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구조로 보는 판옥선의 전술적 장점
① 판옥선 역시 우리 전통 한선(韓船)의 독자적이자 공통된 특징인 바닥 구조가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입니다. 많은 이들이 판옥선의 단점을 논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로
- 평저선의 판옥선은 큰 크기와 무게로 속도가 느리다.
- 평저선 구조로 된 판옥선은 복원력에 취약하다.
맞는 이야기긴 하지만 저의 견해는 조금 다릅니다.
바닥 구조가 평평한 평저선과 뾰족한 V자인 첨저선(尖底船)의 차이는 이미 조선 초기 태종 대에 새로운 군선(軍船) 개발을 위해 두 가지 형태의 배를 만들어 직접 실험한 기록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때도 전통적인 평저선으로 개발할 것인가, 속도가 빠른 왜선의 첨저선 형태로 개발할 것인가에 대해 오랜 운항 실험을 토대로 평저선 개발로 답을 정하였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판에 명종 시대에 평저선과 첨저선의 차이를 모르고 새로운 전선(戰船) 개발을 했을 리 만무합니다.
또한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그로 인한 갯벌 지역이 많고, 암초가 많은 우리 바다 환경에는 평저선이 최고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바닷물이 빠질 썰물 때를 보면 평저선은 그냥 바닥 위에 서 있지만, 첨저선은 배가 쓰러지고 맙니다. 운항 시 평저선은 바닥이 평평해 암초에도 잘 걸리지 않습니다.
속도에 관해서도 태종 대에 속도 실험을 하면서 왜선보다 느리긴 하지만 생각만큼 큰 차이는 없고, 속도에서 오는 단점은 구조에서 보강하는 걸로 마무리됩니다.
복원력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바닥이 평평해 흘수선이 낮은 평저선이 첨저선과 비교해 복원력이 현저히 나쁘다고 평을 하긴 힘듭니다. 흘수선이 낮은 만큼 평저선 바닥 면에는 무거운 돌들이나 물체들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조선 건국 훨씬 이전부터 수많은 세월 간 평저선 운항의 긴 역사를 이어 온 나라가 조선입니다. 복원력에 관한 문제를 가장 잘 알고 단점을 보완해 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실록에서도 배의 복원력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평저선이든 첨저선이든 전통 시대의 배들은 아차 하면 뒤집히는 건 양쪽 다 마찬가지로, 복원력의 문제는 배의 바닥 구조에서만 따질 이야기가 아니란 뜻입니다.
또 한 가지는
판옥선은 왜구·왜군 전술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철저히 왜선을 이기기 위해 개발된 함선이란 점입니다. 거함(巨艦)으로 개발한 첫 번째 이유가 왜구와 왜군들의 장기인 등선백병전(登船白兵戰) 자체를 무력시키기 위함입니다.
판옥선은 단순히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배의 구조 자체도 맹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어 노를 젓는 격군 실과 전투원을 태운 갑판을 분리한 다층 전함으로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분리할 수 있었습니다.
노를 젓는 격군(格軍)은 3층의 상갑판 아래의 2층 갑판에 몸을 숨겨 노 젓기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포수와 사수는 높은 위치에서 적군을 내려다보며 전투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판옥선을 일컬어 ‘작은 성이나 제방과 같다’라고 많은 이들이 표현합니다.
또한 배의 크기가 두 배 이상 커지며 화력도 강화되어 대맹선 정원은 80명이었으나 판옥선은 125명 이상의 병력이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분리로 인해 넓어진 3층 상갑판에는 함포를 더 많이 설치해 화력을 높이고, 전투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 판과 여장(몸을 숨기고 활이나 화기를 쏠 수 있도록 설치한 구조물)을 설치한 함선입니다.
②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 구조의 판옥선은 분명 왜선보다는 속도가 느립니다.
이 속도의 단점을 보완한 점으로 선체의 크기와 높은 화력의 함포전(艦砲戰)으로 공격력을 극대화 한 점과 튼튼한 소나무를 기본 건조 재료로 삼아 방어력을 높인 것입니다.
방어력뿐 아니라 나무못, 목재를 짜 맞추는 방식을 이용한 선박 건조 방식에서도 조선의 함선들은 반동 흡수나 충격에도 우수했습니다. 목재를 짜 맞추는 방식은 현대의 내진 설계 원리와 비슷하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반면 왜선들은 첨저선이라 흔들림이 심해 명중률이 형편없었어요. 주로 삼나무에 쇠못을 박아 만든 선체여서 충격에 약했으며 포탄의 반동에 함선이 손상을 입는 일도 있었습니다.
※ 선박 건조에서 나무를 짜 맞추는 방식과 나무못과 쇠못을 이용한 고정 방식은 내구성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결과를 낳아버립니다. 한옥과 같은 나무를 짜 맞추는 방식과 나무못을 이용한 조선의 배들은 습기에 의해 나무가 부풀어 오르기에 결속력이 향상되는 반면, 쇠못을 이용한 왜선들은 습기에 의해 쇠가 녹이 슬고 삭기 시작합니다. 특히 바닷물의 습기는 삭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입니다.
