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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산업혁명의 끝자락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61)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9.17 10:04 의견 0

한국의 현재는 3차 산업혁명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 지수 등을 보면, 20위 권 안에 안착해 있다. 현재 산업 수준도 세계적인 평가 기관에서 나오는 자료를 볼 때 항상 상위권에 속한다. 2015년에 스위스 은행에서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순위를 25위로 올려놓았고, 아시아에서는 5위였다.

전 세계적인 순위를 보면, 약 200개 국가 중의 순위니 나쁠 것 없고, 아시아에서는 5위라 하면 굳이 처지는 순위는 아닌 듯한데, 우리나라 위에 말레이시아가 있다는 것이 왠지 석연치 않았는지, 대부분의 보고서는 근심이 한가득 이다. 물론, 이후 한국은 말레이시아를 앞질렀고, 순위도 꽤 올랐다.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한국과학기술평가원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2018년 순위는 15위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산업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인터넷 속도라든지, 스마트폰 보급 등을 따지면 순위가 최상위권으로 올라간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기술 사용자 측면을 생각하면, 별로 생산적이지 못하다.

타일러 코웬은 『거대한 침체』에서 대부분 사람은 3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을 사용하는 소비자로 머물지 생산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요금을 내고 사용하기는 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모바일 상거래를 하지만, 대부분 구매자로서 사용하고 있고, 다양한 SNS를 통해 교류하고 자신을 알리지만, 그런 활동으로 수익을 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극소수의 파워 블로거나 잘 나가는 유튜버 등이 있긴 하다.

어느 시대보다 소비가 커지고 세밀해졌고, 그래서 소비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과대광고한다. 그러다 보니, 대표적인 기업들이 모두 사용자들을 소비자들로 만들어 광고 수익을 올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인재들이 소비자들의 마우스 클릭 수를 늘리는 데 그 좋은 머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재이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정상급이고, 인터넷 속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이지만, 생산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 수익은 거대 기업의 블랙홀에 다 빨려 들어가고, 부의 격차만 심해진다. 말로는 공유 경제지만, 사이비 공유 경제다. 실제로 공유경제 1.0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진정한 공유경제는 2.0 부터라고 하기도 한다. 수익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다수는 돈을 내는 형국이니 말이다. 뭘 공유하는지 알 수 없다.

근대화 시대에 국가는 대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대기업에서는 인력도 많이 뽑았고, 그 하부업체에도 적지 않은 콩고물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대기업은 문어발식으로 모든 산업에 손대기 시작했고,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근본적으로 막아 버렸다.

과거 대마불사(大馬不死)는 옛말이 됐지만, 대기업이 휘청거리면 국가가 위태롭고 그 위태로움의 대가는 국민의 세금이 충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마불사는 새롭게 해석된다. 잘못은 대기업 총수가 하고, 그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벌어졌다.

이러한 구도는 한국 교회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대기업의 성장과 더불어 교회도 규모의 성장을 추구했고, 일부 교회는 수만 명이 넘는 초초대형 교회로 성장했다. 교회의 성장은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교육과 복지 측면에 있어서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국가가 돌보지 못한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도 했고, 교육을 통해 많은 청년을 계몽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 성장주의에 편승해서 기독교는 동반 성장했고, 국가 관료주의는 곧 교회의 모습이기도 했다. 흡사 로마 제국과 교회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것과 사뭇 닮았다.

그런데 교회는 대기업이 무책임한 것보다 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 대기업은 망하면 최소한 총수들이 책임지고 사퇴하지만(한국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 간혹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경우 목사가 강제로 쫓겨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심각한 실수를 해도 외부로 알려지지 않으면,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 쫓겨 났다고 해도 그를 추종하는 성도들과 함께 곧 재기한다. 대표적인 목사가 삼일교회의 담임 목사였던 전병욱 목사이다.

대한민국 성장과 부패의 모습은 한국 교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러 소비주의가 판치고,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개인들이 등장하자, 기업은 수익을 위해 방향을 전환하려 노력했지만, 국가와 교회는 쉽게 방향을 전환하지 못했던 점이 달랐다. 왜냐하면, 기업은 수익을 위해서 기존의 인력을 내보내고 새로운 인력을 고용하는, 흔히 말해 구조조정을 하면 된다. 하지만 국가와 교회는 공무원과 교역자를 쉽게 내보내는 등의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

오히려 교회는 목사들의 정년을 더 늘리면서 불안한 시대에 자신의 위치를 견고하게 다지는 일에 혈안 돼 있었다. 원로목사가 돼서도 계속해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어느 교회나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도 태종이 죽기까지는 그 기를 펴지 못했다고 하는데, 교회의 현실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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