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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빠! 그냥아빠?(11)] 아빠가 되는 느낌, 참 좋습니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0.11.13 15:20 의견 0

◇ 아빠가 시작되다

이제 안아가 된 우리 첫 딸은 2주간 산후조리원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당연히 엄마와 아빠도 같은 조리원에서 지냈습니다. 사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자고 싶어서 잠시 방에 데려온 적도 있었는데, 초보 엄마, 아빠한테는 쉽지 않은 시도였습니다.

“그냥, 우리 2주간은 서로 몸조리 잘하자.”
“그래.”

서로 편안하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기는 엄마를 정말 힘들게 하면서 세상에 나왔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 지냈습니다. 모유도 먹고, 분유도 잘 먹고, 잘 놀았습니다. 여러 아이가 누워있는데도 제 딸이라서 그런지 구분하는 데 어렵지 않았습니다. 누가 봐도 제 딸처럼 보였습니다. 새 생명은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참 알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좀 염려스러운 부분은 발이 건조해서 하얀 각질이 일어나 금이 간 것처럼 보였는데, 걱정스럽게 물어보니 원래 아기들 중 그런 경우가 있다고 답해줍니다. 그리고 한 1~2주 정도 지나면 사라질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리원에서는 아빠가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육아와 관련한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초보 아빠의 눈은 멀었고, 귀는 막혀 있었습니다. 내 아기를 안아주는 것조차 겁 나서 기피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한 번은 아기 목욕 교육을 조리원에서 진행하는 데 목욕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높이의 산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아빠가 저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갓난아기를 한 번도 돌본 적 없는 초보 아빠한테 첫 딸은 사랑스러운 공포였습니다. 정말 사랑스러운 딸이지만, 혹 ‘단 둘만 남는다면?’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르던 때였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2주가 흘렀습니다. 이제 본가로 들어갈 때가 됐습니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조리원과 달리 본가는 열악했습니다. 안아를 목욕시키려 해도 큰 대야를 준비하고 물을 뜨겁게 끓여서 찬물을 섞어서 사용해야 했고, 이미 4월이었지만,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4월은 겨울만큼 추웠습니다.

몸 회복이 완전히 안 된 아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 이제 조부모의 역할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상한 할머니의 생각과 엄마의 생각이 다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 ‘조안아’로 할게요

안아가 태어나자마자, 저는 읍사무소에 갔습니다. 왜냐하면, 빨리 출생신고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우리 딸은 무럭무럭 튼튼하게 마을마다 역사를 자랑하는 정자나무처럼 잘 자랄 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출생신고를 늦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이름도 정해둔 상황이었습니다. 여아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아곤’이라는 태명을 포기하고 ‘안아’로 부르기 시작했죠. ‘안’은 ‘평안할 안(安)’입니다. 그리고 ‘아’는 ‘아시아 아(亞)’로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읍사무소에 도착해서도 당연히 한자로 ‘안아(安亞)’를 적어 냈습니다.

그런데, 제 모습이 왠지 성급해 보였는지, 담당하시던 분이

“이렇게 지금 등록하시면 혹 마음에 안 드실 경우, 개명 절차를 거쳐야만 이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판단하셔야 해요.”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당당하던 제 마음도 잠시 멈칫했습니다. 혹시, 우리 부부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네. 그러면 잠시만요.”

접수를 잠시 멈추고 스마트폰에서 ‘아시아 아’를 검색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아시아 아’의 뜻이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한자로 ‘조’가 ‘나라 조(趙)’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안아’의 뜻은 아시아, 즉 세계를 평안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의 뜻이 좋지 않았으니, 원래 계획같이 사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얼른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여보, 안아 이름 등록하려고 마지막으로 ‘아’를 찾아보니, 별로 좋은 뜻이 아니네.”
“그래? 그러면, 우리 아빠가 보내주신 ‘아’와 관련한 한자가 있으니 그중에 하나로 결정하자.”

마침, 장인어른께서 ‘아’와 관련한 한자 10가지를 아내한테 보내주셨고, 그중에서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는 이제 ‘아름다울 아(妸)’로 바뀌었습니다. ‘세계를 평안하게 하여라.’에서 ‘세상을 평안하고 아름답게 만들어라.’라는 뜻으로 더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게 됐습니다.

후에 장인어른께 여쭤봤습니다.

“아버님, 왜 저희가 고를 ‘아시아 아’가 좋지 않은 뜻이었음에도 만류하지 않으셨나요?”
“너희가 공들여서 결정한 이름에 간섭하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혹시 너희가 ‘아’를 바꿀지도 모르니 대비해서 몇 자 적어 보낸 거란다.”

장인어른의 선견지명과 관심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조안아’라는 이름은 현재 뜻이 아니었거나 출생신고가 조금 늦어졌을 것입니다.

아빠의 기쁜 성급함으로 우리 딸 이름에 좋지 않은 한자가 섞일 뻔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장인어른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되새깁니다.

‘내가 아빠구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10개월간 배 속에 아기를 안고 있기에 항상 아기의 존재를 인식할 겁니다. 그리고 항상 ‘내가 네 엄마야!’라고 말해 주겠죠. 하지만, 아빠는 매일 “내가 아빠야!”라고 하면서 음성을 들려주더라도 엄마 같은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구 결과는 태아도 아빠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어서 자주 들려주는 게 좋다고 합니다.

