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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과 친노(1)] 주동식, "호남과 친노, 함께 갈 수 없는 이유"

윤준식 기자 승인 2015.04.01 22:08 | 최종 수정 2019.07.04 03:05 의견 0

지난 3월 26일 서울시NPO지원센터 1층 품다 룸에서 '호남과 친노 관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지역평등시민연대(이하 지평련)가 주관한 공개토론회가 열렸다.발제자로는 지평련 주동식 대표와 데이터정치연구소 최광웅 소장이 나섰고, 30여명이 참관했다. 이번 공개토론회는 발제자 2명이 기조발언을 한 후,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반론을 제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이를 위해 토론을 끌어내고자 도발적인 내용을 기조발언에 포함하는 시도가 있었다.그런 까닭에 발제 내용에 대한 이의제기도 나왔고 토론회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참석자도 있었다.

 

지평련 주동식 대표는 "어느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좀더 솔직한 의견 표명과 거기에 대한 반론 및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생산적으로 해소되고 통일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천정배 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후 무소속으로 4.29 재보궐선거 광주 서구을에 입후보함으로써 호남과 친노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며 다양한 예측이 나오고 있어 이번 토론회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지평련 측은 앞으로 월 1회의 주기로 관련한 정기토론회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이하는 지평련 주동식 대표의 첫번째 발제 "호남과 친노, 함께 갈 수 없는 이유" 전문이다.

 


 

 

호남과 친노, 함께 갈 수 없는 이유

지역평등시민연대 주동식 대표

 

어떤 종갓집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집안이 기울어져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저쪽 마을에 논밭을 많이 팔아넘겨야 했습니다. 어느날 저쪽 마을의 청년 하나가 이쪽 종갓집에 찾아와 자신이 사업을 해서 종갓집을 일으켜 세우고 저쪽 마을과도 사이좋게 지내게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이쪽 마을 종갓집에서는 청년을 믿고 그나마 남은 땅문서와 집문서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재산을 담보로 잡히고 저쪽 마을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데 썼습니다. 사업은 실패해서 큰 손해를 보고 원금도 많이 까먹었습니다.이쪽 마을 사람들이 항의하자 청년은 이들에게 짜장면을 사주면서 달랬습니다. 짜장면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그래도 그 청년이니까 우리에게 짜장면이라도 사주지, 원래 저쪽 마을 놈들이라면 우리를 쳐다보기라도 하겠느냐”며 청년을 믿고 기다리자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자, 이쪽 마을 사람들은 저 청년을 계속 믿고 재산을 맡겨야 할까요 어쩌다 선심 쓰듯 짜장면이라도 사주니까 이 청년이 착한 사람입니까

 

저는 호남과 친노의 관계가 이 종가집과 청년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친노세력은 호남이 몇 십 년 동안 피땀 흘려 쌓아온 정치적 자산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그 자산은 70~80년대 민주화투쟁의 성과이며,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흘린 피입니다. 그렇게 피맺힌 자산을 기반으로 친노는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됩니다. 선거 때가 되면 호남에 와서 표를 달라고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우리는 호남당이 아니다”며 호남과 거리두기에 나섭니다. 당내 경쟁에서 호남 후보를 떨어트리는 데는 유능하지만 정작 새누리당과의 중요한 대결에서는 항상 패배합니다.

 

호남의 경제가 추락하고 호남 인재에 대한 차별이 드러나고 인터넷에는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저주와 증오가 넘쳐납니다. 일베 사이트에 가면 지금 이 순간에도 호남 사람은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목을 잘라 죽여야 한다, 할아버지 대까지 호남 피가 섞인 인간들은 한 줄로 세워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야 한다는 소리가 수없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의 주류인 친노세력은 이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송금특검으로 남북대화와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했으며 대연정 제안으로 김영삼의 삼당합당 즉 호남 고립구도를 재현하려고 했습니다. 호남이 나 좋아서 찍었나 이회창이 싫어서 나 찍었지, 호남 정치인들과는 정치 같이 못 하겠다 등 직접 호남 정치를 폄하한 발언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논리 위에서 호남은 부패하고 타락한 세력이 되고 맙니다.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등 박근혜정권에 협력한 정치인들이 변절했다고 친노세력은 공격하지만 애초부터 그들이 민주진보 진영에 남아있을 수 없도록 비하하고 인신공격을 가한 무리가 친노세력이었습니다. 지금 친노의 주축을 이루는 정치인들 가운데 저 동교동계 정치인들의 반의 반만이라도 고생하고 민주화에 기여한 사람 있습니까 노무현 본인이라도 저 사람들 앞에서는 두 손 모으고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맞습니다.

 

새정치연합 당원 모임 등에서 당의 진로 얘기가 나올 때면 “호남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멀어져야 한다”거나 “호남 지역 의원은 3선 이상 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호남 사람들은 친노 정치인에게 표만 주고, 호남 정치인은 거물 정치적 지도자로 성장하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호남 정치인, 호남 유권자들이 친노세력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비하면 노무현정권 때가 낫지 않았느냐, 노무현 대통령이 나름 인사와 예산에서 호남을 배려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노무현과 친노세력이 훼손하고 뺏어간 호남의 정당성과 정치적 자산에 비교하면 장관 자리 몇 개, 선심성 사업 몇 개는 정말 사소한 것입니다. 호남은 집문서 땅문서 등 재산을 넘겨주고 그 대신 짜장면 몇 그릇을 얻어먹고 있는 것입니다.

