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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전투선]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 판옥선 1

이호국 작가 승인 2023.12.18 17:46 | 최종 수정 2023.12.27 22:42 의견 0

판옥선(板屋船)은 명종 때 처음 개발되어 임진왜란 당시와 조선 후기까지 활약한 명실공히 조선의 주력함이었습니다. 판옥선이란 한자 그대로 널빤지 위에 집(누각·장대)을 얹힌 배를 의미합니다.

대중들의 관심은 주로 거북선에 많이 향했기에 상대적으로 판옥선에 관해 거북선만큼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뭅니다. 과연 판옥선은 어떤 전투함이었을까요.

1. 판옥선의 개발 배경

왜선(倭船)의 발전은 100여 년 이상 지속된 일본 전국시대의 영향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전국시대 시기에 왜선들의 크기와 규모, 구조가 전투선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개선되었으며, 이 시기 조선에서 왜구(倭寇)들이라 칭한 집단은 단순히 기존 왜구들의 개념이 아닌 긴 내전 기간으로 인한 군비(軍費) 마련의 일본 다이묘들의 예하 정규군일 가능성이 꽤 큽니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 일어난 중종(中宗) 대의 사량진왜변(蛇梁鎭倭變, 1544년)과 명종(明宗) 대의 을묘왜변(乙卯倭變, 1555년)을 보면 왜선들의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사량진왜변에서는 20여 척의 왜선이 쳐들어와 200여 명이 만호진(萬戶鎭)의 작은 성을 포위할 정도였고, 특히 을묘년에 출현한 왜 선단은 무려 70여 척으로 전라남도 영암, 해남, 진도, 장흥, 강진 등 습격 지역이 꽤 넓다. 이로 인해 전라 병마사(全羅兵馬使) 원적(元積)과 장흥부사(長興府使) 한온(韓蘊) 등은 전사하고, 영암군수 이덕견(李德堅)은 사로잡혔습니다. 이런 규모이기에 필자는 이들을 단순 왜구가 아닌 다이묘 직할 정규군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은 이 두 왜변(倭變) 전에 삼포왜란(三浦倭亂, 1510년)을 겪었습니다.

삼포왜란, 사량진왜변, 을묘왜변의 과정에서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인 맹선(孟船)이 크게 개선된 왜선과 비교하여 군용의 전투함으로는 쓸모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맹선은 순수한 전투함이 아닌 조운(漕運 : 운송)에도 겸용할 수 있는 겸용 선이었기 때문에 기동력과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1461년(세조 7) 10월 신숙주(申叔舟)가 각지의 군선을 개량하여 군용과 조운에 겸용할 것을 주장하여 1465년에 개발된 병조선(兵漕船)이 맹선의 전신입니다. 병조선은 세조 대에 개발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 반포를 계기로 하여 대·중·소 맹선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대맹선(大孟船)은 80명, 중맹선(中孟船)은 60명, 소맹선(小孟船)은 30명의 수군이 탑승하며 맹선의 형태는 상장이나 누각이 없는 2층의 평선(平船) 구조와 한국 전통 선박의 대표적인 특징인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 구조로,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있는 기록이나 자료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평선의 모습. 맹선은 정원 80명, 60명, 30명이 승선할 수 있는 규모가 큰 평선이지만 사진의 일반적 2층 구조의 평선과는 구조적 형태가 같다. (거친펜 스튜디오)

이에 조운(漕運) 겸용 선이 아닌 새로운 순수 전투함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한 조정은 빠른 실행의 결과 1555년(명종 10) 9월에 왕이 새로 만든 전선(戰船)을 시험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등장하게 됩니다.

서강에 행행하여 전선을 시험한 뒤에 서교에서 관가하고 날이 저물어 환궁하다.

상이 망원정(望遠亭)에 행행(行幸) 하여 전선(戰船)을 시험한 뒤에 서교(西郊)에서 관가(觀稼) 하고, 날이 저물어 환궁(還宮) 하였다.

명종실록 19권, 명종 10년 9월 16일 무신 1번째 기사

이때 국왕 임석하에 시험했던 새로운 함선이 바로 판옥선입니다.

