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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양부 이사장 - “3.11은 더 큰 변화 불러오는 신호탄 역할”

3.11 동시조합장선거 특집

주동식 객원편집위원 승인 2015.01.27 15:30 | 최종 수정 2019.07.04 02:38 의견 0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3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뒤에는 3.11이 4.19나 5.18 또는 6.29처럼 하나의 고유명사화할 수도 있다. 오는 3월 11일에는 그렇게 현재보다 미래의 의미가 훨씬 큰 행사가 예고돼 있다. 거의 30여년만에 농·수·축협의 전국 동시선거가 진행되는 것이다. 농협 제 자리 찾기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와 개혁을 향한 노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되며, 그런 점에서 이번 전국동시선거가 갖는 의미는 일반인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오랫동안 농협 개혁의 목소리를 높여온 최양부 (사)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을 만나 3.11 선거가 갖는 의미와 농협 개혁의 방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3.11 전국동시선거가 갖는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 과거 농협의 지역조합장 선거는 일종의 동네 선거였습니다. 지방의 조합마다 각각 다른 날짜에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하나의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슈가 분산되어 관심도 적었던 거죠. 하지만 전국 동시선거를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관심을 갖고 조합의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농협 조합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 농협이 무슨 문제를 안고 있는지가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른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농협의 부조리나 운영 실상, 선거의 문제점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여 이슈를 통일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이런 동시선거의 폭발력을 최소화하고 이슈의 확산을 막으려는 작업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가 언론 광고 특히 기사광고라는 형태로 광범위한 로비와 일종의 통제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과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던 사실입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중앙회의 언론 로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3.11선거의 이슈나 문제점에 대해서 기이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3.11은 3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4천여 명의 후보들을 대상으로 투표하는 대규모 선거입니다. 웬만한 재보궐 선거보다 규모가 훨씬 큰데다, 그 선거의 결과 영향을 받는 각 지방의 정치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도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의 보도는 이런 객관적인 의미에 한참 못 미칩니다.

 

¶ 웬만한 재보궐 선거보다 규모 큰데

 

- 이번 선거에 적용되는 공공단체 등 위탁 선거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위탁선거법)이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점들인가요

= 이번 선거에 적용되는 위탁선거법의 내용을 보면 과연 농업인들이 우리나라 국민으로 대접받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농협 조합장 선거의 선거권자는 농업인들입니다. 당연히 농협 조합장 후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조합 운영과 관련해 어떤 비전과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투표할 유권자들 역시 그런 내용을 듣고 판단하는 게 정상이죠. 하지만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하고 8월 1일자로 발효된 위탁선거법은 농협을 공공단체로 지정, 기본적인 후보 토론회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 기본 상식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법률입니다.물론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가 농협 개혁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위탁선거법을 대상으로 민주적 절차와 알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낙선 후보들이 집단으로 위헌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농협 조합장 선거는 과거에도 가짜 조합원 시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 협동조합의 출발점은 조합원입니다. 따라서 조합원의 신분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조합원 명부가 가장 기본적인 선거 자료입니다. 농업인만이 농협 조합원의 자격을 갖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농협에는 사이비 농업인, 짝퉁 조합원이 너무 많습니다. 농업인이 아닌 사람들, 전혀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농협에 가입하고 있는데도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심지어 “메추라기 30마리만 있으면 농협에 가입할 수 있다”는 비아냥조차 나오는 상황입니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비근한 사례가 많아요. 땅 300평, 온실 100평 등 나름대로 농업인의 자격 요건을 규정하고 있지만, 가짜 서류를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농협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멀리 떨어진 벽지 조합의 경우 10~20%, 중간 규모의 농촌 조합은 30~40%, 대도시 조합의 경우 아예 50% 이상이 가짜 조합원일 것이라는 추정치도 나옵니다. 물론 가짜 조합원들도 서류상으로 법적 요건을 갖췄겠지만 문제는 그 서류가 실제 내용과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죠. 실사가 필요한데, 조합들 입장에서는 이게 쉽지 않습니다. 가짜 조합원이 드러나고 이들이 정리되면 일부 조합은 아예 성립 요건을 충족 못하고 해산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농협중앙회가 “전국에서 4% 정도의 가짜 조합원을 정리했다”는 발표를 한 적도 있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경기도 양주 조합이 가진 토론회에서는 “조합원 1,700명 가운데 1천 명 정도가 가짜”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협중앙회나 감독기관인 농수산식품부가 실사를 해야 합니다만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들 역시 농협 문제의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객관성이나 중립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감사원이 나서고 기타 농민단체나 지역 평조합원 대표들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감사기구를 만들어 실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 선거인 명부 엉터리면 선거도 원천무효

