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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OB vs YB (8)] ‘코인’ 그리고 ‘깊은 못’

칼럼니스트 조현석 승인 2019.05.15 23:45 의견 0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 반드시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카페이다. 커피와 차는 단순한 음료나 기호품을 넘어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등장하는 일상의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영국의 카페 문화에서 주식이 탄생한 역사는 호사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는 구한말 중국으로 갔던 사신들을 통해 ‘양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커피가 소개되었다. 본격적인 카페 문화의 시작에는 고종의 역할이 가장 컸다. 아관파천 때 커피를 처음 접한 고종은 환궁한 뒤 덕수궁에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건물을 건축하고 궁중다례의식에서 커피를 즐기기도 하였다. 이는 자주외교를 통한 고종의 노력이었지만 아쉽게도 일제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다방문화가 발달하여 을지로와 명동, 충무로 일대에 수많은 다방들이 생겼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 서민들은 쉽게 이용하지 못했다. 전쟁과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여느 국가들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카페가 많이 생겼고,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모여 현실에 대한 토론을 하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민주화 운동 당시 학림다방과 독수리다방 등의 카페가 지대한 역할을 했던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에 들어서 더 다양해진 카페는 연인들의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가 되었으며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거나 공부를 위한 공간으로도 이용된다. 이번 연재에서는 을지로에서 30여 년간 사랑받고 있는 을지로의 카페 코인과 요즘 뜨는 힙한 카페 깊은 못을 리뷰하려 한다.

¶ OB - 코인

카페 코인은 을지로입구역 근처의 나석주 의사 동상 근처에 있는 오래된 카페이다. 명동과 을지로의 카페라고 하면 관광객과 직장인이 뒤섞인 북적북적하고 시끄러운 분위기를 생각할 수 있으나 카페 코인은 분주한 도심 한복판에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차분한 공간이다.

▲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 코인 ⓒ 칼럼니스트 조현석


오픈한지 27년이 된 카페 코인의 단골손님들은 근처 회사의 과장급 이상으로 연령대가 신상 카페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계단을 올라 가게에 들어서면 따뜻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가 처음 반기고, 부드러운 커피향이 두 번째로 반겨준다. 마치 80년대 서울 도심 속 다방으로 타임슬립한 듯하다.

운영 방식도 근처의 수많은 프랜차이즈 카페와는 조금 다르다. 자리에 앉으면 웨이터가 물 한 잔과 메뉴판을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아 커피를 내어준다. 카페 의자 역시 빠른 회전율을 위해 딱딱한 의자를 두는 여느 카페들과 다르게 푹신하고 편안하다. 때문에 조용한 미팅이나 연인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 80년대 다방 느낌 물씬 풍기는 카페 코인 ⓒ 칼럼니스트 조현석


물론 카페의 홍수 속에서 이 오래된 카페가 건재한 건 비단 차분한 분위기와 편한 의자 때문만은 아니다. 카페 본연의 조건인 커피 맛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카페 코인의 블랜드 커피는 드립커피라 가격은 조금 더 비싸지만 향긋하고 진한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비엔나커피와 전통차 등 음료가 다양하고 와플과 빙수와 같은 디저트 종류도 많다. 가끔 서비스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내어주기도 한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와 창밖으로 보이는 분주한 을지로의 모습이 대비되는 이색적인 매력이 있다.

▲ 카페 코인에는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와 분주한 을지로의 풍경이 대비되는 이색적인 매력이 있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여담으로 코인은 2013년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촬영장소기도 하다. 바람 3인방이 카메오로 출연해 “그라믄 안돼”라며 구수한 사투리로 미팅을 하던 그 곳이다. 7080 세대에게는 향수에 젖어 잠시간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아련함을, 2030 세대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옛날 아날로그 감성을 심어주는 그 시절 감성 카페 ‘코인’이다.

▲ '응답하라 1994'의 촬영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 YB - 깊은 못

지난 연재에서 소개했던 이남장 근처에 족히 40년은 넘어 보이는 제대로 된 간판도 없는 낡은 건물이 있다. 이 건물 1층 삼겹살집과 맥주집 사이로 들어가 복도도 없는 4층 계단을 올라가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 80년대 아날로그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깊은 못은 다른 을지로의 카페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단 말이야”싶은 곳에 존재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을지로의 힙한 카페이자 바이다.

쇠문을 열고 들어가면 80년대의 아날로그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아저씨들이 한잔 꺾고 가는 분위기가 가득한 골목을벗어나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없던 감성도 깨워주는 듯하다. 이런 분위기가 주는 인지부조화를 즐기는 것이 깊은 못을 즐기는 필자만의 방식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을지로의 감성을 갈구하는 많은 감성러들이 간판도 없는 깊은 못에 밤낮없이 모여든다.

▲ 카페 곳곳에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들이 멋스럽게 놓여있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낮에는 카페 메뉴를, 8시 이후엔 와인을 비롯한 주류들을 판매한다. 깊은 못의 음료와 예쁜 식기에 플레이팅 되어 나오는 디저트는 단순해 보이지만 너무나 예쁘다. 바나나 크림을 올린 부드러운 바나나 빵과 진한 바닐라 크림을 올린 쉬폰 케이크 등 투박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디저트는 감성을 앞세워 맛은 포기한 채 가격만 높게 받는 다른 감성 카페들과는 차별화된 맛을 선보인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특색 있는 비주얼과 맛을 자랑하는 것이 이 카페의 매력이다.

▲ 달달한 바나나 향 크림을 올린 부드러운 바나나 빵은 씁쓸한 커피와 잘 어울린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밤에는 어두침침한 조명 속에서 술 한 잔 하는 맛이 있다. 와인 메뉴들이 다른 곳에 비해 가성비가 뛰어나 서너 명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치즈플레이트, 감바스 알 아히요 등 안주들도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을지로에서 색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필자가 추천하는 카페가 바로 깊은 못이다. 낮에 색다른 공간에서 커피한잔에 망중한을 즐기고 싶을 때, 밤에 소중한 사람들과의 알딸딸한 소모임을 갖고 싶을 때 깊은 못은 훌륭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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