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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_시대] 눈뜬 자들의 ‘억울함’ - 바이러스

희생양 찾아 헤매는 대한민국

조인 작가 승인 2020.02.25 11:20 | 최종 수정 2020.03.27 14:30 의견 0
인적이 끊긴 대구역  (사진: 시사N라이프)

전편에서도 언급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정말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런데 같은 작가가  후속편 <눈뜬 자들의 도시>를 출간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전작은 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음에도 욕구를 충족하려는 짐승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면, 후작은 유감스럽게도 정상적인 인간들의 더 극단적인 파렴치함을 그려낸다.

<코로나 19>가 전국 17개 시도를 휩쓸고 다닌다. 수치적으로는 700명(2월 24일 기준) 수준이니 5천만 인구로 따지면, 0.00001% 수준이다. 쉽게 생각하면, 걸리기 힘들다. 그러나 확진자와 함께 있을 때 직·간접적으로 감염될 가능성이 훨씬 커지고, 감염자가 전부 파악되지 않아서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치료 약이 개발되지 않았기에 공포감이 배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는 “희생양”(르네 지라르는 희생양과 관련해 다수의 책을 저작했다.을 찾고 있다. 대표적인 한 마리 양이 “신천지”이다. 솔직히 이들의 행태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할 수준이고, 그들이 애써서 발표한 내용도 “최대의 피해자”자는 본인들이라는 인식이 먼저다.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최대 피해자”라는 표현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할 발언은 그게 아니었다. “사회적 최대 물의를 일으킨 집단임”을 우선 사과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 아울러 질병관리본부에 적극적인 협조를 한다는 공식적인 발언 외에 비공식적인 지령들이 계속 전파되고 있다는 말도 계속 떠돈다. 

그러나 이런 신천지도 다른 ‘희생양’을 찾는다. 종교 집단답게 두 가지 영역에서 희생양을 구한다. 

먼저, 가시적인 희생양은 정부이다. 그들은 “우리가 감염된 원인은 중국인을 봉쇄하지 않은 정부 탓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말도 틀리지 않았다. 몽골같이 적극적인 차단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신천지가 정부에 책임의 공)을 넘길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된다. 

다음은 종교 집단답게 “마귀”를 등장시킨다. 그들의 성장을 방해하려는 마귀의 방해라고 교주(이만희)가 선언했다. 대다수 신천지 신도는 이 말을 믿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천지의 떠넘기기에 가만히 당하고 있을 정부가 아니다. 신천지의 “희생양” 전략에 정부는 “신천지 이전과 이후”라는 표현으로 다시 공을 넘긴다. 신천지 때문에 조기 종료될 수 있었던 <코로나 19>가 확산했다는 의미다. 양자 간의 승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 분위기는 신천지가 수세에 몰리는 듯하지만, 4월 총선에서 여당이 패한다면? 사실, 둘 다 진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시선을 대구로 돌려보자. 이런 가운데 대구시민은 사재기에 들어갔다. 라면, 마스크, 생필품이 동나기 시작한다. 스스로 대구를 폐쇄하고 있는 셈이다. “대구 코로나”라는 표현은 외부인이 만들었지만, 그 원인 제공을 스스로 한 것이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신해철과 그룹 <NEXT>가 부른 <라젠카 세이브 어스>의 한 구절과 똑같은 모습이다. 높은 시민 의식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현수막이 곳곳에 설치돼 있으나, 수준 높은 시민 의식은 찾기 힘들다. 대구 시민 역시 희생양 찾기에 분주할 뿐이다.

전국적으로 <코로나 19>를 공동체적으로 풀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저 “희생양” 찾기에 급급하다. 자잘 못을 떠넘기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구는 억울하다는 입장의 칼럼, 시장의 울먹임 등이 현 시국을 대표한다.

이런 억울함은 31번 확진자에게도 나왔다. 그녀는 그동안 보도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인터뷰를 했다. 본인은 계속 진료하기 원했으나 진료소가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간 입원했던 병원이 거짓 발언을 했다는 것인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스스로 진료받기 원했던 사람이 예배에 2회나 참석하고 결혼식에 가서 뷔페를 맛있게 먹었다는 게 말이 될까? 이런 인터뷰 기사를 검증도 하지 않고 올린 기자의 정신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한 듯 하다. 진정 진료를 원했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가 격리하고 본인의 증상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을 것이다. 31번도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희생양’에서 제외되고 싶은 것이다. 

‘희생양’과 ‘억울한 자’는 표현은 다르지만, 유사한 뜻이다. 둘 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손해를 봐야 하는 당사자이다. 단, 전자는 외부에서 판단하는 것이고 후자는 개인의 감정이다. 

“대구 코로나”라는 표현은 잘못 됐다. 그러나 그렇게 불리게 된 원인 제공은 대구가 제공했다. 우선, “신천지”가 잘못한 건 맞다. 그러나 그들을 “희생양” 삼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대구는 전편에서도 다뤘지만, 어떤 경로로든 감염자가 등장했을 것이고, 과거 사례로 볼 때 확진자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 가능성이 컸다고 생각한다. 

정부도 그들의 졸속 판단에 대한 실수를 인정보다는 “희생양”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런 “희생양” 잡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판은 정부가 했기에 야권은 무능한 정부로 몰아갈 것이고, 아마도 이러한 전략이 선거 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의료 전문가들은 정부의 오판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더 늘어날 것을 예상했다고 한다.

“희생양”을 찾는 건 과거의 유물이다. 문화 인류학적으로 살펴보면, “희생양” 의식은 항상 인류와 함께 존재했다. 구약의 모세, 신약의 예수도 “희생양”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히틀러의 유대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희생양 해결방법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미봉책(彌縫策)은 될 수 있을지언정 완벽한 해결방법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이후 복수(기독교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사죄(유대인에 대한 독일의 사죄), 보상(위안부, 정신대 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보상) 등의 문제가 계속 발생해서 사회적 낭비가 되고, 발전을 저해했다.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전편의 주인공 여성이 정부의 지령으로 암살된다. 눈먼 도시의 비리와 탐욕을 모두 알고 있는 오직 한 사람이 사라짐으로써 과거 진실은 조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실제로 두 눈으로 보기에 진실만을 볼 것 같은 세상이 오히려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 19>는 바이러스다. 막을 수는 없었어도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 책임자가 정부일 수도 있고, 신천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감히 말하겠다.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특히, 대구의 생필품 사재기는 남 탓 하기 힘들게 한다. 그저 ‘나’, ‘내 가족’만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표현이다. “대구 코로나”라는 말은 분명 틀린 말이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대구시민 역시 “희생양”을 찾는 판국에 전국이 대구를 “희생양” 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정부, 대구, 신천지 등 모두 자업자득이다. 그런데, 먼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희생양으로 해결하려는 방법은 그 결과가 더 비극적일 수 있다. 먼저, 책임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눈뜬 자들의 상식인데, 우리는 그 상식을 선택하지 않고 눈먼 자들처럼 희생양을 찾아 폭력을 행사하려 한다. 

<코로나 19>가 문제보다 희생양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눈뜬 자들의 ‘억울함’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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