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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굿극 “잘 씻금 받고, 좋은 데로 가자”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3.09 10:58 의견 0
지난 3월 1일 막을 올린 연희단 거리패의 굿극 <씻금>이 공연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2016년 12월 첫 선을 보이며 좋은 반응을 얻은데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감동의 무대가 계속되고 있다.

 

극의 제목인 ‘씻금’은 표준어로는 ‘씻김’에 해당하는 진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씻김굿을 중심으로 한국의 근현대사 속 진도 민중들의 개인사를 진한 남도 소리로 표현했다. 주인공 순례의 죽음으로 시작해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가 열리면서 씻김굿이 시작되고, 순례가 굿의 대상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극이 진행된다.

 

연극 의 한 장면. <p class=(연희단거리패 제공)" width="550" height="321" /> 씻김굿은 망자를 보내고 산 자는 충실한 삶을 살도록 비는 굿이다. 연극 < 씻금> 중. (연희단거리패 제공)

 

씻김굿이란 전라남도에서 행해지는 의례의 한 형식이다. 씻김굿이라는 이름도 죽은 사람이 생전에 풀지 못했던 소망이나 원망 등 한이 될 것들을 씻어낸다는 데서 나왔다. 무속에서는 한 많은 영혼이 저승에 들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헤매고 다니면 산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손이 정성으로 굿을 해주면 그 덕으로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씻김굿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명확한 분리해 망자를 죽음의 세계로 보내고, 산 자는 더욱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복을 비는 굿이다. 특히 진도 씻김굿은 춤과 노래로 신에게 빌고, 소복차림을 한 죽은 자의 후손이 죽은 자와 접하게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굿극 <씻금>에는 순례와 다른 원혼들이 씻김을 받고 극락으로 가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나열된다. 순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진도 앞바다에 빠져 죽은 다양한 넋들이 등장하며 개인의 역사가 한국 근현대사의 수난사로 연결된다. 이 수난의 역사는 씻김과 길 닦음의 제의를 통해 삶과 죽음, 개인과 역사가 만나고 화해하는 극적 공간으로 거듭난다.

 

위안부 할머니부터 IMF, 세월호까지 우리 시대의 한을 풀어낸다. 연극  중에서 <p class=(연희단거리패 제공)" width="550" height="355" /> 위안부 할머니부터 IMF, 세월호까지 우리 시대의 한을 풀어낸다. 연극 <씻금> 중에서 (연희단거리패 제공)

 

순례와 다른 원혼들의 이야기는 위안부 할머니부터 IMF를 거쳐 세월호까지 우리 시대의 한을 아우르는 한편, ‘순례’로 분한 김미숙 배우의 열연, 끊임없는 관객과의 소통은 극에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내뿜으며 객석을 공감과 눈물의 바다로 만든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진도민요와 굿하는 가락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만들면서 신비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굿의 가장 큰 기능은 위로라고 한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서 오는 심리적인 안정감과 위로의 기능도 있을 것이다. 당골(무당)은 망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극락으로 갈 수 있도록 넋을 위로해주는 존재이다.

 

현대인은 너무도 많은 이야기에 지쳐있다. 가족, 친구, 직장 상사와 동료의 이야기, 심지어 이 나라와 나라 밖 이야기들까지 밀려와 우리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나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아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극 중 “잘 씻금 받고, 좋은 데로 가자”라는 대사는 무대를 찾은 관객 뿐 아니라 이 세상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가 되어 준다.

 

굿극 <씻금>은 서울 혜화동 30스튜디오에서 12일까지 계속된다.

 

[김혜령 기자 / windschuh@s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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