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좋은아빠! 그냥아빠?(8)] 좋은아빠가 되는 길은 좋은남편이 되는 길

조연호 작가 승인 2020.10.26 15:10 의견 0

◇ 구하지 못한 딸기와 떡

사이다를 못 먹게 한 죄책감으로 아내가 원하는 음식은 무엇이든 구해 주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어떤 음식이라도 구해다 줄 거야!’

입덧 기간에 아내는 크게 요구한 음식이 없었습니다. 착한 아내는 오직 딱 두 번 먹고 싶은 음식을 요청했는데, 하나는 딸기였고, 다른 하나는 콩가루가 묻은 떡이었습니다.

저는 요즘은 뭐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려움이 전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기껏해야 마트나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찾고 돈 주고 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보, 생딸기가 먹고 싶어요.”
“응. 오늘 중으로 사다 놓을게요. 걱정 마요.”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아내가 들어오기 전에 딸기를 사기 위해서 대형마트로 출발했습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살던 지역은 일산이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죽 늘어선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마트를 목적지로 정하고 도착해서 과일 코너를 휘집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봐도 딸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냉동 딸기는 냉장고에 수북했지만, 아내가 원한 딸기는 생과일이었습니다.

‘이거 낭패네. 혹시 모르니까 물어보자.’

라고 생각하면서 과일 코너 주변에 있는 분께 문의했습니다.

“혹시, 생딸기는 없을까요?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요.”
“에고, 아내가 아기를 가졌나 봐요. 그런데, 어쩌나 요즘 생딸기가 나오지 않아서.”

아내가 임신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담당 코너에 계신 점원분은 쉽게 아내 상태를 알아차리셨습니다. 정말 제 마음만큼이나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곧 백화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답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마트와 마찬가지로 생딸기 여부를 물어본 점원분도 마트에서 만난 분과 똑같이 아내의 임신을 아셨습니다. 다들 경험에서 나온 추측이겠죠.

이쯤 포기해도 아내는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구해주고 싶었습니다. 생딸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저는 꼭 생딸기를 아내한테 주고 싶었습니다. ‘아곤’이한테도 꼭 딸기를 먹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남은 곳은 생과일주스를 만드는 카페였습니다. 생과일 주스가 붙은 카페만 보면 들어가서

“혹시, 여기는 딸기 주스는 생딸기로 만드시나요?”
라고 묻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모든 답은

“아니요. 냉동 딸기입니다.” 였습니다.

결국, 딸기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7월에 딸기를 구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처음 알았습니다. 이제 남은 건 아내한테 구하지 못했다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아내한테 구하지 못했다는 말을 전하는 게 너무나 싫었습니다. 행복하게 웃으면서 남편이 구해 온 딸기를 먹는 아내를 상상했는데, 이제 실망한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생딸기를 파는 곳이 없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히 딸기 먹고 싶다고 해서 여보가 고생했겠네.”

신혼은 달리 신혼이 아닌가 봅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그래도 못 해준 게 미안하고. 이런 마음으로 평생 살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있을까요? 어쨌든 저는 딸기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곤’이는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입니다. 딸기 한 팩을 씻어 놓으면, 정말 순식간에 작은 뱃속으로 다 들어갑니다.

◇ 흔하지만, 다른 떡

철 지난 딸기는 구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떡을 먹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을 들어주는 건 정말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원한 떡은 저도 처가에서 먹어 본 떡이었고, 넓고 넓은 서울에서 아내가 원하는 떡을 사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착각이었습니다. 종류도 많고, 더 좋은 떡이 많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내가 먹고 싶은 떡은 팔지 않았습니다.

“혹시, 여기 콩가루 묻은 떡 있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원한 떡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떡은 많았지만, 아내가 원한 떡은 찾을 수 없었죠. 그래도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가장 비슷해 보이는 떡을 무려 백화점에서 골라 들고 차에 올랐습니다. 떡을 구매한 시간은 고작 15분 이내였고, 제가 들어간 백화점은 만 원 이상 구매하지 않고 나가려면 주차비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네. 구매 금액이 만 원이 안 되네요.”
“그렇죠? 아내가 임신 중인데, 떡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러 왔는데. 많이 살 수 없어서요.

이 말을 듣고 있던 주차정산 담당자 여성분이

“에고, 그렇구나. 그냥 가세요. 떡 잘 전해 주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분들은 다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남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는 거 같았습니다. 주차비는 내지 않았지만, 아내가 원하는 떡이 아니어서 제가 더 속상했습니다.

“여보, 여기 떡.”
“응. 고마워요.”

떡을 포장한 비닐을 벗기고 아내가 떡을 한 입 베어 뭅니다.

“여보, 고생했는데 내가 원한 맛은 아니네?”
“응. 나도 구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지역이 다르니 떡도 같은 게 없나 봐. 미안해요.”

임신한 아내가 원하는 떡을 구해다 주지 못한 자책감에 목소리도 작아졌습니다.

“괜찮아. 다음에 우리 집에 가기 전에 엄마한테 말해 놓을게.”
“응. 그래요. 정말 다 구해 주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많아.”

아내가 입덧 기간에 원했던 오직 두 가지 음식. 그 두 가지 모두를 저는 제대로 구해 주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지금까지 그 시절과 관련한 서운함을 한 번도 말한 적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아내와 ‘아곤’이한테 미안한 마음입니다.

좋은 아빠가 되는 건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내한테 잘하면, 태중에 있는 아이도 태어난 아이도 좋은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런데 잘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하기 힘든 게 부부관계 아닌가 합니다. 신혼 때처럼, 혹은 임신한 아내의 둥근 배를 사랑스럽게 지켜봤던 시절을 떠올린다면 조금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좋은 아빠 TIP

1. 세상에 나오기 전 아내한테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입니다.

2. 자주 음성을 들려주세요.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당연히 할 것 같지만 바쁘거나, 습관이 되지 않으면 잘하지 못합니다. 익숙하지 않으면, 원래 잘하기 힘든 법이니까요.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아이에게 음성을 들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