 

선거인 명부가 엉터리라면 그런 명부에 기초해서 이뤄진 선거도 원천 무효입니다. 이번 동시서거가 끝나고 대규모 당선무효소송이 이뤄질 경우 문제의 조합원 명부도 법에 의해 실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농협이나 조합장 선거의 문제가 많다는 것은 숱하게 지적돼온 내용입니다만 농업인들이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없었나요

= 사실 이 문제는 농업인 모두가 반성해야 합니다. 전국 농민이 270만 명이라고 하는데, 농협 조합원이 240만 명입니다. 즉 농업인은 대부분 농협 조합원인 셈이죠.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이런저런 농민단체의 회원입니다. 대표적인 단체가 한농연(한국농업경영인회 중앙연합)이나 전농(전국농민회)이죠. 전농은 진보적인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구요. 이밖에도 품목별 단체들도 많습니다.그런데 이런 단체들이 농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살펴보면 답답해집니다. 물론 “농협을 개혁해야 한다”며 목청은 높입니다. 하지만 그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슨 노력을 했는지 보이는 게 없습니다. 그렇게 목청 높인 댓가로 농협 사외이사 되고 급여나 이런저런 반대급부를 받는 게 농협 개혁입니까전농의 경우 민노총과 진보의 동류라는 연대의식 때문인지 농협중앙회 직원노조와 한 집안 식구처럼 행동합니다.그 분들 평소 “농민들이 주인의식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정작 농민들에게 주인의식을 갖춰주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농연은 조합원 이사·감사 교육을 3~4년 정도 시도한 적이라도 있지만... 앞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기반으로 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 평소에도 조합원 교육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협 조합원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 협동조합은 교육에서 시작해서 교육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농협의 진짜 주인인 농민들이 우선 협동조합이란 것을 잘 모릅니다. 이렇게 잠자는 주인의식을 깨우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농협이 책임지고 이걸 가르쳐야 해요. 일종의 사업체로서 사업계획과 예산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하는 방식이나 정부지원금, 수익분배 등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잘 알고 있어야 농협이 정상화됩니다.그동안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 초반에 민주화와 직선제의 영향으로 농협중앙회가 조합원 교육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국의 조합장들이 들고 일어나 “조합원들이 조합 일을 다 알게 되면 어떻게 조합장을 하라는 얘기냐”며 반대하는 바람에 금방 없어졌죠. 이후 중앙회장과 지역 조합장들이 타협하고 이권을 분배하는 농협 내부의 정치, 악순환 구조가 자리잡게 됐습니다. 조합원 교육이 실종되고 결국 조합원들만 피해자가 된 겁니다.

 

¶ 예산 편성 집행도 조합장이 좌우

 

지금 농협중앙회와 지역 조합의 직원 채용 시험에서 협동조합론 과목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들에서도 협동조합론 교수들의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농업 분야의 황폐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농협 직원 양성기관인 농협대학교 출신들이 농협 안에서 일종의 마피아를 형성하고 노조를 활용해 농협을 장악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농협 안에만 중앙회직원노조, 지역농협직원노조, 축협노조 등 5개의 노조가 활동하는 것만 봐도 노조의 기능이 난맥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결국 조합의 주인인 조합원을 외곽으로 밀어내고 임직원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심지어 전국 조합장의 절반 이상이 임직원 출신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농협은 조합원이 아닌 임직원들의 천국입니다. 조합원들에게는 환원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배당이 이뤄지는데 교육지원비나 설날·추석날 등에 10원권 상품권이나 선물 등을 주는 식으로 땜질을 합니다.예산의 편성과 집행도 조합장이 좌우하고, 일반 조합원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결국 조합장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예산을 변태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의 입을 막기 위해 사소한 혜택()을 베풉니다. 원래 조합원들이 받아야 할 몫에 비하면 사소하지만 일단 그런 혜택을 받으면 당당하게 조합장의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도 어려워지죠.

