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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피플] 밤낚시 잉어 하늘로 승천하다 - 작가 김양훈

정영혁 강남피플 발행인 승인 2019.06.10 10:23 의견 0

‘밤낚시로부터 탄생한 잉어가 캔버스를 벗어나

전시장을 노닐다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다’

강서구 발산동에 자리한 김양훈 작가의 작업실 방문을 위해 건물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한쪽 벽면에 걸린 대형의 <군자도>에 압도당했다. 배경의 붉은 바탕이 매우 강렬했고, 고고한 한 마리의 학이 대나무, 국화 그리고 매화의 풍광 속에서 여유롭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김양훈의 작품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건물 7층에 위치한 아담한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캔버스에 그려진 잉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나를 노려보는 듯 강렬함이 인상적이었다.

▲ 인사동의 <꿈틀거리는 행운>전에서 만난 김양훈 작가 ⓒ정영혁 강남피플 발행인

살아있는 잉어의 탄생

인사동의 <꿈틀거리는 행운>전에서 다시 김양훈 작가의 잉어를 만났다. 한쪽 흰 벽면에 대형 작품 두 점이 한 작품을 이루는 붉은색의 배경에 한 무리 잉어들의 꿈틀거림이 한눈에 느껴진다. 그가 본격적으로 잉어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다. 다산, 제물, 장수 그리고 출세를 상징하는 잉어는 민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김양훈의 잉어는 좀 남다르다. 김양훈은 말한다.

“민화에 재현된 이해로부터 출발했어요. 순전히 상상의 잉어이며,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었죠. 다양한 기법과 붓의 놀림을 구사했지만 원하는 이미지를 재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느 날 친구를 따라간 밤낚시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잡은 물고기를 손으로 직접 만져보니 살아있는 비늘로부터 질감 그리고 지느러미에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어요. 당시의 손과 눈으로 감지했던 경험을 간직한 채 몇 달간 고민과 실험을 거쳐 움직임이 살아 있는 잉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군자도 521.2x162.2cm Mixed Media, 2017 ⓒ김양훈 작가

잉어의 눈, 김양훈의 눈

수십 번의 반복과 실험을 통해 꿈틀거리는 잉어가 전시장을 유유히 헤집으며 노닐고 있었다. 성난 잉어, 슬픈 잉어, 즐거운 잉어 그리고 멍한 잉어 등이 우리의 눈과 마주한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김양훈이 그린 잉어의 눈은 사람의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김양훈은 “눈 역시 수십 번의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살아 있는 눈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화룡점정 작업의 일환이다”라고 밝힌다.

이렇게 밤낚시로부터 탄생한 잉어가 캔버스를 벗어나 전시장을 노닐다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다. 예술 작업이라는 것이 한 작가의 경험적 사고에 의존한다면 김양훈의 잉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이다. 이 생명에 김양훈은 매일매일 작업을 하며 2년의 세월을 보냈다. 작업하는 동안의 모든 감정들이 잉어의 눈과 지느러미로부터 파생된 꿈틀거림에 녹아 있는 것이다.

최근 4년 동안 개인전을 유지해온 김양훈을 바라보면 잉어의 눈이 그의 눈처럼 보인다. 넌지시 물어보니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듣곤한다’고.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눈빛이 매우 날카롭고 본능적으로 내공이 깊은 예술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보자면 잉어를 통해 자신을 재현하는 것이다. 사물의 관찰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예술가의 작업 태도이다.

김양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매우 사실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김양훈의 잉어가 다른 것이 바로 그런 연유다.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파생되는 작가의 모든 감정들이 고스란히 잉어에게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잉어의 눈이 김양훈의 것이다. 작품과 마주한 잉어의 눈은 김양훈의 눈으로 그리고 예술 작품의 눈으로 환생되는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삶과 밀착된 김양훈만의 잉어다.

▲ Dynamically Streamlined in Fortune 91x65cm Mixed Media, 2018 ⓒ 김양훈 작가


독창적인 작품

김양훈은 초등학교 시절 삼촌 국승선 화백의 작업실을 놀이터 삼아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했다. 삼촌의 영향으로 미술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결심하고 대학에서 판화와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0년대 초반 고목에 심취해 나무만 그린 김양훈에게 동양화가 가슴에 와닿았다. 동양화를 새롭게 공부하면서 사군자, 십장생 등으로 표현 영역을 확장하며 민화를 접하게 되었다. 전문작가의 민화를 보고 그는 도전 정신으로 기초 드로잉부터 차근차근 독학으로 오늘의 경지에 이르렀다.

“저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위해 절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카피하지 않아요. 한국인으로 동양인으로 나의 기운을 그림에 부여하고 싶습니다. 초창기에는 유학파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죠. 그러나 요즘은 반대로 국내에서 공부한 것이 훨씬 더 내 작품을 위해 낫다는 판단이 들어요. 다만 내 작업을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다양한 길을 알아보는 중이에요. 우선 중국 미술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 Dynamically Streamlined in Fortune 45.5x37.9cm Mixed Media, 2018 ⓒ 김양훈 작가


현재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인 그는 방과 후 매일 작업실에 들러 작업을 한다. 김양훈은 “하루라도 붓을 놓은 적이 없다. 나는 이것이 나의 기운이다”라고 말한다.

김양훈은 작업을 위해 경험적 사고를 중시한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다른 경험적 사고를 지녀야한다. 나는 감정이 생겨야 그림을 그린다”라는 의지대로 김양훈은 오늘도 작업실에 고민할 것이다.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먼저 드로잉을 할 것이고 필요하면 경험적 사고를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실험할 것이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가 궁금하다.

[인터뷰: 정영혁 / 사진작가, 강남피플 발행인]

※ 위 인터뷰 본문은 인터뷰 잡지 <강남피플>과 <강남피플 웹진>에도 동시게재됩니다.

https://knampeople.com/index/view/109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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