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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빠! 그냥아빠?(12)] 최고의 남편과 최고의 아들 사이

아내 앞에서 최고의 남편이, 어머니 앞에서 최고의 아들이

조연호 작가 승인 2020.11.23 14:15 의견 0

◇ 현명하지 못한, 남편이자 아들

평소에 관계가 꽤 좋았던 고부간이었기에 사랑스러운 안아를 돌보는 데 협력이 잘 이뤄질 거로 예상했습니다. 이 글을 보고 “진짜?”라고 의문을 품는 독자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 제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손녀를 사랑해주셨고, 아버지와 함께 이른 새벽부터 깬 안아를 우리 부부를 대신해서 돌봐주시기도 했고,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를 위해서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어머님의 정성은 아내도 잘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세대와 우리 세대의 양육법은 달랐습니다. 과거 세대는 민간요법에 가까운 방법으로 아이를 달래고 응급 처치했다면, 현대는 의학이 발달했고, 그래서 육아와 관련한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초보 부모들이 그런 자료들을 읽고, 과거의 통념을 바꾸는 시대입니다.

제 부모님 모두 대학을 나오신 분들이었지만, 과거의 통념을 버리고, 혹은 자녀들이 원하는 방식을 존중하면서 도와주시는 게 쉽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기들은 배부르게 배 빵빵하게 먹으면 잘 자고 칭얼대는 것도 덜 하단다.”

하지만, 아내는 안아의 나이에 맞게 적당히 먹어야 하고, 혹 일부러 더 먹이면 후에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읽고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분유 먹이는 양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아니, 주로 모든 갈등의 원인이 분유 양에서부터 깔때기처럼 시작 됐습니다.

“여보, 오늘도 어머니께서 안아 분유를 140이 아니라 160을 먹이셨어. 애가 다 먹었으면 모르는데, 한 20 정도를 남겼거든.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여보가 말씀 좀 잘 드려봐.”
“응, 알았어. 별거 아니니까. 흔쾌히 들어 주실 거야.”

하지만, 20ml 분유의 차이는 분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초보 아빠는 잘 몰랐습니다.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아내 곁에는 종일 보채는 안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도 어느 정도 보조를 해주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내와의 갈등이 조금씩 쌓여가니 전처럼 적극적으로 관여하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제가 집에 하루 내내 머무르면서 아내와 같이 육아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저는 매일 대학원에 가서 학업을 이어갔고, 주중에 며칠은 한 연구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낮에 아내와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보, 언제 들어와?”
“응. 2시간 정도 있으면 끝나.”
“끝나고 바로 들올 거지?”
“응. 그래야지.”

매일 서로 주고받는 메시지였습니다. 사실, 아내와 갓난아이만 두고 나가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데 다른 약속을 만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결혼 이후에 보태진 살을 빼기 위해서 운동을 다녔는데, 이제 운동마저도 하지 말라는 아내의 요청을 들어줘야만 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여전히 두 고부간의 관계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알았어. 오늘은 내가 어머니 모시고 나가서 말씀드리고 올게.”

상식적으로는 참 쉽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그 아내,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첫 손녀. 결혼 전에도 아들 말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들어 주시려 했던 어머니였기에 저는 잘 말씀드리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오늘 저랑 마트 좀 다녀오시죠.”
“그래? 뭐 살 거 있어?”
“네. 안아 분유도 좀 더 사고요.”
“그래.”

어머니를 모시고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커피를 사드렸습니다. 커피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보니 봄 같지 않은 봄 탓에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어머니, 제가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뭔데?”
“그냥,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해주세요. 분유 140만 먹이겠다고 하면, 그렇게 해주세요. 그냥 140만 타 주시면 되잖아요. 안아가 더 먹겠다고 하면 이후에 아내가 더 타서 먹이도록요.”
“내가 뭐 억지로 먹인 다냐? 다 먹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냥 140만 타서 주시거나 그렇게 먹여주세요. 별거 아니잖아요.”
“알았다. 내가 뭐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있는 줄 아니?”

140 논쟁은 여기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죠. 어느 날 집에 들어가니 안아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있었고, 아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으로 들어갔더니,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 아내는 마음 속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토마토 같은 사람입니다. 적어도 남편한테는 그렇습니다. 다행히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편이어서 얼른 곁에 앉아서 물어봤습니다.

“오늘 뭐 힘든 게 있었어?”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안아가 분유 먹을 시간이 됐는지, 어머니께서 분유를 타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번에도 160타서 안아가 다 먹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응?”
“나가지 마! 그냥 있어!”

대형 충돌을 미연(未然)에 막기 위해서 나가려 했던 저를 저지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옆에 앉았죠.

곧 안아의 분유 먹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시 후, 안아가 다 먹었는지 분유를 거부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아내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두 고부간의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그 둘을 아버지께서 중재하려 하셨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안아는 제 품에 안겨 있는 상태였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나면, 남편과 아들 역할을 잘해야 집 안이 조용하다고 했는데, 저는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 좌절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저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여보, 미안해.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정말 잘해보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여보를 생각하면, 낯선 집에 나만 믿고 들어왔으니 정말 잘해주고 적극적으로 편이 돼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 안아를 키우다 보니,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의 고생이 느껴져서 어머니한테도 더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된 거 같아.”

이렇게 말하고는 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제발 한 번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 딸은 제 양팔 위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크게 울었겠죠. 제 호소가 먹혔는지, 아니면 휴전국면이었는지 어머니께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모범 답안 남편, 아버지께서도 따라 나가셨습니다.

아내와 저도 방으로 들어와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맞아. 여보가 잘못했어.”

잠시 후 어머니께서 방문을 여시고 먼저, 사과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존심 센 분이 며느리한테 먼저 숙이셨습니다.

현재 두 고부간이 사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전에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그래도 꽤 좋은 사이입니다. 다만, 이 사건은 두 여인과 저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됐습니다. 덕분에 서로 조심하면서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좋은 아빠 TIP

1. 출산 후에 여성은 여러 가지 이유 – 출산 우울증 등 – 으로 많이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가 없으면, 당연히 아내한테도 아이한테도 좋지 않습니다. 아내를 위하는 게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입니다.

2. 갈등은 없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점이 더 부각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의 보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남편의 본가보다는 아내의 본가가 더 편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부간의 관계가 좋아도 두 여성이 알고 지낸 기간을 고려할 때 친정만큼 편하기는 어렵습니다.

3. 남편의 역할이 정말 현명하게 필요합니다. 아내한테 있을 때는 최고의 남편이 된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어머니와 있을 때는 최고의 아들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 앞에서 어머니 변명을 하거나 어머니 앞에서 아내를 두둔하면,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이성적 판단이 감정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스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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