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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_이야기(3)] 발밑 땅의 정향

칼럼니스트 박대선 승인 2021.12.17 11:10 의견 0

기본소득은 내 발밑 땅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합니다. 기본소득을 받아들이기 위한 첫 단계로, 같은 정치 단위에서 사는 ‘진짜 나’ 위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기적 욕망과 정치적 행동을 자기 일인 양 일삼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에서 ‘나’를 배제하면서 관람하는 소비문화 또한 오래되었지요. 지난 이야기에서 디스토피아를 보여드렸던 이유가 그런 이유입니다.

내적인 욕구와 사회적 실천, 두 영역에서 조화롭게 비추어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창조적 참여를 통해 가능한데 작게, 밥상머리 토론, 학교나 마을 같은 지역 안에서의 문제점 표현 등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갈등과 긴장을 건설적인 에너지, 또 목표로 전환시키는 정치구조를 ‘선물’로 줍니다. 즉 정치는 ‘보살피고 친구를 맺는’ 자유인의 영역입니다.

대통령 선거 열기가 한창인 지금, 기본소득 재원을 어디서 끌어와야 하느냐의 논의가 없을 수가 없겠지요?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사고의 훌륭한 전환이지만, 그 자체로는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핵심 동력이라고 보기에 무리인, 한계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첫 이야기에서 선보인 ‘공유부’의 원리를 적용할 때, 자기 발밑 땅을 고려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빈곤해진 자본으로 인해, 서민들은 내 땅뙈기 부동산에 목을 매었습니다만, 정부의 해결책은 요원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땅은 다른 물자와 달리, 한정된 자연물이란 특성을 갖습니다. 그렇다면 투기가 판치고, 가진 집을 담보삼아 또 영위하지도 않는, 땅과 집을 늘린다면 부는 쌓이기 마련입니다. 공공은 물론이요 민간이 부동산을 개발할 때, 집값이 아닌 ‘땅값’만큼은 이웃한 주민이 있기에, 즉 수요이고 원인이기에 오릅니다. 그럼에도, 결국 돈이 없는 개인은 점점 가난하게 되고 맙니다.

불평등의 주원인인 토지 불로소득이 매우 심각한 처지여서 이를 재원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유의미한, 한계를 넘어선 변화를 가져오는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토지는 다시 말하지만 개인이 함께 누린다는 본질이 있습니다. 잠시 자기 발 아래 '내 것'으로 둘 수 있지만, 엄연히 또 다른 누군가의 발밑과 연동됩니다. 함께 누리는 공기로 내가 숨을 쉬는 것과 같고 한 번에 공기를 독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본소득은 태어나면서 주어진 발밑 땅(또는 자유)을 어떻게 쓸지, 함께 고민하면서 창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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