하도록 만든 돌격용 전투함”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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