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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드는 공간, 함께 만드는 동네(9)] 자원순환창고 모델로 DIT의 순환을 기획하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22.09.22 05:00 의견 0

도시재생 스타트업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님과 함께 하는 DIT 이야기. 9회에서는 지속적인 DIT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 디자인과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자원순환창고 모델을 제시합니다.


윤준식 편집장(이하 ‘윤’): DIT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행정적인 역할의 중요성도 실감하게 됩니다. 사실 제가 군수계원이라는 행정병 출신인데요. 군대에서 훈련 나가면 전투 근무 지원으로 여러 제반상황을 가정해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계획을 세웠거든요. DIT에서 각 사람의 체질까지 고려해 식사를 준비한다고 하셔서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DIT도 공간을 만들려면 기본적인 인력, 장비, 자재가 필요할 텐데 제가 군수계원으로 일할 때도 그런 걸 지원하기 위한 공급실이라는 창고가 있었거든요? 창고 안에 여러 가지를 담아놨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빌려주고, 훈련 나갔다 들어오면 수량 맞춰서 정비해 넣고요.

DIT를 진행하면 분명히 남는 자재가 있을 거예요. 앞서 파손을 감안해 좀 넉넉하게 준비한다는 말씀도 하셨고요. DIT를 위해 구매한 장비도 있겠죠? 남은 자재를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의 문제도 궁금해요.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이하 ‘오롯’): 행정지원부터 말씀드리면 정말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부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사소하지만 참여자 분들이 감동을 느끼시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거든요. 특히 식사 관련해서는 비건이나 알레르기를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고기나 맛있는 거 주면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참여자분들의 2박 3일의 경험이 괴롭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회의를 할 때는, 기호가 아닌 특수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어떤 사람이 원하는 부분이나 더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조사를 하죠.

숙소를 마련할 때는 코골이가 심하신 분이 있어요. 그런 경우 본인이 피해를 주는 것이 미안해서 어울릴 때도 소극적이거든요. 최대한 주변 소음 상관없이 잘 잔다는 사람과 엮어주고, 때에 따라서는 혼자 주무시게 하는 것도 고려해요. 이런 부분을 모집 단계에서 잘 파악하면 나중에 많은 소요가 없죠.

남는 자재에 관해서는 저도 이 일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공간 산출을 해본 적이 있어요. 대안으로 자원순환창고를 떠올렸습니다. 자원이 버려지지 않고 순환하는 쓸모를 갖추기 위해 대규모의 창고형 공간이 필요한 거죠! 이케아나 트레이더스, 코스트코를 떠올려보시면 감이 오실 거예요.

윤: 같은 종류의 집기나 자재를 모아놓는 공간인가요?

오롯: DIT가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면, 이 공간은 더 큰 의미에서 DIT가 필요한 순간들을 만들기 위한 전체적인 그림입니다.

일단 지역 내에 유휴 공간을 쓸모 있게 만들려는 분위기가 필요해요. 그러면 장비도 필요하실 테죠? 사실 DIT 교육을 아무리 잘해도 결국에 DIT를 스스로 못하는 이유는 장비가 없어서예요. 실제로 “장비만 있으면 내가 진짜 집도 짓는데!”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래서 공공의 영역에서 장비를 맡아주거나 렌탈, 또는 교육해주는 메이커스페이스 같은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처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관련 지원사업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지원사업들을 총망라한 모델을 만들어봤습니다. 자원순환창고는 어떻게 보면 지금의 재활용센터라고 많이 부르는 업사이클링센터를 확대한 개념이에요. 잘 몰라서 그렇지 지자체 단위에서 리폼 공간을 구상하는 곳이 꽤 많아요. 근데 그냥 운영 위탁사가 리폼해서 파는 활동에 그치는데, 저는 여기에 DIT 교육 프로그램을 접목하면 주민 접촉 층이 더 많아진다고 보는 거죠.

윤: 그러면 지금 말씀하시는 모델은 자원순환창고, 재활용센터에 더해 메이커스페이스 기능까지 하는 공간이네요? 자원순환창고는 임의로 붙이신 명칭인가요?

오롯: 자원순환창고, 메이커스페이스, 커뮤니티 공간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요. ‘자원순환창고’는 많이 쓰이는 ‘자원순환’이라는 용어에 창고라는 개념을 더해서 제가 만든 말이고요. 이렇게 단어를 합치면 일반인에게도 목적성이 좀 더 명확하게 전달될 것 같아서요.

윤: 그런 형태의 창고에 메이커스페이스와 커뮤니티 공간까지 만들려면 면적도 넓고 충고도 높아야 할 것 같아요. 지역에서 그런 공간을 마련하기 쉽지 않을 텐데, 수도권보다는 농촌에 거대한 창고가 버려진 곳들이 있죠?