 

- 이사장님은 농업 전문가이시지만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제도권 안에서 농업 문제를 바라보시는 위치이셨던 것으로 압니다. 농협 개혁이라는, 야성(野性) 짙은 실천에 뛰어드신 계기가 있습니까

= 사실 제가 청와대에 있을 때만 해도 전통적인 협동조합관(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농협은 일종의 정부기관으로 정부의 일을 위임받아 수행하고, 따라서 정부예산도 지원해야 한다는 시각이었습니다. 농협에 몇 조 원대의 예산 지원이 이루어진 것도 그러한 맥락이죠. 하지만 청와대를 나와 보다 낮은 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더군요. 청와대에서 바라본 농업과 농협의 문제가 현실과는 괴리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농협개혁 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 변화의 결과라고 해야겠지요.대표적인 것이 1994년 5월 농수산물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파동이었습니다.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등 서울 시내 농수산물 거래가 전면 중단됐습니다. 중간도매인들이 거래를 거부했기 때문이죠. 저로서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농수산물의 수집과 유통이 몇몇 도매상인의 거부로 차단되는 구조가 바람직한지 의문이었습니다.선진국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즉, 산지와 농산물을 직접 거래하고 조달하는 중간 단계의 유통구조(이걸 우리와 다른 개념의 수퍼마켓이라고 부릅니다)인 거죠. 저는 이걸 담당할 수 있는 구조가 농협이라고 봤습니다. 당시 이마트 1호점이 문을 열었던 상황이라 ‘우리도 이제 변화가 곧 가시화되겠구나’라는 판단을 했습니다.지역 농협이 산지의 농산물을 수집하고 소비지의 도매센터를 거쳐 유통하는 신유통 시스템을 만드는 데 착수했습니다. 농식품신유통연구원을 설립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죠. 농협이 가공 및 판매까지 담당하여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이른바 ‘농업을 6차산업화한다’는 개념이 그때 본격화된 것입니다. 판매 농협의 구현이라는 원칙이 핵심에 놓여 있었구요. 이를 위해 농협유통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도매유통센터를 운영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 그 수퍼마켓과 이 수퍼마켓이 다른 건데…

 

양재동 하나로유통센터가 원래 쌀, 과일, 채소, 축산물 등을 포장하고 도매로 판매하는 물류센터의 개념이었습니다. 이런 유통센터를 전국에 10개소 조성하여 농산물 유통을 담당하게 한다는 취지로 대규모 자금도 지원하고, 청와대를 나온 후 농협에 제 사무실을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대사로 나갔다가 돌아와보니 상황이 제가 계획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더군요.양재동 물류센터는 도매 기능은 거의 없고 말 그대로 소매 수퍼마켓으로 변질됐고, 농협중앙회의 소매점포로서 산지 농민들의 납품을 받는 일종의 갑을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지원 예산도 사라지고, 유통구조 개선은 물건너가고, 농민 지원은 그저 돈 장사하는 명분으로만 활용되는 실정이었습니다.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나라 농민과 농업을 위해 농협에 걸었던 기대감이 실망으로 변하고 2007년부터 농협 제자리찾기 국민운동본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농협의 문제가 많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지만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미래 비전에 대해서는 각자 의견이 다른 것 같습니다. 농협의 바람직한 미래상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 우리나라 농협은 자금 규모를 기준으로 전세계 4대 협동조합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규모가 큰 만큼 할 수 있는 일도 많지요. 하지만 이런 대규모 협동조합이 농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이나 농업의 발전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순만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농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상실한 데서 기인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NH’는 이제 하나의 기업 브랜드일뿐, 협동조합의 영혼을 상실했다는 겁니다.반면 전세계에서 강소농(强小農) 국가로 알려진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뉴질랜드 등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농협이 국가 전체의 농업을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신기술을 검증해 제공하여 현장에 적용하도록 지원합니다. 이렇게 농업 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판매까지 책임집니다. 이렇게 해서 시장개방과 무관하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고, 오히려 수출로 활로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개방시대 농업의 구조적 문제는 농업인이 자신의 노동가치를 포함한 정당한 가격을 보장받지 못하는 ‘저농산물 가격과 저소득의 악순환’입니다. 강소농 국가들은 이 문제를 농협과 그 자회사를 통해 해결했어요.농업인을 품목별로 조직화, 생산부터 수확 이후 가공(도축), 유통, 판매, 수출 등 농업의 6차산업화(1+2+3차산업)를 이끌어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대표적 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이죠. 썬키스트, 폰테라, 제스프리, 대니쉬크라운, 그리너리 등이 대표적입니다. 농협은 농산물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어 유통·판매·수출을 책임지면서 조합원에게 안정된 소득을 보장해 주고, 조합원에게 신기술을 지도하며, 기자재와 생활물자 구매, 저리자금 제공 등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처리합니다.우리나라 정부는 농협을 배제한 채 농업의 6차 산업화를 돈 있는 1%의 농업인이나 기업에게 맡기는 정책적 실수를 범했습니다. 현장을 모르는 농정관료들의 탁상행정이 부른 결과입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 농민을 실효 지배하고 농촌의 자본과 인력을 장악한 농협을 개혁하지 않고는 우리 농업을 회생시키는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입니다. 쌀시장 전면개방을 맞아 돈 장사에 빠진 농협의 정체성을 바로 잡고 판매농협으로 변혁시키는 농협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농협을 6차산업화의 중심으로 세워야 합니다.

