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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OB & YB (9)] '남포면옥' 그리고 '레드스타'

칼럼니스트 조현석 승인 2019.06.04 17:23 의견 0

최근 트렌드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레트로’가 아닐까 싶다. 레트로는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Retrospect’의 준말로 옛날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복고주의를 의미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80년대, 90년대에 유행했던 것들이 재해석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장년층에게는 과거의 향수로, 청년층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선함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패션이나 음악에서도 레트로 사조는 큰 영향을 미쳤다. LP플레이어로 시티팝을 듣고 옛날 물건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늘면서 동묘 시장은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식당 트렌드도 이러한 레트로 감성에 발맞춰 변하고 있다. 노포집들이나 과거의 감성을 재해석한 인테리어와 음식을 내세운 식당들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대패삼겹살을 파는 이태원의 잠수교집을 비롯하여 많은 레트로 분위기의 식당들이 대박을 치는 추세다.

레트로가 유행하는 이 시대에 을지로가 다시금 부상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8, 90년대 대한민국 고도 경제성장기에 경제의 심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해왔던 곳으로 오래된 가게도 감성도 가득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홍대, 강남 등지가 급부상하면서 을지로는 올드하고 어른들만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기며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았다. 그랬던 을지로가 2019년 현재는 옛날부터 가던 맛집이 있는 곳, 서울의 80-90년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힙한 감성 맛집이 모인 곳으로 다시금 인기를 끌고 있다.

오늘 소개할 을지로 맛집은 옛날의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냉면과 어복쟁반 맛집 남포면옥, 그리고 옛날 홍콩의 분위기를 재해석한 레스토랑&바 레드스타이다.

¶ OB - 남포면옥

무교동의 좁은 골목을 지나다보면 건물 숲 사이에 고풍스러운 한옥식 건물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45여 년간 무교동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냉면과 어복쟁반 맛집 남포면옥이다. 미슐랭 가이드 빕 그루망에 2017년부터 3년간 선정되기도 했으며 대표 메뉴인 냉면과 어복쟁반 외에도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으로 즐겨 찾는 갈비탕도 있다.

혹자는 강북의 삼대 냉면집으로 우래옥과 필동면옥, 그리고 남포면옥을 꼽는다. 이전에 소개했던 우래옥이 소고기 맛이 진하게 나는 육수를 쓴다면 남포면옥은 동치미 국물과 육수를 함께 섞어 시원하면서 청량한 느낌을 주는 육수를 사용한다. 그 때문인지 다른 냉면집과 다르게 냉면을 먹을 때 면수나 육수가 아닌 시원한 동치미를 먼저 준다. 남포면옥에서는 동치미 맛을 유지하기 위해 날짜별로 표시를 해놓는데 식당 내에 있는 장독대들은 기대감을 한층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 남포면옥의 냉면 ⓒ 칼럼니스트 조현석

육수와 동치미 국물이 어우러진 냉면 육수는 새콤달콤하면서도 고기의 맛을 잘 살려준다. 너무 밍밍하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새콤한 육수는 여름철 더위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부드럽게 씹히는 면에 중간중간 무채와 동치미를 곁들여먹으면 더운 날 잃어버린 입맛도 금세 돌아올 듯하다.

이곳의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인 어복쟁반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북한 음식으로 양지머리와 만두, 그리고 다양한 채소들을 함께 육수에 끓여서 건져먹는 이북식 전골요리이다. 어복쟁반의 어원은 소의 배를 뜻하는 우복쟁반으로 와전되어 어복쟁반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과 다르게 생선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 푸짐한 비주얼로 입맛을 당기는 남포면옥의 어복쟁반 ⓒ 칼럼니스트 조현석

남포면옥의 어복쟁반은 쑥갓과 버섯, 다양한 야채, 만두, 양지머리가 푸짐하게 담아 나와 보는 것만으로 침샘을 자극한다. 자글자글 끓는 어복쟁반의 육수를 한술 뜨고 부드러운 양지머리를 한 점 먹으면 겨울철 이만한 행복이 없다. 고기 국물과 야채를 먹다가 느끼할 때에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한 숟갈 먹으면 상쾌하게 입 안을 헹궈준다. 특히 주당들에게는 이만한 안주가 없다. 국물로 한 잔, 양지머리로 또 한 잔, 동치미로 또 한 잔 비우다보면 어느새 테이블엔 빈병만이 가득할지도 모른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오뉴월, 시원한 동치미 냉면 한 그릇 즐기는 것도, 이열치열로 어복쟁반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도 남포면옥에서의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 YB - 레드스타

을지로 3가에는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술과 함께 보내던 골뱅이 집이 모여 있는 골뱅이 골목이 유명하다. 이번에 소개할 레드스타는 골뱅이 골목에서 조금 더 깊고 음침한 곳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작지만 힙한 요리주점이다.

우선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빨간 별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오고 동시에 옛날 홍콩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건물 외관이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픈 키친 앞 바 테이블이 보인다. 이 역시 90년대 유행하던 홍콩 영화에서 흔히 보던 인테리어다. 식당에 들어왔을 뿐인데 중경삼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 레드스타 입구 ⓒ칼럼니스트 조현석

레드스타는 왜 술집의 안주는 맛이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요리에 중점을 둔 주점이다. 레드스타에서는 맛있는 안주를 즐기고 싶어 하는 주당들이 많이 찾는다. 일식, 양식, 중식이 퓨전된 요리들은 자연스레 술을 부른다. 음식들은 고정메뉴와 함께 그때그때 달라지는 메뉴들을 포스트잇에 써놓는다.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신메뉴들을 찾아 즐기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시그니처 메뉴는 하이볼이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산토리 위스키로 만든 하이볼을 레드스타 식으로 재해석했으며 이외에도 와인, 사케 등 다양한 술이 구비되어 있다. 분위기와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서 주종을 고르면 된다.

안주메뉴 중 닭다리를 비장탄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내 나오는 일본식닭다리 정육비장탄 구이는 비주얼과 맛 모두 훌륭한 메뉴이다. 바삭하게 구워진 닭껍질과 부드러운 닭다리살은 절로 술을 부른다. 고정 안주중 하나였는데 현재는 숙성 채끝 스테이크로 바뀌었다.와인으로 쪄낸 푸짐한 조개와 감자가 서빙되어 나오는 와인 조개찜도 맛있다. 와인과도 잘 어울리는 메뉴로 와인 향을 머금은 국물과 부드러운 조갯살이 인상적이다.

▲ 레드스타의 일본식 닭다리 정육 비장탄 구이. 현재는 숙성 채끝 스테이크로 바뀌었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을지로 레드스타는 직장인들의 소모임 장소로, 그리고 소개팅 두 번째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는 주점이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조용하고 맛있는 모임, 을지로 레드스타에서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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