오롯: 맞아요. 실제로 업사이클링이나 DIT에 대한 요구가 많은 곳도 농어촌 지역입니다. 이분들과는 계속 협업해왔죠. 근데 시공이 약간의 기술과 센스가 복합적으로 필요한 분야라 청년의 역할이 많이 필요해요. 나라에서도 도시재생과는 별도로 청년마을만들기라든가 어떻게 하면 청년을 농어촌 지역으로 이동시켜서 연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DIT 프로그램이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이 공간을 구상할 때 기존에 있던 창고를 이용해 공장형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공업단지 안에 있는 창고형 공장이나 쌀 창고 크기가 좀 비슷해서 그런 공간들을 염두에 두고 공간 설계를 했습니다.

윤: 도시 내에서는 비슷한 예가 없을까요?

오롯: 수도권에서도 지자체에서 말씀드렸던 업사이클링센터, 재활용센터는 운영하고 있어요. 부지를 이용해 문화 복합적인 전시도 하고요. 다만, 제가 모든 프로그램을 알진 못하지만 목적이 더 주민 참여로 가서 계속 이 문화가 제대로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시공 교육이 강화돼야 합니다.

윤: 지역에 작은 목공방들 보면 그 지역에서 나무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분들이 티 안 나게 많이 모여요. 공방 사장님의 지도 아래 장비 사용법이나 자재, 설계에 대해 배우죠. 최신식 장비를 갖춘 곳도 있고요. 보면 숨은 지역 거점과 실력자들, 숨은 DIY 취미를 가지신 분들이 분명히 있는데, 이런 인적 자원이 커뮤니티 매핑 같은 걸 통해서 발굴되면 좋지 않을까!

오롯: 그렇죠. 앞서 자원순환창고랑 메이커스페이스는 제가 공공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구상했기 때문에 부처나 지자체 자금으로 지역을 위해 공공성 있게 운영돼야 할 거고요. 더 많이 해야 하는 것들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소규모 목공방, 페인트 가게 같은 곳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중간지원조직처럼 그분들이 강사도 되고, 실제로 어느 집에 가서 수리도 해주는, 즉 그분들이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또 그분들의 일도 지속 가능하게 돕는 이런 사업들이 일어나도록 함께하면서 유도해야겠죠.

윤: 메이커스페이스 공간이 지역 내 지역재생을 위한 거점공간이면서 동시에 커뮤니티 공간이 되기도 하는 거네요. 이렇게 복합적인 부분이 맞물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디자인이 이루어지는 모델이 머릿속에서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마을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현 오세훈 시장 시정이 기존 서울시가 해왔던 서울형 도시재생에 퀘스천 마크를 던지면서 예산이 많이 축소되다 보니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코디네이터 TO가 줄기도 했죠. 이제 중간지원조직이나 관이 주도하던 재생에서 민간이 발 벗고 뛰어들고 관이 협조하는 형태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더 이상적인 지역재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오롯: 아직 없는 모델이지만, 제가 빠른 시점 내에 구현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조금 더 말씀드리면, 예를 들어 저는 어떤 이유에서건 도시재생 기반 조성을 위한 예산이 만약 100억에서 50억으로 준다면, 그래도 돼요. 대신 수행 인력 측에 더 좋은 자원이 들어오게끔 인건비는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태까지의 도시재생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더 많은 투자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예산은 전체적으로 줄어도 이런 일들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어 물고기를 직접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도로나 간판을 직접 갈아주기보다 하는 방법과 그 일을 통해 비즈니스 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는 소프트웨어적인 방향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윤: 기존 도시재생이 현장지원센터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인식을 재고해 조직화를 이루는 거였다면, 이제는 주민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마을에 필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자!” 하는 형태의 DIY 문화가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말씀이시네요.

그렇게 되면 지역의 행정, 구청이든 동사무소든, 면이나 읍사무소, 도시재생지원센터든, 마을공동체센터를 비롯한 다른 여타의 조직, 아니면 그냥 민간이 모여 만든 사설 그룹들에서도 발 벗고 나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럽게 DIT 마스터들이 전국으로 뻗어나가고, 이분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다시 DIT 문화가 아름답게 성숙해나가는 선순환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롯: 좋든 나쁘든 새로 지어지는 건물이 있을 거고, 그 이면에는 못 지어지는 건물도 있죠. 재개발이 해제되거나 장기화 됐을 때 여전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요. 그럴 때 DIT가 더 힘을 발하죠. 인테리어를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할 때, 주민들끼리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바꿔나가는 거죠. 저는 서울, 수도권에서도 이 모델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필요한 곳에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센터에 전문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저층 주거지의 도시재생을 보면 집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 부분을 용역이나 단순 교육 프로그램으로만 진행해온 것이 지금까지 센터의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코디네이터, 사회적경제 코디네이터가 있는 것처럼 센터 안에 집수리 전문가가 상주하면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겠죠. ‘집수리 코디네이터’라고 부를 수도 있는 전문 인력들이 센터에서 많이 활동하도록 기획도 하면서, 상황이 될 때마다 얘기를 드리고 있습니다!

윤: DIT 이야기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거점공간 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끝부분에 오니 정주성을 높이는 데까지 DIT의 쓰임이 있어 DIT 역할이 점점 폭넓어지는 쪽으로 이야기가 이어진 것 같습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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