판옥선 복원도. (거친펜 스튜디오)

판옥선은 등장하자마자 대량으로 건조되었으며, 1566년(명종 21)경에는 그 척수를 감축해야 할 만큼 많아져 맹선을 대신하여 주력 전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2. 판옥선의 사료

판옥선(板屋船)의 형태와 구조를 알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자료는 조선 후기의 각선도본(各船圖本)과 삼도수군연합조련도(三道水軍聯合操鍊圖), 통제영수군조련도(統制營水軍操鍊圖) 등 많은 수의 수군조련도(水軍操鍊圖)를 들 수 있습니다.

모두 그림으로 제작되어 판옥선의 외부 형태와 구조를 자세히 알 수 있게 표현되었며 각선도본에는 전선도(戰船圖)가 나오는데, 이 전선도의 주인공이 바로 판옥선입니다.

많은 사료 중 전선도가 주목받는 점은 판옥선의 제원이 그림과 더불어 글로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에도 판옥선의 크기와 외부 구조를 연구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사료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림 자료 외에도 판옥선 관련 문헌 사료로서는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승정원일기, 난중일기, 임진장초, 이충무공전서, 헌성유고, 해동제국기, 해사록, 일성록, 여암전서 등 수많은 단편적 기록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 최근 몇 년간 새로이 발견된 고문서들에 의하여 판옥선과 거북선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심도 있는 연구와 함께 새로운 학설들이 등장할 걸로 예상됩니다.

3. 판옥선의 크기

올해 초부터 필자와 스냅툰이 함께 임진왜란에 등장한 조선과 일본의 주요 함선, 선박들을 실제 크기의 3D로 복원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배들의 설계와 치수 산출, 2D 그림 등의 고증은 제가, 3D 모델링은 스냅툰에서 진행하여 판옥선과 거북선의 복원 진행률은 현재 80% 정도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에 판옥선의 크기부터는 구조에 해당함으로 판옥선의 기록과 3D 디지털 복원에서 얻어진 실험 데이터들을 토대로 기술하려 합니다.

각선도본(各船圖本) 전선도(戰船圖).

각선도본 전선도의 그림을 보면 그림과 함께 판옥선 제원에 관한 글이 적혀져 있습니다.

戰船 전선

本板長九十尺廣十八尺四寸元高十一尺三寸下層信防牌高五尺船頭廣十五尺

船尾廣十二尺七寸上粧長一百五尺廣三十九尺七寸右統營上船尺量

배밑(본판)의 길이는 90자, 너비 18자 4치, 높이(깊이) 11자 3치, 아래층 신방에서 방패까지 높이 5척, 선두(이물) 너비 15척,

선미(고물) 12자 7치, 상장(판옥) 부분 길이 105척, 너비 39척 7촌이다. 이는 통영 상선의 치수이다.

本板長六十五尺元高八尺中廣十五尺船頭廣十二尺五寸船尾廣七尺五寸

右各邑鎭戰船尺量

배밑의 길이가 65자, 깊이 8자, 중간 부분 너비 15자, 선두 너비 12자 5치, 선미 너비 7자 5치.이는 각읍 진의 전선 치수이다.

統營座副船駕木十六本板十五立

통영 좌선과 부선의 가목은 16개씩. 본판은 (통나무) 15개를 조립한다.

各邑鎭戰船駕木十五本板十二三立

각읍 진의 전선은 가목은 15개. 본판은 12~3개를 조립한다.

飛荷直板十五立.船尾虛欄 本板十五立在水面不見

이물비우는 판자 15개를 조립. 선미는 난간이 없다. 배밑 본판은 15개를 이어 붙였는데 물밑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각선도본(各船圖本) 전선도(戰船圖)의 글 해석

위 각선도본 전선의 치수를 조선 후기 도량형 단위인 영조척(營造尺) 기준으로 하여 현재 단위로 환산하면 너비 8.74m, 높이 5.56m, 길이 32.16m, 추정 중량 140.3t의 규모를 갖춘 대형 함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각선도본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200여 년(추정) 후의 자료이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의 판옥선과는 규모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학계에서 기록을 토대로 연구·추정하는 판옥선의 크기에 관한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기의 판옥선 중에서 가장 큰 상선(上船)은 크기가 19.7~21.2m, 일반적인 판옥선은 크기가 15.2m~16.6m입니다.

