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을 벗어나 이데아(IDEA)의 세계로...”

[사례로 알아보는 통합심리학(2)] ‘AQAL’을 알아보자

칼럼니스트 황왕호 승인 2019.02.26 14:03 의견 0

1999년,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현실과 가상세계에 대해 의문점을 품게 한 영화들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영화 <매트릭스>와 <13층>입니다. 당시 헐리우드의 가장 핫한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매트릭스>와 달리 <13층>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비운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13층>은 근대 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담론을 제시합니다.

▲ 영화 '13층'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1999년에 살고 있는 해리 퓰러는 가상 게임에 접속해 1937년 LA의 60대 갑부 그리어슨으로 LA의 밤을 즐깁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바텐더 애쉬톤에게 중요한 편지를 맡긴 뒤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퓰러는 현실세계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게 됩니다. 주인공 홀은 잠에 취한 정신을 수습하기 전에 풀러가 살해당했다는 긴박한 전화를 받습니다. 집 안에 널려있는 피에 젖은 셔츠, 불확실한 알리바이로 인해 홀은 순식간에 범인으로 몰리게 됩니다. 퓰러의 죽음에 의구심을 갖게 된 홀이 퓰러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하며 영화는 점점 더 긴장을 더해갑니다.

영화 <13층>은 주인공이 게임을 통해 접속하는 1937년 세계를 보여주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두 무너뜨립니다. 왜냐면 게임 세계로 구현된 1937년이라는 가상세계가 너무 현실같고 가상에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세상을 ‘진짜’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죠. 영화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정말 진짜 세상인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찾는 고민은 컴퓨터가 등장한 현대에 와서 제기된 의문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고대의 철학자들도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나름의 답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왔죠.

▲ 영화 '13층'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플라톤은 우리는 절대계와 현상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했으며, 절대계를 ‘이데아(IDEA)’라고 표현했죠. 우리가 보고 있는 컵의 모양은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지만, 그 형체는 이데아에 있는 컵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피라미드 구조처럼 아주 아래에 있는 이데아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궁극적인 이데아가 있다고 보았죠.

석가모니도 인도 철학의 '해탈'개념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 했죠. 해탈을 통해, 현상계에 머무르며 고통 받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또한 현실에서 절대적인 영역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에 거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주 태초의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넘어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죠.

켄 윌버는 이를 총 10단계로 나뉘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편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단계만 추려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물질-생명-마음-심혼(心魂)-정묘(精妙)-인과(因果)-비이원(非二元)으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이중 물질영역부터 마음영역까지는 우리가 익숙한 현상계에 있는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심혼(心魂)영역부터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이야기들인 것이죠. 또한 다음에서 언급하는 신비주의는 신이나 절대자 등과 직접적이고 내면적 일치의 체험을 중시하는 철학이나 종교사상을 말합니다.

심혼(心魂) 영역이란 ‘자연 신비주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과 교류하는 단계입니다. 개인은 자연의 감각적 세계의 전체와 하나가 된 듯한 경험도 합니다. 신과 대화를 하는 무당들도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이나 영적인 수행을 시작하면 맞이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여기서 만나는 어떤 에너지나 영적 현상들은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당들이 가족 중 누군가와 접신해 ‘내가 너의 할머니다’ 혹은 ‘내가 너의 어머니다’ 하면서 엉엉 우는 것들을 볼 수 있죠. 이 과정에서 감정적 동요를 불러 일으킵니다.

정묘(精妙)영역은 심혼영역을 거쳐 한 단계 더 진화한 세상입니다. 이 단계는 앞서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시기를 지나 이성적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됩니다. 정묘라는 말의 의미에 담겨있듯 아주 날카롭고 예리하게 현상을 진단합니다. 보통 종교로 비추어지는 유신론적 신비주의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전체를 주시하는 주시자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단계입니다.

인과(因果)영역은 경계가 없으며, 형상도 없습니다. 주-객관의 경계가 사라지고,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관념도 사라집니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구별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주의 어딘가와 맞닿아 있을 때, 우리가 우주의 작은 씨앗일 때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죠. 나와 다른 것을 구분하지 않게 됩니다.

비이원(非二元)은 이 단계를 모두 통합해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단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주시자는 없고,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