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더하기] 그곳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전하는 연극 '오슬로'

박앵무 기자 승인 2018.11.02 19:23 의견 0

▲ 연극 '오슬로' ⓒ 국립극단

경기가 시작되기 전 다같이 손을 겹겹이 모아 올리며 파이팅을 외칠때가 있다. 오슬로라는 극이 그렇다. 맨 아래의 손에 ‘오슬로’ 라고 적혀있다면 그 위로 연출과 배우가 그리고 조명과 음향이, 의상과 소품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의 손을 단번에 위로 올리듯 이 극을 쏘아 올렸다는 느낌.

전미도 배우를 처음 본 것은 어느 시상식의 자료화면 속이었다. 맑은 목소리와 에너지로 이목을 끄는 저 배우의 공연을 찾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작년 이맘때 즈음이었다. 그런 전미도 배우를 ‘모나’로 마주하게 된것이다.

오슬로 속 극을 이끌어가는 ‘모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티에유와 함께 장소를 마련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중재를 하고, 장면 사이사이를 실로 꿰어내듯 극의을 이어간다. 수많은 대사가 쏟아져 나오지만 눈치 챌 겨를이 없다. 모나와 티에유, 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강렬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며 숨죽였다가도 어느 순간 타이머를 맞춘 듯 정확하기까지 하다.

모나의 남편이자 티에유 역을 맡은 손상규 배우는 힘이 있는 배우다. 공연장의 규모에 상관없이 나오는 순간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폭스 파이어’ 속 손상규 배우의 강렬함을 기억한다. 역시나 그는 강렬했지만 그의 역할처럼 공연과 관객 사이를 중재해나간다. 그런데 1부가 끝나고도 공연장을 나서고도 이 글자를 적는 지금까지도 손상규 배우와 함께 대사를 주고받던 전미도 배우가 자꾸만 떠오른다. 긴 대사를 흐트러짐 없이 소화해내던 모습이, 뭉개짐 하나 없던 발음이, 연륜 있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한치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내어 관객을 단번에 집중시키고 장면 사이를 달려가는 힘에 감탄했다.

모나와 티에유는 총을 든 군인과 찢어진 옷을 입은 이가 장면을 마주했을 때의 눈빛을 서술한다.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있기를 바라고 총이 아닌 것을 들고 있기를 바라는 심정도 함께 이야기되는 것이다. 이성열 연출은 우리나라의 관객은 지적인 것보다 정서적 호소력이 있는 것을 반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원하던 것이 그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라면 나는 그가 원하는 토끼를 놓치지 않는 뛰어난 사냥꾼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중간중간 삼면의 둘러싸인 무대는 회담이 잘 풀리지 않을때에 한 쪽의 뚫린 공간을 막아 관객을 압박해오기도 하고 양쪽을 열어 환기시키기도 한다. 무대가 열릴때면 회담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된다. 무대에 단정하게 맞춰진 영상은 관객을 이슬라엘로 오슬로로 팔레스타인으로 데려다놓는다. 제 캐릭터를 무너뜨리지 않고 무대 전환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기만 하고 이는 잘 활용된 무대가 한 몫 했다고 생각된다. 바퀴가 달린 판자 위로 고정된 테이블과 의자는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대륙처럼 배우들의 발길을 따라 물 흐르듯 무대 이곳 저곳을 오간다.

조명은 직사각형의 빛으로 두 사람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주기도 하고 서로를 향한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축배를 들 때 사용했던 샴페인 잔과 오슬로에서 마셨던 위스키잔, 이야기를 나눌때에 와인잔으로 변경되던 소품의 디테일에도 감탄했다. 고급스럽던 의상도 빼놓을수 없다. 커리어우먼인 모나에게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된 패턴의 원피스와 벨벳을 연상시키는 보라색 원피스의 소매에 달려있던 술의 디테일까지.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작품 해설을 참고해 몇 자를 추가적으로 적는다. ‘북미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끓어오르더니 일순 대화의 물꼬가 터지는 상상도 못했던 특별한 봄을 지나오면서 <오슬로>라는 희곡은 우리가 한 글자도 변형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공연되어야 할 필요성과 필연성을 스스로 주장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서울과 평양이, 판문점과 싱가포르가, 예루살렘과 가자, 그리고 오슬로라는 단어가 동의어가 되기 시작했다.’ 공연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분단 국가로 존재하는 현재 남북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최근 앞으로 나아가는 중인 남과 북의 모습을 투영시키게 된다.

마지막 장면을 앞두고 조명은 관객을 비춘다. 그리고 티에유는 소리친다. “친구들...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보세요! 우리가 피와 공포와 증오를 모두 통과해서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거라면,, 앞으로 여기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겠어요 저기 지평선. 그 가능성. 보여요”

대사를 끝으로 암전이 되고 공연은 끝난다. 암흑 속에서 터져나오던 박수와 온몸을 관통한 전율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립극단에서 동시대를 담고 있는 연극을 볼 수 있어서 기쁘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입을 막아버리던 손이 떠나기는 했나보다. 앞으로 국립극단의 무대 위에서 더 많은 세상의 말을 듣고 싶다고 조심스레 바래본다.

오슬로라는 단어가 낯선 이들에게 겁내지 말고 공연장으로 한 번 들어가보라고 하고싶다. 우리가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