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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경제(1)] 성배와 과학기술정책의 독립성을 위한 개헌론

(새 연재)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수단인가?

이승훈 전문위원 승인 2023.07.29 13:43 | 최종 수정 2023.07.29 13:50 의견 0

최근 10여년 사이에 인류의 과학기술 역사에서 눈부신 발전이 이뤄졌다. 바로 생성형인공지능 기술, 유전자편집 기술, 분자 3D프린팅 기술이다.

생성형인공지능기술이란 이용자의 특정 요구에 따라 결과를 생성해내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생성형인공지능기술로 유명한 것이 바로 최근에 화제가 된 ChatGPT와 같은 대화형인공지능기술이다. 유전자구조예측(유전자접힘예측) 인공지능, 신소재구조예측 인공지능도 바로 생성형인공지능 기술의 일종이다.

유전자편집기술이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를 가지고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을 말한다. 동식물의 유전정보가 담긴 DNA 염기에서 특정 부위를 정확히 찾아 잘라내고 마음대로 붙이고 재배열함으로써 여러 가지 질병을 원천적으로 예방, 치료한다. 크리스퍼로 불리는 리보핵산(RNA)과 효소 단백질을 이용해 기술이다.

분자 3D프린팅 기술은 나노기술의 일종으로서 분자단위에서 3D프린팅을 해서 물질을 만들어낸다. 즉 특정한 금속이나 물질을 가지고 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별 분자 또는 원자단위로 들어가서 그 분자와 원자를 조작하여 나노미터 그 이하 단위의 복잡한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 세 기술은 과학기술 학계에서 '성배(Holy Grail)'로 불리운다. 성배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했던 술잔을 뜻하며 기독교 전승 설화에서는 '기적의 힘'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과학기술학계에서는 10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대업적을 '성배'에 비유한다. 이 세 기술이 있으면 단백질구조 예측이 가능해지며 유전자를 편집하여 모든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 "재수없으면 200살 이상을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신소재구조 예측이 가능해지며 수십년 이상 걸리던 신소재의 개발 기간 및 제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성배'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이 세 가지 기술이 있으면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 노움 종족의 궁극의 무기인 ‘유전자역결합기’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 뭐든지 바꿔버리고 뭐든지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생산력을 극적으로 향상시켜 우리 삶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다만 윤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우리가 이러한 기술 발전을 산업과 경제를 발전에 어떻게 반영시킬 것인가 라는 과학기술정책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론이 분분하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 한국 과학기술계에서는 헌법 제 127조 제1항, 소위 '과학기술조항'의 개정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과학기술을 목적과 수단의 관계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학기술계에서 나오고 있는 제 127조 제1항 개정론은 과학기술정책이 국민경제 발전의 수단이 될 때, 경제발전 또는 성장을 추구할 때 과학기술은 그에 종속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로 인해 기초 과학이 부실해지며 창발성 또한 부족해진다는 우려가 개정론이 등장한 이유다. 과학기술인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하고 과학기술정책의 독립성을 위해서 독립적인 과학기술조항을 헌법에 신설하자고 한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과학기술정책의 독립성을 고도화시켜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낸 사례로 흔히 영국의 '홀데인원칙'이 거론된다. 마치 문화예술정책이 문화예술의 독립성을 위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원칙'처럼 과학기술정책의 방침 역시 "정부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독립성’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연구기금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홀데인원칙의 내용을 알아보고 홀데인원칙이 영국의 과학기술정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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