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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빠! 그냥아빠?(5)] 한 몸이 된다는 건 헌신과 희생이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0.09.28 15:25 | 최종 수정 2020.10.19 10:15 의견 0

◇결혼식

여러 ‘과정’-검증 단계-을 거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 전날에는 지방에서 올라 온 처가 식구를 위해서 여러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정동극장에 가서 난타 공연도 보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하고 신혼집으로 가서 준비한 케이크도 먹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내도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결혼 전날 오후에 아내 동기한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형부, 저 000인데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희가 내일 축가 하는 건 아시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중간 간주 중에 형부가 편지를 읽어 주셨으면 해서요.”
“네? 지금 오후 3시인데.”
“조금 늦었지만, 가능하시겠죠?”
“어쩔 수 없죠.”

전화를 끊자마자, 가까운 팬시점에 들어가서 볼펜과 편지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부지런히 편지를 썼습니다. 한 30분 정도 쓰고 있으니, 아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 마중 나갈 거야?”
“응. 지금 들어갈 테니까 같이 가자.”

조카 5명을 포함해서 8명, 그리고 우리 부부. 모두 10명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신혼집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미용실에 갔고, 12시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10시쯤에 예식장이 될 강당에 도착했습니다.

일반 예식장은 예식장 직원들이 결혼식과 관련한 절차를 다 준비해주고 예행 연습까지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만, 강당에서 하는 결혼식은 그런 도움이 없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 손을 거쳐야 했습니다. 축의금 받는 자리도 만들어 줘야 했고, CD를 틀 수 있는 장치도 찾아줘야 했습니다. 하객들과 인사는 물론, 종종 신부한테 찾아가 진행 상황도 전달해야 했습니다.

‘이건 내가 신랑인지, 예식장 직원인지 알 수가 없네.’

라는 불만도 잠시, 12시가 다 돼가니 이제 예식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회자의 방송도 나와서– 당시 친구한테 사회를 부탁했습니다– 저도 하던 모든 동작을 멈추고 입장을 위해 강당으로 들어가려는 데, 저희 아버지와 장인어른께서 여전히 하객을 맞이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급하게

“아버지, 들어가셔야 해요.”

곧, 이어서

“장인어른, 들어가셔야 해요.”

두 분 아버님이 정확히 착석한 모습을 확인한 후 저도 강당 끝 편에 설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은 아주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준비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편지도 잘 읽었고, 축가도 좋았습니다. 이벤트로 준비한 마술 퍼포먼스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마무리됐다면, 강당에서 결혼하는 다른 커플과 다를 게 없었겠죠. 하지만 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결혼식 후 사회를 보던 친구가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식사하러 갔다고 합니다. 결혼식 이후에는 여러 번의 사진 촬영이 있습니다. 사회자가 사진 촬영 진행을 맡아줘야 하는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자 사라진 것이죠. 이제 어쩔 수 없이 제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지금부터 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모든 순서를 진행했습니다. 멘트를 하고 나서는 마이크를 뒷주머니에 넣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멘트를 하고 다음 사진 촬영 순서를 안내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결혼식이 끝났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장식한 꽃에 불이 붙어서 후배들이 껐다고 하네요. 정말 활활 타오른 결혼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고 합니다. 처음에 저는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혼은 신랑과 신부 둘이 하는 것이니 둘 다 주인공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활동적으로 참여하기 힘들었습니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인사하고 사진만 찍어야 했죠. 반면에 신랑은 이리저리 활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해야만 했죠. 그러니 주인공이기보다는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주 조연인 셈입니다. 멋진 연미복 속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신랑을 제외하면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조금 특이한 결혼식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랑의 처지가 ‘참 안 됐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혼식은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두 시간 동안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치러내면, 평생 함께할 여성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미리부터 주인공이 될 생각을 포기하면 스펙타클하고 드라마틱한 결혼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결혼식을 ‘강추’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제 두 자녀의 아빠가 돼서 결혼식 당일을 생각해 보니, 둘이 하나가 돼 한 몸이 된 부부라 할지라도 각자의 역할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부부라는 어우러짐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물론, 그 헌신의 주체가 남편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육아와 양육 과정에서도 이런 상황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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