 

¶ 왜 우리에겐 ‘썬키스트’가 없을까

 

농협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출발점도 현장 농민에서 찾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농민들, 조합원들의 주인의식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거대한 변혁의 출발점, 농민의식의 각성의 출발점,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이번 전국 동시선거에 기대하는 것입니다.

 

- 농협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 농협 개혁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만만치 않은 현실적 과제들이 떠오릅니다. 방대한 자금을 갖고 있는 농협이 계속 협동조합으로 남을 것인지, 다른 형태로 변화할 경우 기존의 방대한 자산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지도 쉽지 않은 문제죠. 차라리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게 현실적인 대안일 수도 있습니다.결국 농민들의 의식 자각운동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농민들이 협동조합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고 그를 실천에 옮기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겁니다. 변화된 지방의 조합들이 모여 제2의 연합체 즉 새로운 중앙회를 만들고 정부 독점적인 체제를 정리하고 농협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봅니다.정부의 역할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농협이 상호독립적이면서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찾아서 상호 윈윈하는 시스템입니다. 정부는 농협 임직원이나 고위층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독자적인 농업 정책을 수립하고, 농협은 상층부나 특권 집단에 특혜를 주는 체제를 없애야 합니다. 이 문제가 사회와 국가 등 공론의 장에서 의제(agenda)로 등장해야 합니다.

 

- 모든 변화는 그를 실천에 옮길 주체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농협 안에 그러한 변화를 주도할 집단이나 세력이 있을까요

=현재 농협중앙회에 가입하지 못한 법외 농업협동조합들이 70~80개 정도 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밖에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해 만들어진 농업 관련 지방조합들이 500여 개에 이릅니다. 물론 이들은 규모가 매우 영세합니다.비회원 조합들은 정농회라는 그룹으로 뭉치고 있는데, 이들이 농협 개혁의 새로운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2의 연합회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구요. 이들이 기존 농협중앙회 독점체제에 균열을 내고, 농협 유착적인 기존 농식품 정책의 변화를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농협 변화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 민변, 협동조합개혁 TF도 만들어

 

국제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과거 민주노총 설립 당시 국제노동기구(ILO)가 국제적인 지원에 나섰던 것처럼, 농협의 변화에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 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농협개혁 운동이 가시화되면 국제적인 지원 활동도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3.11 전국동시선거 이후에는 일부 당선 조합장들에 대한 직무정지가처분소송 등 조합장 지위를 무효화하는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과거에는 한두 명의 개인적 소송으로 그쳤기 때문에 큰 파문을 불러오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전국동시선거이기 때문에 소송 자체도 집단화동시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집단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관계자와 접촉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민변 안에 협동조합개혁 TF가 만들어져 법적 문제의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압니다.또 과거 한농연 교육을 받고 협동조합의 위상이나 역할에 대해 눈을 뜬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지역 조합의 운영 실태에 문제를 제기하다가 강제 제명 당하곤 했습니다. 강제 제명을 위해 조합이 서류 위조 등 불법을 한 사례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 분들이 그걸 근거로 제명 무효 소송을 제기, 일부는 대법원까지 간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도 농협 정상화에는 참조 사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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