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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In 호주(10)] 호주에서 살아남기 ? 눈치와 절약

칼럼니스트 레이첼 승인 2019.03.28 13:39 의견 0

공부하는 이유가 지식 축적이 아니라 돈이 아까워서일 정도로 나는 짠순이고 공부를 싫어한다. 특히 호주에서는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도 내 통장을 채워주지도 않을 뿐더러 당장 먹고 자는 문제에 차질이 생기므로 울며 겨자 먹는 게 더 쉽다. 역시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

회화 실력을 늘리기 위해 어학원에서 운영하는 ‘Chit chat club’라는 Activity에 참여했다. 원어민 선생님 한 분과 어학원에 다니는 여러 나라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로 담소를 나누는데 확실히 아시아권 아이들이 학구열이 높은 듯 했다. 일반 학생 5명 중 1명만 유일하게 남미권 학생이었다.

나는 역시나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눈치로 무슨 말인지 파악하기 위해 얼굴과 손짓을 자세히 봤다. 열심히 관찰하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외국인들은 표정이 참 풍부하다는 걸. 회화 능력 한 번의 참여로 뭘 어쩌겠는가. 또 기만 실컷 죽고 왔지 뭐.

어느덧 엘사와 쇼핑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쇼핑은 좋은데 좀 걱정이 되었다. 호주 물가가 비싸다는 소문을 듣고 잔뜩 겁을 먹어 물세라도 아끼려고 한국을 떠나기 전 긴 머리를 싹둑 자른 나였다. 과연 괜찮을까. 엘사는 나를 'Woolworths'라는 슈퍼마켓에 데리고 갔다. 호주 사람들은 울리라고 줄여서 부른다.

우려했던 것만큼 호주의 물가는 그렇게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식료품은 한국보다 더 싸다. 나로선 다행이었다. 아침과 저녁은 홈스테이에서 챙겨주지만 점심은 내가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5달러면 충분히 사먹을 수 있지만 일을 하고 있지 않은 나에게 매일 5달러를 쓰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었다.

끼니를 해결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고 둘러보다 바나나랑 컵라면 그리고 사과를 샀다. 총 15.8불. 한화로 치면 약 만 삼천 원 정도 된다. 이걸로 1주일 넘게 버티면 5불 이상 이익인 셈이니 당분간 다이어트 하는 셈치고 버텨보기로 했다.

물론 계속 이렇게 먹지는 않았다. 일을 시작하고 수입이 안정권에 들고 나서는 19불짜리 닭발에 각종 사리까지 추가해 양껏 먹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정말 가난한 학생이었기에 ‘돈이 떨어진다.->귀국’ 이 공식이 항상 내 머리 속에 박혀 있었다.그래서더 악착같이 절약하고 절식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생활력이 강하니 잘 버틸 수 있을 거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말이 맞았다.

연고 하나 없는 타지에선약해도 강해야져만 한다. 때로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서럽고 더럽고 힘들어서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도 비빌 언덕이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누울 자리보고 발 뻗는다고 믿을 거라곤 내 몸뚱아리와 정신력 밖에 없는 호주에서는 사치다. 내가 누울 곳조차 공짜가 아니니까.

그래서일까. 호주에서의 삶은 늘 짜릿했고 이 모든 경험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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