조리원에서 안아가 집으로 왔는데, 아빠 역할이 쉽지 않았습니다. 15분마다 수유를 해야 했는데, 거의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에 저는 지켜보거나, 트림을 시키거나 잘 때 조금 달래는 수준의 역할만 했습니다. 그것 또한 익숙하지 않으니, 자주 하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낮에는 안아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다짐과 계획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리고 분명 안아의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안거나 재우거나 기저귀 갈아 주는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색하고, 왠지 내가 하면 문제가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선배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기 돌볼래? 군대 다시 갈래?라고 하면 당연히 군대에 다시 간다. 아냐?”
“그런 게 어딨어요?”

라고 반문하면서 웃었는데, 그 심정을 조금 알 거 같았습니다.

‘도대체 저 아이는 누굴까? 나랑 닮긴 했는데, 익숙해지지 않으니.’

그렇게 한 2주 정도가 지났습니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안아는 엄마 품이 아니면 불안해했습니다.

“오늘은 어머니랑 나랑 산부인과에 가는 날이야. 그러니 병원에서 잠시 안아를 당신 혼자 돌봐야 해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나 혼자 안아를 돌보라고?’ 속으로는 절규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차마 내색할 수 없었습니다. 내색해봤자 돌아오는 반응은 아내의 굳어진 표정일 테니까요.

“알았어. 아빠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잠시 후, 아침을 먹고 계획대로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두 여성 분들은 각자 진료실로 찾아가고 저는 안아를 안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안아는 엄마와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도 울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엄마와 할머니가 주변에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목도 잘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기를 안고 ‘제발 울지 말아 줘!’라고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아빠. 이런 마음을 주변 사람들이 알 수 있었을까요?

그때 지나가던 한 할머니께서

“정말 아기네. 귀엽기도 해라.”

라고 하면서 자상한 할머니 미소를 짓고 가셨는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런 칭찬에 흡족해야 하지만, 무관심보다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안아가 고개를 들더니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이제 올 것이 왔구나!’

곧 안아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온 병원에 널리 퍼질 거라 예상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안아는 어렵게 고개를 돌려 좌우를 보고 나더니, 눈을 들어 제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드는데, 하나는 ‘내 딸 참 예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발! 제발!’

“아빠야!”

눈을 마주치면서 웃어줬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안아가 울지 않았습니다. 아빠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울지 않고, 얼굴을 제 가슴에 묻습니다. 그러고 나서 눈을 감고 잠이 들었습니다.

“어? 자네!”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엄마도 할머니도 없는데, 아빠한테 안겨 잠이 든 것입니다. 그것도 평온하게요.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빠구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전까지는 내 딸이어도 낯선 존재였고, 내가 아빠여도 정말 안아가 나를 아빠로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안아는 저를 아빠로 생각하고 있었고, 저도 조금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것을요.

엄마와 할머니의 진료는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안아의 첫 예방접종을 예약한 날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늦네. 예약된 시간이 다 됐는데. 나 혼자서라도 가야 하나?’

곧 안아는 잠에서 깼습니다. 하품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머리카락이 얼마 없는 머리에 연신 입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아직 울지 않는 안아를 보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 혼자 가자!’

안아를 안고 두 손에는 육아용품이 담긴 가방을 챙겨서 소아 과로 이동했습니다. 안아는 그새 익숙해졌는지, 울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잘 챙겨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습니다. 아빠도 그 믿음을 깨기 싫었습니다.

예방 주사는 허벅지에 두 번을 맞아야 했습니다. 어린 동생들이 주사 맞을 때 우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안아도 당연히 크게 울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안아는 첫 번째 주삿바늘이 꽂히고 주사액이 다 투여될 때까지 울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맞는 주사이고 꽤 아팠을 텐데 울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안아는 성장하는 동안에 많은 예방 주사를 맞았지만, 울지 않았습니다. 치과에 가서 치료할 때도 울지 않고요.

하지만, 두 번째 주삿바늘이 다른 쪽 다리에 꽂히자 이내 울기 시작합니다.

‘아, 결국 우는구나! 많이 울지 않아야 하는데.’

아기가 울면, 초보 아빠들은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들은 우는 아이를 잘 달랩니다. 역시 초보 엄마인데도 말이죠. 그 차이는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아빠나 엄마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천사 같은 아이라 할지라도 악마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다행히 금세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리고 곧 엄마와 할머니께서 소아 과로 와서 안아를 받아줬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안아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빠와의 모험도 즐거웠겠지만, 엄마 품만큼 안정적인 곳은 세상에도 없었을 테니까요.

“오늘은 제가 좀 아빠 노릇 좀 했네요.”

라고 자찬하면서 제 품에 안겨서 잠든 안아 이야기와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서 혼자 안아를 데리고 온 이야기를 영웅이나 된 듯이 떠들어댔습니다. 아내와 어머니께서는 저의 자화자찬에 흡족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래, 고생했어!”
라고 격려해줬습니다.

아빠가 된다는 느낌, 참 좋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아빠가 됐습니다.

◇ 좋은 아빠 TIP

1. 엄마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와 많이 놀아 주세요. 아이는 아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도 자주 스킨십을 해줘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곧 익숙해 집니다. 그래야 아이도 빨리 아빠한테 적응합니다.

2. 모든 것은 준비입니다. 부모의 역할이 나눠져 있겠지만 혼자 돌 볼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서 기본적인 육아는 가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용변이 담긴 기저귀는 누가봐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주 갈다 보면 익숙해 지는 것이죠. 아빠도 자주 갈면, 쉽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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