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국영 박사는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이스라엘에서 15년간 성서고고학을 연구했다. 콘텐츠 기업 '덴앤나우(Then & Now)' 대표로 활동하며 지난 3월, 중동 9개국 국립박물관을 소재로 한 책 <유물의 속삭임>을 출간했다.

"고고학에 대해 접근하려면 발굴지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중동 지역의 발굴지를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박물관은 유물을 다루는 곳이면서 온라인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곳입니다."

현대 중동 지역의 국경선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해 임의로 분할된 결과이지만, 지정학적 특성은 수천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정학적 위치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고대와 현재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해요. 이에 지역 전체를 저배율로 보는 콘셉트로 잡았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스펙트럼 안에서 각 지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남양주시 한강변에서 만난 윤국영 박사 ⓒ 매거진S 윤준식

윤국영 박사는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이스라엘에서 15년간 성서고고학을 연구했다. 콘텐츠 기업 '덴앤나우(Then & Now)' 대표로 활동하며 지난 3월, 중동 9개국 국립박물관을 소재로 한 책 <유물의 속삭임>을 출간했다.

"고고학에 대해 접근하려면 발굴지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중동 지역의 발굴지를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박물관은 유물을 다루는 곳이면서 온라인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곳입니다."

현대 중동 지역의 국경선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해 임의로 분할된 결과이지만, 지정학적 특성은 수천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정학적 위치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고대와 현재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해요. 이에 지역 전체를 저배율로 보는 콘셉트로 잡았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스펙트럼 안에서 각 지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3월 출간된 윤국영 박사의 저서 <유물의 속삭임> ⓒ 출판사 「굿스펠디자인」 제공

■ 요즘 왜 고대사에 열광하는가?

"한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가 실용적이라는 점입니다."

실은 윤국영 박사를 인터뷰 하기 전, 사전 조사 차원에서 유튜브를 검색해 보았다. 뜻밖에도 많은 네티즌들이 고대사 콘텐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을 다룬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고 있었고,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영상도 있었다. 과거라면 소수 전문가들만의 영역이었던 고대사가 일반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른 배경이 무엇일까?

지난 4월 인터뷰 자리에서 이런 필자의 첫 질문에 대한 윤 박사의 대답이 바로 '한국인의 실용적 사고방식'에 대한 설명이었다. 요즘 한국인들은 역사를 단순한 과거 이야기로 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갈등, 미중 패권 경쟁 등 복잡한 국제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로 활용한다.

역사를 통해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예측하고 싶기에, 고대사에 대한 관심도 커 가는 것 아닐까? 역사학자가 방산 관련 토론에 초대받거나 경제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제공하는 것은, '과거에도 이런 패턴이 있는데, 이런 패턴은 이런 때에 자주 반복이 된다', '지금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통찰입니다."

이런 현상은 일종의 집단지성일 수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역사 콘텐츠로 집중되고,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더욱 가속되는 것이다.

■ 3개 대륙이 만나는 곳, 융합과 창조의 무대

윤국영 박사가 15년간 연구한 동지중해 지역은 인류 문명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저서 <유물의 속삭임>에선 이 지역을 '동지중해 MENA 지역'으로 명명하며 총 9개 국가를 아우르는 독특한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세계 대륙 3개가 만나는 곳이 레반트 지역(현재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등지)입니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가 만나는 곳이죠. 문명의 만남은 새로운 것이 융합되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융합은 창조의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실제로 레반트를 중심으로 한 동지중해 MENA 지역은 인류 문명의 교차로로서, 인류의 역사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요소들이 탄생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자, 영어 알파벳의 시조가 되는 페니키아 문자, 그리고 세계 3대 유일신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모두 이곳에서 시작됐다.

윤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중동을 "모든 땅이 사막이고, 땅을 파면 석유만 나오고, 원주민들은 문명화되지 못하고, 급한 기질이라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고고학이 밝혀낸 사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있던 사람들은 단일 영역이나 단일 문화권으로만 살았던 게 아니라 이미 다양한 문명을 꽃 피우고 복합적인 국제 관계를 의식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문명끼리 각축을 벌였던 MENA지역 제국에 대해 설명하는 윤국영 박사 ⓒ 매거진S 윤준식

■ 제국의 패턴: 페르시아에서 미국까지

고대 제국의 역사는 현재를 읽는 통찰을 제공한다. 최초의 제국 아카드부터 시작해, 아시리아, 바벨론, '세계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불리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까지의 흥망성쇠는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례로 페르시아의 역참제도는 놀라운 효율성을 보여준다.

"사람이 열심히 걸어 하루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30km정도 거든요. 페르시아 역참제도를 위해 건설된 길을 '왕의 대로'라고 불렀는데, 역마를 타고 달려가면 10배의 효율인 하루 300km를 주파해 소식을 전했어요."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려면 세 달은 잡아야 하는 거리였는데, 이를 열흘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속도다. 아마도 당대 사람들에게는 오늘날의 KTX보다 더 빠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지만, 로마 제국의 인프라와 제도도 페르시아 시대의 도로 시스템의 개념을 계승한 거라 볼 수 있죠."