임진왜란부터 17세기 기준으로의 길이는 대선(大船)은 본판(저판 : 선체 바닥)이 22.4m~23.17m, 상부는 26.13m~27.03m였으며,

중선(中船)은 본판이 17.60m~20.68m, 상부는 20.53m~24.12m입니다.

가장 작은 소선(小船)은 본판이 15.20m~20.2m, 상부는 17.73m~23m 정도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기준으로는 상선은 본판이 27.7m, 상부는 32.8m였으며 일반 판옥선은 본판 20.8m, 상부는 23.4m로, 명종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개발된 모든 판옥선의 배수량은 최소 80t에서 최대 280t내외로 추정됩니다.

판옥선 크기 비교 3D 복원도. (거친펜 스튜디오 · 스냅툰)


4. 판옥선의 구조

전투와 조운(漕運 : 운송) 겸용을 위한 2층 구조의 맹선과 달리 새로 개발된 함선인 판옥선은 조선 최초로 오로지 전투만을 목적으로 한 3층 구조로 개발되었습니다.

각선도본에 의해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외부 구조와는 달리 내부 구조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단편적 기록들은 존재하지만, 세부적인 내부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들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판옥선 구조도. 3D 복원의 기초 자료로 쓰였다. (거친펜 스튜디오)


이에 단편적 기록들을 토대로 필자의 추정 견해를 나열해 보자면,

층별 3D 복원도. (거친펜 스튜디오 · 스냅툰)

1층인 선실은 군량 및 군기 창고와 승선 병사들의 취침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식실이.

2층 갑판은 수많은 격군(格軍)이 노를 젓는 공간과 지휘관 실, 장교실, 조리실, 화장실, 무기고, 누수 칸(1층과 연결된 새는 물을 퍼내는 장소)이.

2층 격군실 3D 복원도. (거친펜 스튜디오 · 스냅툰)

3층 상갑판엔 장대(지휘소), 무기고, 지휘관 실(지휘관 실은 2층 또는 3층 장대 아래 중 한 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구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의 판옥선이 그려진 각선도본에 의하면 배의 방향을 좌우하는 키의 위치는 3층으로 나와 있으나 필자의 판옥선 그림과 3D 복원에서는 2층으로 배치하였습니다.

키의 위치에 관해서도 3층 배치와 2층 배치의 학계 논란이 있지만, 저는 실제 크기 디지털 복원 데이터를 토대로 2층 배치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돛을 접고 눕힌 판옥선 선미의 모습 1. (거친펜 스튜디오 · 스냅툰)
돛을 접고 눕힌 판옥선 선미의 모습 2. (거친펜 스튜디오 · 스냅툰)

주장의 근거는 위 복원 이미지의 모습대로 전투 시 돛대를 눕힐 때 키를 제어할 공간이 없어집니다.

판옥선은 그간 여러 차례 복원된 사례가 있었지만, 대부분 돛을 눕힐 수 있는 기능적 측면을 배제하고 복원했기에 키의 위치에 관한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판옥선의 눕힌 돛을 조금 띄워서 공간을 구성해 봤는데도 키를 제어할 공간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각선도본 전선도를 보면 한쪽 면의 노(櫓)의 수(數)는 9개로 나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조선 후기의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거북선(龜船) 그림들을 보면 한쪽 면의 노의 수가 8개와 10개로 나와 있는데, 판옥선의 선체를 기초로 한 거북선이기에 판옥선 한쪽 면의 노의 수가 무조건 9개 한정은 아닙니다.

노의 수에 관련해서는 격군들의 수와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격군들의 수가 많을 때는 노의 수도 많아지며, 반대로 격군들의 수가 적을 땐 노의 수도 적어집니다.

필자가 그린 판옥선 그림과 3D 복원에서는 한쪽 면의 노의 수를 10개로 상정하여 복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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