 

호남이 낙후와 차별, 혐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호남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수행해온 행동과 선택의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친노세력이 호남의 명분과 정당성을 훼손하는 바람에 호남의 입지는 계속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노세력은 호남의 약점을 이용해서 호남을 위협하는 정치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유시민의 발언이 노무현과 친노세력이 호남에게 가하는 위협의 샘플입니다. “우리가 너희들 당선은 시킬 수 없어도 낙선은 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고립과 소외의 공포에 시달려온 호남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효과적인 무기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더럽고 야비한 협박이기도 합니다. 약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진보의 가치관을 가진 자라면 더욱 용납할 수 없는 발언입니다. 학교 일진에게 시달리는 빵셔틀 호남에게 잘해주는 척하면서 “나까지 너를 외면하면 너는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에게도 빵을 사서 바쳐”라고 협박하는 양아치가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의 모습입니다.

 

호남에 가장 부족한 것이 자기 정당성에 대한 확신입니다. 호남 사람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친노에게 매달립니다. 같은 말도 호남 사람이 하면 까보전(까고 보니 전라도)이라면서 폄하하지만 친노는 그런 공격에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역차별 문제를 공론화할 때마다 호남 지식인들이 보였던 “그런 얘기는 호남 사람이 하면 안 되고, 영남이나 다른 지역 사람이 해야 한다”는 반응이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탈출구 없는 순환논리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호남이 고립돼있고 혐오의 대상이니까 호남이 자신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내세울 수 없고 그 역할은 친노 정치인이 대신해야 합니다. 결국 호남에서는 대통령 후보가 될만한 거물 정치인은 나올 수 없고 나와서도 안됩니다. 거물 정치인이 없으니 호남 정치는 더욱 피폐해지고 결국 친노 정치인이 호남을 대변해야 합니다. 제1야당에서 호남이 소외되고 자기 권리를 찾지 못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호남에 인물이 있느냐”는 반론이 나옵니다. 애초부터 호남 인재는 크지 못하도록 만드는 구조에서 이것은 비겁한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가 이어지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호남은 아예 소멸돼 없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호남이 그렇게 매달리는 친노세력은 호남이 아니라 영남패권의 주류인 TK 새누리당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구애합니다. 문재인이 이승만 박정희 묘역에 참배하고 천안함 폭침설을 지지한다고 해서 말이 많지만 그 뿌리는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과 김영삼의 삼당합당에서 찾아야 합니다. 호남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그런 친노세력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자신들의 소중한 자산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호남의 진정한 비극입니다.

 

본질적으로 친노의 영향력은 호남에 대한 부정과 폄하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호남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수행해온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친노란 정치집단은 이렇게 거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친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향력은 모두 호남의 것을 네다바이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경오라고 불리는 진보 언론매체와 깨시민이라고 불리는 진보 성향 네티즌들 그리고 진보 진영 원로들이 친노세력을 옹호해주기 때문에 그런 행위가 정당화됩니다.

 

친노는 사실 호남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친노 정치집단에게 표를 주는 것이 호남 유권자일뿐만 아니라, 친노가 자산으로 삼는 정치적 명분들이 호남의 피땀으로 일구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호남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면서도 호남을 모욕하고 짓밟고 해악을 끼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존재가 친노세력입니다. 숙주 아니면 존재할 수 없으면서도 그 숙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기생충이 친노와 가장 비슷한 사례일 것입니다.

 

호남과 친노가 이렇게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하냐의 문제를 떠나 이런 관계는 진보개혁 진영과 야권의 쇠퇴몰락을 불러옵니다. 최근 새로운 정당 설립 움직임이 이어지는 것도 호남의 정치적 요구를 친노세력이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앞장선 세력이 실패한다 해도 호남과 친노의 왜곡된 관계가 이어지는 한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친노세력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노무현정권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던 분들이 호남과 호남 유권자 나아가 정통야당을 지지했던 모든 분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노무현정권 당시부터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호남 멸시, 호남 정치인 죽이기 그리고 김대중 폄하 등을 진정성 있게 사과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친노들이 진정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진정성이라는 말은 이런 곳에서나 써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정권 이후 친노세력의 중심에 서 있었던 분들은 일정 기간 동안 대통령선거 후보와 주요 당직 나아가 집권 이후의 임명직 등을 고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친노세력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겁니다. 결국 호남은 자기 발로 서야 합니다. 친노와 손잡아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면 차라리 당분간 집권을 포기하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고름이 살 되지 않습니다. 호남은 친노에게 기회를 줄만큼 줬습니다. 더 이상 친노를 용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비굴한 타협입니다. 친노가 변하지 않는 한 호남은 친노를 배제하고, 친노와 결별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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