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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빠! 그냥아빠?(10)] 아이가 태어나던 그 날을 기억해보세요.

조연호 작가 승인 2020.11.08 14:05 의견 0

◇ 아곤’이가 ‘안아’가 되던 날

2013년 3월 17일 아침이었습니다. 아곤이가 나올 준비를 하느라 아내의 진통이 새벽부터 시작됐습니다. ‘아곤’이는 태아 때부터 엄마를 크게 힘들게 하지 않은 효녀였기에 세상으로 나오는 날도 쉽게 나올 거로 생각했습니다.

처가댁에서는 막내딸이자 셋째 딸인 아내의 첫 출산을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장모님과 처형들이 새벽부터 준비해서 먼 대구에서부터 서울까지 상경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전부터 함께하면서 낯선 상황을 맞이한 아내를 잘 보살펴 주셨습니다.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교회에서 예배 후에 목사님께 기도도 받았는데, 도중에 아내가 꽤 심한 진통을 느끼면서 주저앉기까지 했습니다. 목사님은 열심히 기도해주셨지만, 여성의 진통에는 당황하셨던지 다른 여성 교역자께 아내를 부탁하고 서둘러 다른 성도와 인사하기 위해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사실, 남편인 저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 도와주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은 더 막연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금 진통이 멎어 처가 식구들과 식사도 하고, 괜찮은 분위기의 카페에서 역사적인 날을 기념했습니다. 아내는 종종 걷지도 못할 만큼 심한 진통을 느꼈지만, 대체로 즐겁게 아곤이와 마지막 날을 잘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저녁 7시쯤 ‘아곤’이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새벽부터 진통이 있었으니 거의 19시간 만에 병원에 간 셈입니다. 그때까지 몰랐습니다. 아내의 진통 시간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절대적으로 길다는 것을.

아내는 거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돼서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곧 산통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무통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했는데, 통증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무통 주사를 요청했습니다. 가끔 주사를 맞아도 소용없는 산모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내가 그런 산모였습니다. 산통은 심해지는데, 약효가 전혀 없었습니다.

8시가 넘어서 출산을 시도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을 주고, 소리를 질러도 ‘아곤’이는 좀처럼 엄마 뱃속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엄마의 뱃속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처럼 말이죠.

아내는 고통을 참기 위해서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손톱으로 제 손을 뜯었습니다. 당연히 살갗이 벗겨져 붉은 피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산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더 컸는지,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아내의 고통만큼 눈물을 흘리면서 옆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이 몇 시간 흘렀습니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이러다가 아내가 죽으면? 아니 아이가 죽으면? 최악은 둘 다 죽는 거구나.’

이렇게 일어나지도 않을 문제를 미리 생각하고 걱정하는 걸 ‘램프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쓸데 없는 걱정의 90% 이상은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내와 ‘아곤’이에 대한 불안함도 기우(杞憂)에 그쳤습니다.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나오지 않자, 담당 선생님이 저를 조용히 부릅니다.

“이렇게 한 20분 정도 더 기다려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제왕절개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제왕절개 할 때 종종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보호자 동의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네. 당장 해주세요.”

저는 찰나도 고민하지 않고, 동의서에 서명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더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잠시 아내와 떨어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또 불안함이 몰려왔습니다.

‘혹시 수술하다가 잘못되면?’

그렇게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한 아이를 초록색 천에 싸서 능숙하게 안고 나옵니다. 아이를 본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구나.’

눈도 못 뜨고 입만 벌리고 있는데, 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냥 꿈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새로운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왜 아기가 안 울지?’

그러고 보니,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아기가 울지 않으면 말을 못 하는 거로 알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또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아이가 말을 못 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몇 초 후에 해결됐습니다.

“아가 아주 크게 울대!”

옆에 계셨던 장모님께서 아이 사진도 찍으시면서 울음소리를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큰 울음소리를 정작 아빠는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참 아쉽습니다. 그런데, 거의 24시간 진통 끝에 세상에 나온 아이의 큰 포효도 ‘네가 내 딸이구나.’라는 감격의 정적의 울타리를 뛰어넘지는 못했나 봅니다. 그리고 아곤이는 성장하면서 정말 말을 많이 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곤’이는 2013년 3월 18일 0시 56분에 태어났습니다.

아내는 ‘아곤’이에게 젖을 물려주고 제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마취도 덜 풀린 상태에서 한마디 했습니다.

“여보, 미안해! 자연분만하지 못해서!”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꽤 오랫동안 그야말로 펑펑 울었습니다.

솔직히,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남자한테는 출산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랜 진통 끝에 제왕절개를 하니 아이보다도 아내의 건강이 더 걱정됐습니다. 이후 아내는 정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아울러 ‘아곤’이의 엄마 뱃속에 대한 애착은 영유아 시절,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엄마만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 좋은 아빠 TIP

1. 출산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당황하지 않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마음으로 하십시오. 무턱대고 기다리기만 해서 될 게 아닙니다. 엄마만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순산을 위한 아빠의 역할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2. 쓸데없는 걱정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함께 손도 잡아주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3. 출산 날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십시오. 그러면, 지금 옆에 있는 아내와 아이가 정말 사랑스러워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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