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938만 명이 살고 있는 서울시의 2024년 예산은 약 45조 7천억 원이다. 이와는 달리 인구 1,400만 명인 도쿄도의 2024년 예산은 약 8조 4천억 엔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74조 원에 해당한다. 이런 대규모의 예산을 가진 일본의 수도 도쿄의 도지사 임기가 종료되고 있다. 오는 7월 7일 4년 만에 열리는 2024 도쿄도지사 선거는 연일 각종 화제가 보도되고 있다.
1. 선거 비즈니스
최근 주목 받는 화제는 출마한 후보자 수다. 지난 2014년 이전에는 후보자가 20명이 채 안 되었지만, 8년 전 21명, 4년 전 22명에 비해 2배 이상인 56명이 이번 선거의 후보자로 등록했다.
후보자 증가 원인은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NHKから国民を守る党)이 선거 게시판을 활용해 후원금을 벌려고 했기 때문이며, 이들은 후원자가 사용할 포스터에 “타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문구를 새기거나 여성 풍속점 선전용 포스터를 부착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도내 약 14,000여 개 포스터 게시판 중 1개소에 기부자가 독자적으로 작성한 포스터를 최대 24매까지 붙일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으며, 포스터 24장을 붙이려면 24명에 대해 1인당 300만 엔의 공탁금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공탁금 7,200만 엔에 관련해서는 불투명한 상태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소수 정당이 선거 기간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확산시키고 후원자를 늘리고자 선거를 이용하는데, 이를 ‘선거 비즈니스’라고 한다. 당선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후원자로부터 지원을 끌어내 자신들의 몸집 불리기에 이용하는 것이다.
2. 학력사칭 혐의를 가진 도지사
둘째로 가장 유력한 후보인 현직 도지사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의 학력 사칭 혐의도 화제다. 고이케 지사는 우리에게 1923년 간토 대지진 추도문 송부를 거부하거나 제 2 한국인 학교 건립을 백지화한 우익 정치인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2016년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 첫 당선되었을 때도 이집트 카이로 대학 학력 사칭 혐의가 부각된 적이 있다.
2020년에도 도지사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코이케와 4년 동안 동거까지 했던 키타하라 모모요(北原百代)라는 인물이 실명을 드러내며 코이케가 졸업을 못 했다는 증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 이집트 대사관이 SNS를 통해 코이케가 졸업한 것이 맞다는 글을 게재하면서 학력사칭 혐의는 수그러들었고, 코이케는 재선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또다시 학력 사칭 혐의가 불거졌는데, 고이케의 전 보좌관이었던 코지마 도시로(小島敏郎) 변호사가 주일 이집트 대사관의 SNS 게재문을 썼다는 인물의 말을 인용해 그녀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폭로했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코이케를 도쿄지검에 고발하였다.
코이케는 거듭 카이로 대학을 졸업했다며 이같은 행위가 선거 개입임을 주장했고, 선거 관보에도 여전히 카이로 대학 졸업임을 기재했다. 코이케는 최대한 방송이 자신의 학력 사칭 문제로 집중적으로 비난하지 못하도록 후보자 등록 마감 직전에 후보 등록을 했다. 방송의 형평성 때문에 자신의 학력 사칭 문제는 타 후보들의 흠집과 함께 보도되게 되어 있므로서 최대한 물타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학력사칭 논란 외에도 2016년 선거에서 내건 공약 ‘7개의 제로’(7つのゼロ)를 달성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높을 뿐 아니라 당선 가능성도 유력하다.
3. 코이케 유리코의 저격수
이처럼 현직 도지사의 학력사칭 혐의가 붉어진 상황 속에서 전 입헌민주당 참의원 의원 렌호(蓮舫)가 코이케의 저격수로 등장했다. 타이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렌호는 복수 국적 비판이 일자, 2016년 타이완 국적을 포기하고 현재는 일본 국적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한 렌호가 후보로 나온 이유는 고이케를 지원할 자민당이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4월 치러진 중의원(하원) 보궐 선거와 5월 시즈오카현 지사 보궐 선거 등에서 모두 패배하였고, 기시다 정권도 2할대의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렌호는 개인적으로도 도지사선거에서 패하더라도 마이너스될 것이 없다. 이번 출마를 계기로 참의원 의원을 사직했지만, 오는 9월로 임기 만료인 기시다 총리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중의원을 해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참의원을 그만두더라도 중의원 후보로 나와 당선되면 그만이다.
사실 렌호는 행정 쇄신을 통해 자민당과 공무원을 강하게 압박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자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민주당이 행정 쇄신 회의를 통해 대규모로 각종 사업예산을 재검토했는데, 이때 렌호는 세계 1위의 처리 속도를 가진 슈퍼컴퓨터 개발과 관련한 천문학적인 예산 투입 때문에 “2등이면 안되는가”(2位じゃダメなんでしょうか?) 라는 질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과 과학자들의 집단 반발로 예산은 동결되어 집행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그녀의 행정쇄신에 대한 이미지는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그녀는 이번에 도쿄도지사 후보로 나선 뒤에도 청년층에 대한 지원과 저출산 대책을 약속하고 있다.
4. 극우 보수를 대표하는 전직 항공막료장
마지막으로 전 항공막료장이던 타모가미 토시오(田母神俊雄)도 후보로 나섰다. 그는 지난 2014년에도 도쿄도지사에 출마하여 4위인 610,865표(12.55%)를 획득한 적이 있는데, 항공막료장(우리 공군 참모총장에 해당) 당시 “일본은 침략국이 아니다”라는 주장의 논문을 써서 현직에서 파면당했다.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 후보 때에는 선거운동원에게 보수를 지급해서 공직선거법 위반(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어 도쿄지검에서 징역 1년 10개월, 집행유예 5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고, 유죄 확정 이후 2023년 말까지 공민권 정지상태였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로 선거운동을 시작한 타모가미는 스스로 보수계 도민을 대표한다면서 ①재해에 강한 도쿄도, ②저출산대책으로 첫째를 낳으면 100만 엔, 둘째는 200만 엔, 셋째는 400만 엔을 현금 지급, ③외국인에 대한 순진한(甘い) 기준으로 만든 외국인 우대정책을 폐지, ④자학사관 교육 수정 등 극우보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5. 도쿄도지사 선거의 의미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은 최근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코이케 유리코 후보를 대놓고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인 가운데, 만일 자민당이 공개적으로 후원한다고 하더라도 고이케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야당 렌호 후보가 당선되면 자민당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되므로 비공식적으로 자민당은 코이케 후보를 지원한다. 이런 정국 속에서 자민당과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이번 도쿄도 도지사 선거가 향후 정국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또한 지난 도쿄올림픽과 같은 대형 행사가 없기 때문에 후보들의 공약이 ①지진과 같은 재해‧재난으로부터 안전대책, ②경제대책, ③저출산 대책 등 해묵은 문제들에 대한 뻔한 공약과 ④각 후보들의 이미지가 주요한 투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투표를 해야 하는 도쿄 시민들의 답은 이미 거의 결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대중의 불만을 이용해 “잘만 속이면 괜찮다”는 잘못된 동기를 지닌 선동 정치인의 주장이, 올바른 주장처럼 포장되면 선거인들부터 묵인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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