개발 당시부터 함포 전을 위한 전투선으로 개발된 함선이 판옥선입니다.
판옥선 이전의 주력 함선이었던 맹선은 단층 구조여서 격군과 포수·사수가 한대 뒤엉켜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지만, 판옥선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이 분리되어 있어 전투원은 전투에만 집중하고, 격군은 노를 젓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기에 복잡한 해상 전장에서의 폭넓은 전술 구사가 가능했는데, 함포 전 위주의 해전에서의 기본은 바로 평저선의 가장 큰 장점인 선회력에서 기인합니다.
해상에서의 함포전은 사실상 전함의 선회력이 전투력에서 가장 큰 비중을 담당합니다.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할 수 있어 곧바로 포탄 장전과 함포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판옥선과 회전하기 위해 많은 공간이 필요한 왜선들과의 전투는 절대적으로 조선 수군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판옥선에 대한 전투력을 논할 때 속도와 화포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평저선 구조 자체에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이유도, 명량해전에서 단 12척의 판옥선으로 적선 133척과 싸워 대승을 거둔 전설이 가능한 이유도 이러한 전함 간의 구조적 차이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6. 판옥선의 무장
판옥선은 크기에 따라서 24문 이상의 화포를 적재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천자총통, 지자총통처럼 대형 포를 주로 썼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현자총통이나 불랑기포 같은 중·소형 포를 선호했으며, 대형 화포는 선체에 보관하여 혹시 모를 전장 변화에 늘 대비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임진장초, 난중일기 등 수많은 기록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대형, 중·소형 총포류가 함께 언급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현자총통·황자총통 같은 중·소구경 화포, 신기전(신호용), 완구처럼 다양한 화약 무기들을 대량으로 운용하여 판옥선의 크기와 규모가 커진 후기에도 유럽식 불랑기포를 개조하여 탑재하였습니다.
판옥선은 개발 시기부터 포격을 전제로 한 선박이라 선체 자체를 발포와 피탄에 견디도록 하는 보기 드문 견고함을 가진 함선입니다. 판옥선의 재료가 매우 두꺼운 소나무 널빤지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화기로는 배를 부수지 못했습니다.
화포류 외에도 환도, 창, 활, 쇠뇌, 신기전, 화전, 승자총통, 비격진천뢰, 질려포통 등 수많은 무기를 싣고 다녔습니다.
※ 화기에 관한 이야기는 임진왜란 시리즈 3 조선 수군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7. 판옥선 중의 판옥선, 조선 수군의 기함 삼도수군통제사의 통제영 판옥선 천자일호좌선
각선도본 전선도는 조선 수군의 기함이자 삼도수군통제사가 승선하는 통제영 판옥선을 모델로 그린 것입니다.
너비 8.74m, 높이 5.56m, 길이 32.16m, 추정 중량 140.3t 규모의 조선 최고의 판옥선, 판옥선 중의 판옥선이란 수식어와 함께 유일하게 용(龍) 문양과 귀면(鬼面) 문양이 그려진 판옥선은 경상·전라·충청 수군을 모두 지휘한 삼도수군통제사가 탔던 천자일호좌선(天字一號座船)인 통제영의 판옥선뿐 이었습니다.
천자일호좌선의 화려한 도색은 전선의 위용을 나타낼 뿐 아니라 안료 채색으로 선체의 나무 재질을 보호하고, 그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일거양득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 사료들을 토대로 직접 그린 천자일호좌선 상갑판의 모습은 함대 지휘를 위한 신호 깃발들과 악기들, 삼도수군통제사의 직함을 나타내는 삼도주사사명(三道舟師司命) 깃발, 출전 전 제사를 지내는 둑기(출전 후엔 대장선을 뜻하는 수자기 帥字旗가 걸린다) 와 24문의 함포, 전투원들의 상부 보호를 위한 장방패, 무기 창고와 지휘소인 장대로 구성하였습니다.
또한 함포의 거치 방식으로 조선 후기 기록에 나오는 동거(動車)를 선택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함포 거치에 관한 기록이 없어 고정식 거치대를 썼는지, 이동식 거치대를 썼는지의 학계의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동거에 관련한 저의 생각은 이동식 거치대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견해입니다.
동거의 사용 연대에 관한 기록은 사실상 없기에 다른 문제는 몰라도 동거 사용 문제에 관해선 조선 초·중기에도 사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큰 편입니다.
또한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 화포는 천·지·현·황자 포입니다.
이 화포들은 화약과 포탄 등을 앞부분에 넣는 전장 식 화포로, 조선 수군은 포탄 외에도 대장군전과 장군전 등 현대의 미사일처럼 생긴 거대한 화살을 날려 적선의 선체에 큰 균열이 생기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화포의 거치대가 고정식이라면 장군전을 장착하기에 포의 각도 등의 여러 문제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의 모든 조선 함선들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은 전무 하다시피 한정되어 있어 모두가 조선 후기의 기록을 통하여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기에 제가 그린 통제영 판옥선도 후기 기록을 기초 토대로 그린 추정 그림이고, 3D로 복원된 판옥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복원된 기존의 몇몇 판옥선 중 가장 가까운 복원·재현이라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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