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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_시대] 입 막은 자들의 도시

대구 코로나 확진자 31번을 보면서

조인 작가 승인 2020.02.24 23:21 | 최종 수정 2020.03.27 14:29 의견 0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축차적으로 모든 시민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상하게도 여자 주인공 한 명만 눈이 멀지 않았다. 그녀의 눈을 통해 본 눈먼 자들의 도시는 아비규환과 다를 바 없었다.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새로운 권력이 생성돼 패거리 집단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인간의 본성을 기본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작가의 소설이 대체로 인간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하고 있어서 소설은 인간의 탐욕, 폭력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신체 일부의 장애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코로나 19>가 대구에 상륙했다. 청정지역이었던 영남권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어차피 누군가에 의해 전염됐을 것이다. 다만, 정상적인 경우라면 감염자가 스스로 자가 격리하고, 의료기관에 가서 감염 여부를 먼저 따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31번 확진자 역시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그녀가 누군지 다 안다. 이미, 곱게 생긴 여성의 얼굴이 31번 확진자라는 글귀와 함께 유포되고 있다(거짓 유포라고도 하는데 믿는 사람 마음이다). 

몇 년 전 지금보다 더 심각한 <메르스>가 있었다. 치사율로 따지면 훨씬 높은 전염병이었는데, 당시 대구 남구의 한 공무원은 “나는 걸리지 않는다”며 객기를 부리다 그가 사는 지역 경제를 마비시키고, 본인도 징계를 받았다. 해직하라는 여론이 조성됐음에도 적당한 수준의 징계로 마무리됐다. 시간이 약이다. 그 사람의 징계와 관련해서 지금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광신도다. 유사 기독교, 신천지예수교다. 대체로 사이비는 상식적인 종교 행동을 하지 않는다. 신앙도 굳건하고, 견고해서 폐쇄적이다. 들리는 말에는 병에 걸려서 병원에 가는 당연한 행위를 ‘죄(Sin)’와 연관시킨다고 한다(당연히 그럴 수 있다). 

외부인에 대한 포교 활동에는 적극적이지만, 내부 구조는 알려지지 않았다.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에 등장하는 비밀 집단 같다. 31번 확진자는 신천지 신도로 알려졌고, 대구에 등장한 확진자 대부분이 신천지와 관련 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신이(도대체 누군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들을 지켜줄 것이기에 <코로나 19>쯤은 가벼이 여겼을 것이다. 그러니 감염된 조짐이 있었어도 별생각 없이 돌아다녔을 것이다. 메르스 당시 구청 직원과 현재 31번 확진자 둘 다 대구 시민이라는 것은 우연일까? 

대구는 보수적이다. 비판적으로 말하면 “꼰대”가 많다. 거리를 활보하면서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용족(한 군데서 담배를 피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옷깃을 휘날리며 연기를 뿜어대는 데 꼭 본인이 용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도 많고(연령대와 상관없다), 카페에 가면 자기들밖에 없는 것처럼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사람-확성기족-도 쉽게 볼 수 있다(직원들도 포기했는지 제재하지 않는다). 대중교통 안에서는 본인의 거실인 것처럼 활보하며 돌아다니는 무(無)매너족이 참 많다.

아울러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한 증거를 보여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면,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헬스장에서도, 거리에서도, 대중교통에서도, 카페에서도, 하물며 식당에서조차 “꼰대 지수”가 높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대부분 대구 시민은 원치 않게 입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신체적인 입을 막기 전에 이미 정신적 입에 재갈이 물려 있었다. 개선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다(말해 봐야, 해결되는 게 거의 없을 테니) 보니 점점 모든 사람이 비슷해졌다. 

31번 확진자는 재수가 없어서 등장한 게 아니다. 아마도 다른 누군가가 전염됐다고 하더라도 대구에 살고, 60대였다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신천지예수교라는 폐쇄성이 확산에 이바지한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 개신교 신도 중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면 크게 달랐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대구에 대한 필자의 부정적인 생각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구에서 살아보지 않았고, 혹은 대구에서 평생 지금처럼 살았기에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본인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구에서 외부인으로 살아 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확신한다.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건 좋은 일이다. 나쁜 바이러스 침투와 확산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적 입은 막아서는 안 된다. 바꿔야 할 것은 용기 내서 “바꿔야 합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다.”가 아니다. 대구 신천지예수교회 내에서도 쉬쉬하려 했지만, 결국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본성이 바뀌지 않으면, 물리적 변화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대구의 정신적 입막음이 계속되는 한 메르스 때 공무원, 코로나 19 때 31번 확진자 같은 사람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의 하나가, 바로 정신적 입을 여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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