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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유나의거리] 길 위의 사람들(6) "꽃을 단 여인"

성유나 작가 승인 2018.09.18 11:04 의견 0

일요일 오후 버스 안은 한가하다. 꽃분홍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차 안에 오른다. 웃음기 없는 얼굴, 깡마른 몸, 꽃분홍 원피스도 남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행색이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다 내 앞자리에 앉는다. 순간 쾌쾌한 냄새가 진동한다.

걸인 생각이 스칠 찰나 숯없는 정수리 옆에 분홍색꽃 모양의 핀이 보였다.

▲ 유나의 거리 "꽃을 단 여인" ⓒ 성유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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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웅성웅성 아래 한길 가로 부랴부랴 이동했다. 뛰어놀던 아이들도 덩달아 따라갔지만 동네호랑이 숙자 할머니가 더 이상은 못 오게 네모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앞을 막아섰다. 아이들은 숙자할머니가 무서워 집으로 다시 올라갔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던 난 어른들 다리 사이를 요새삼아 한길 가로 나가는데 성공했다.

말문이 막히는 놀라운 광경에 온몸이 굳어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엄마 따라 공중목욕탕에서 여자 어른들의 나신을 보긴 했으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것도 훤한 대낮에 플라타너스 나무에 올라가 다리를 벌린 채 소변도 질질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친년은 침으로 찔러야 해!”

“베개를 안고 있는 거 보니 애가 죽었나 서방을 잃었나”

“아이구! 다 내놓고 머리에 꽃을 단 걸 보니 미쳐도 완전 미쳤어”

어른들의 말소리가 벌떼처럼 윙윙거렸고 벌거벗은 그녀의 머리에 단 꽃의 꽃잎이 날아와 내 시야를 가려버렸다.

남자 어른들이 나서 그녀를 내려오게 하려던 계획은 그녀의 저항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엔 소방차가 와 사다리를 놓고 끌어내렸다. 한 동안 동네에선 미친 그녀의 나신 사건으로 분분했다. 나 또한 머리에 꽃을 달고 찿아온 그녀와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 유나의거리 "꽃을 단 여인" ⓒ 성유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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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리기 전까지 그녀는 꼼짝 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내리면서 보니 켜지도 않은 핸드폰과 끝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버스가 떠나기 전 그녀와 작별 인사를 했다. 아주 고운 모습의 그녀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꽃을 단 여인들이 행복하길 바란다면 헛된 동정심일까 그녀들에게도 가을이 왔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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