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가면 오모가리탕이라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오모가리’란 전주 지역 방언으로 ‘뚝배기’를 의미하는데, 말 그대로 뚝배기에 묵은지와 채소, 민물고기 그리고 갖은 양념으로 푹 끓인 탕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오모가리’는 ‘김치찌개’를 뜻하는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는 30년 넘게 김치 사업과 브랜드를 유지해 온 오모가리글로벌 김형중 대표이사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식당 운영을 넘어 한국의 대표 발효식품인 김치의 세계화를 향한 도전의 연속이다.
김형중 대표와의 인연은 소상공인 비즈니스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던 무렵인 2013년 즈음이다. 당시 어느 창업 특강 자리에서 김 대표를 만나 명함을 교환했고, 별도의 취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SNS를 통해 가볍게 안부를 전하며 인연을 이어오는 정도였다.
10년이 넘은 지금, 시리즈 인터뷰 기획의 첫 인터뷰이로 김형중 대표를 섭외한 건 로컬F&B 비즈니스로 그칠 수 있었던 ‘김치’라는 아이템을 확대해 브랜딩, 상품화, 프랜차이즈, 대기업 콜라보, 글로벌 시장 공략 등 다양한 도전을 경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994년 출발한 오모가리 브랜드를 김형중 대표가 이어오기 시작한 건 2000년부터지만, 훨씬 이전부터 F&B 비즈니스를 해왔다. 인터뷰 시간은 100여분에 불과했지만 30년 넘는 비즈니스 일대기를 압축해서 들을 수 있었다.
◆김치 산업이 가야 할 새길을 찾아라
김형중 대표가 오모가리 브랜드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건 오모가리 김치찌개 사업을 개척했던 선배의 권유가 컸지만, 이미 가업으로 하고 있던 식당 사업 덕분에 F&B 비즈니스를 잘 알고 있었고, 김치 산업이 지닌 잠재력이 가진 미래를 내다봤기 때문이다.
인수 후 여러 가지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기존의 외식 비즈니스와 자신이 구상한 비즈니스를 오모가리라는 브랜드로 통합해 리뉴얼하는 과감한 변화에 성공했다.
“인수 당시 외식업계는 인건비, 원재료비, 임대료 상승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첫 번째 혁신은 묵은지의 대량 생산과 품질 표준화였다. 농협과 협력해 OEM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2007년부터는 규격화된 오모가리 김치 생산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맛의 균일화를 넘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 마련이었다.
“매장을 여러 개 운영하다 보면, 똑같은 맛을 내는 게 아주 어렵습니다. 체인이라는 말 자체가 똑같은 브랜드와 맛을 제공해주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균일하게 숙성시키고 규격화해야 합니다.”
◆묵은지 연구 성과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재탄생
김 대표의 노력은 2012년 농림부의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에 선정되며 큰 결실을 맺었다. 1억 2천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서울대학교를 포함해 4개 대학과 함께 2년 숙성 오모가리 묵은지 연구를 진행했다.
"2년 숙성 묵은지에서 인체에 이로운 유산균을 많이 발굴했고, 이를 활용한 건강한 액상 소스, 분말 시즈닝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김 대표는 라면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편의점 체인을 운영하는 대기업과 협력해 ‘김치찌개라면’을 출시, 10년 연속 편의점 PB상품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독점 계약 등의 이슈로 다른 기업들과의 협력이 어려워졌습니다. 여러 제조사와 협력을 시도했지만 무언의 압박 때문에 모두 생산 직전에 무산됐죠."
이런 난관은 10년이라는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신제품 제조를 전제로 한 상품개발과 해외시장 판로개척 등에 자금과 인력, 비용이 투입되었지만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그간의 손실을 금액으로 산출하면 100억 원 이상에 달할 정도다. 김 대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지만, 꾸준히 대화를 통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라면 이외의 분야에서는 활발한 콜라보를 시도하고 있으며 좋은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오는 11월 22일 김치의 날을 기념해 한솥도시락과 <500일 숙성 오모가리 김치제육덮밥>을 한정판으로 선보였으며, 소비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향해야 하는 이유
어려움 속에서도 김 대표의 도전은 계속됐다. 최근에는 하림그룹과 손잡고 새로운 라면 제품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이미 대기업이 꽉 잡고 있는 국내 라면시장 속에서 중소기업이 국내 유통에 도전한다는 건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시장 개척이 중요합니다. 샘플 상태에서도 월 200만 개 이상의 오더를 받을 만큼, 해외에서 한국의 라면, 김치라면의 인기는 최고 수준입니다. 김치의 세계화는 단순히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발효 문화, 그 안에 담긴 과학과 철학을 함께 알리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라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5년간 숙성한 묵은지’를 들고 있다. 묵은지는 일반 김치나 김장 김치가 오래 묵어 신맛을 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김치이기 때문이다. 묵은지를 담는 제조 과정 자체가 특별하며, 그렇기에 누군가 함부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묵은지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이 시장의 주목을 받는 이유도 이런 독점성이 있어서다.
“우리의 5년 숙성 묵은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품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김치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묵은지는 전라도 음식이에요. 일반 김치와는 담는 방식부터 다릅니다. 바로 담아 먹는 김치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맛이 나죠.”
◆ 김치 산업의 글로벌화는 지역 경제 살리는 열쇠
김 대표는 지역 농산물 활용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단순히 사업적 성공을 위한 노력을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와 한국 식품의 세계화라는 그림을 동시에 그리고 있었다.
"현재 전라북도 진안의 농산물로 묵은지를 만들고, 익산에서 가공합니다. 이런 행동은 전라북도를 발효식품 클러스터로 작용하게 만들어 세계 속의 발효식품의 메카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거라고 봅니다.
특히 5년 숙성 묵은지 개발은 연구를 거듭할수록 한국 전통 식품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의 도전은 단순히 김치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은 묵은지 안에 있는 유산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5년 동안 안 죽고 버틴 균이라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김치 유산균으로 빵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융합이 바로 한국 식품의 미래라고 봅니다."
김형중 대표의 이야기는 한국 식품 산업의 현주소와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을 통한 성장과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혁신하고, 지역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세계 시장을 바라보는 그의 비전이,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기업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작지만 풍성한 식탁을 대하는 이들에겐 일상의 행복이 될 것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김치, 특히 전라도의 묵은지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이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이자 철학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앞으로도 어려움은 있겠지만, 우리의 묵은지가 세계 각국의 식탁에 오르는 그날까지 계속 도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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