하지만 아무리 강대한 제국도 팽창의 한계가 있었다.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정복하지 못한 것, 로마가 결국 동서로 분할된 것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서처럼, 너무 커도 문제가 있습니다. 골리앗이 한 방 맞고 쓰러지며 군대가 전멸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죠."

■ 작지만 강한 나라의 생존법

최근 대한민국의 상황도 고대 동지중해 MENA 지역과 유사한 면이 있다. 윤 박사는 페니키아의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페니키아가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작지만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던 세력이었죠. 영화 <300> 때문에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의 전쟁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지만, 그 전쟁에 페니키아가 참전한 건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살라미스 해전 당시 페르시아의 해상 부대 주력이 바로 페니키아 해상 세력이었거든요."

이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최근 전운이 감도는 세계의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방산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세계의 무기고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는데, 이는 한미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산 전투기의 개발 배경에는 미국 전투기 제작사의 기술협력이 결정적이기도 했다. 최근 수출이 활성화된 K-2 전차, K-9 자주포, FA-50 등의 수출도 미국을 둘러싼 국제 관계의 작용이 크다. 미국산 무기와 호환 가능하다는 장점에 미국의 입장에 따라 무기체계를 공급하기 어려운 나라를 무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미국이 대한민국에 미국 해군 함정의 MRO를 맡기기 시작했다.

"바꿔 말하면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관계 속의 대한민국과 유사하죠. 페르시아와 다른 문명 세력인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미국의 창끝에서 미국과 다른 문명 세력인 중국이나 러시아와 대결하는 구도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완충지대로서의 특성도 흥미롭다.

"페니키아의 경우는 어떻게 보면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기에 어떤 세력이 패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이쪽저쪽으로 영역이 바뀌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편에 섰을 때는 페르시아의 첨병 역할을 했지만, 그리스 세력이 강화되면서는 그리스 문화가 아시아로 들어오는 창구를 맡았거든요."

▲페트로그래피(암석 분석) 현미경 사진 ⓒ 윤국영 제공

■ 고대 이스라엘 토우에서 발견한 신앙의 기적

성서고고학자로서 윤 박사는 15년간의 이스라엘 유학 과정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신념과 학문 사이의 딜레마를 경험하기도 했다. 특히 이따금 제기되는 성경의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물 사이의 불일치는 항상 큰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그는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신앙의 기준은 더 오래된 기원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과학적으로 발굴한 무언가가 드러났다고 해서 믿겠다, 안 믿겠다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 방법을 따르되,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채로 둘 수 있고, 그렇다고 그것이 신앙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박사논문 주제였던 토우(土偶) 연구는 이런 관점을 잘 보여준다. 발굴된 유다 왕국 시대의 여성 우상들 수백 개를 페트로그래피(암석 분석)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 이스라엘 현지에서 제작된 것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이 우상들의 모델은 페니키아, 이집트, 시리아 등 다양한 인근 지역에서 온 것이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런 토우가 지닌 역사였다.

"가슴을 쥐고 있는 토우의 패턴은 엄청나게 오래 전부터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이 동작은 이미 유다 왕국 이전부터 수 천 년에 걸쳐 이어 내려오는 거예요."

즉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상 숭배 전통의 두꺼운 벽을 깨고 유일신 신앙이 등장한 것으로, 이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몇천 년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이런 신앙이 너무 당연한 건데, 거기서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거죠."

▲가슴을 쥐고 있는 여성 우상 ⓒ 윤국영 제공

■ 과거와 현재를 잇는 미래를 향한 도전

윤국영 박사가 창업한 '덴앤나우'는 두 가지 트랙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는 성서고고학에서 출발한 기독교 트랙, 다른 하나는 역사와 문화콘텐츠를 알기 원하는 일반 대중을 위한 트랙이다.

"예전에는 성경을 문자 텍스트로만 읽다 보니 개념을 못 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공감의 툴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다음 단계는 중동과 한국을 연결하는 문화 교류 사업이다.

"중동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해요. 요즘 뜨는 K-문화 때문이죠.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막연해요. 정말 필요로 할 때 손 내밀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고취시켜 주는 문화적 교류가 중요합니다."

이 문제의 해답을 문화적 투자에서 찾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ODA를 통한 문화유산 보존 지원, 박물관 탐방 프로그램, 학술 및 전시 교류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박물관을 모델로 삼고자 한다.

"유대인들은 정신적인 문화유산을 기억하고, 전달하고, 전승해서 오늘날 의미 있게 발현되도록 하는데 탁월합니다. 이걸 통해 이천 년 넘게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민족의 정신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어요."

결국 윤국영 박사의 연구는 변하지 않는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이자, 그 본질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수천 년 전 고대 사회를 형성했던 문명의 지혜가 2025년 한반도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기술과 문명은 분명히 더 발달하고 있습니다. 근데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죠.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을 통해 과거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독립잡지 <매거진S>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