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경영 방식을 옹호할 수는 없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경영 자율성을 가진 국영 유통기업을 만들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쿠팡보다 나쁜 일자리가 더 많다는 점, 적지 않은 사람에게 위험하고 질 나쁜 일자리라도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논의에서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교육기관 태반은 취업 가능성이나 업무 능력을 충분히 키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공과 무관한 곳에 취업하는 노동자가 절반에 달한다. 이런 전공 불일치는 노동자의 경쟁력과 소득을 위협하는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이 나라 교육은 학위 프리미엄을 판매하면서 저숙련 노동자를 배출하고 있다.
90년대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지 모른다. 일자리가 많았고, 업무 전문화와 자동화가 덜 이뤄졌으니까.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고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기업은 업무에 어울리는 사람을 엄격하게 선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형마트들의 위기와 자동화가 보여주듯, 진입장벽 낮은 일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학위만 그럴듯한 저숙련 노동자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학위마저 없는 중노년 저숙련 노동자는 더 위험하다.
노동자의 지위가 위태로울 때는 노동운동도 힘을 잃기 마련이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건강 식품인가 불량 식품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가혹한 지위 경쟁 속에서 박탈감과 결핍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캄보디아조차 선택지로 보일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나쁜 대우와 높은 사망률은 가난과 지위 하락이라는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쿠팡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쿠팡은 실적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며 배송 기사를 모았다.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시키고 월급도 제 때 주지 않는 곳에 비하면, 쿠팡은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일부 노동계가 배송 물량 억제니 '0시 - 5시 배송 금지'니 하며 불안정 노동자의 소득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대안을 꺼내 왔으니, 새벽 배송 논쟁은 처음부터 노 - 노 갈등을 끌어안고 갈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노동시장에서도 수요와 공급이 작동한다. 한 업계에서 노동자가 귀해지면, 기업은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시작한다. 기업이 노동자를 두고 경쟁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동자 공급이 넘치면, 기업은 유동성을 챙기기 위해 월급과 복지를 줄이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인의 이기심만 탓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도 절판된 책이나 한정판 굿즈를 갖고 있다면 원가보다 비싸게 팔 것이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태를 기업인만의 이기심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국 기업도 무질서한 경쟁이라는 큰 구조 속에 있다. 자본가가 경쟁보다 독점을 바란다는 점을, 애덤 스미스 이래로 여러 경제학자가 지적해 왔다. 완전 독점에 가까운 기업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기업은 경쟁을 견디기 위해 현금 유동성을 쟁여놔야 한다. 기업이 현금 유동성을 지킬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협상력 약한 거래처를 압박하거나 인건비 대비 업무량을 늘리는 것이다.
노동자의 공급이 많은 상황에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기업인에게는 자발적으로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할 유인이 없다. 물론 일부 고숙련 노동자를 얻기 위한 경쟁은 치열할 수 있지만, 대다수 노동자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배송 시간부터 규제한다면, 쿠팡을 비롯한 유통 기업은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우회하는 도피처를 찾을 것이다. 물류와 사무를 자동화해서 그쪽 인력을 줄일 수도 있고, 불안정 계약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암시장을 만들 수도 있다. 새벽 배송 자체를 중단해 버리고 다른 사업에 집중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임금 체불조차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데, 대기업이 작정하고 나서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중소기업 노동자나 청소부가 지금보다 괜찮은 수입을 벌 수 있다면, 맞벌이로 벌어서 자녀 학원비까지 다소 안정적으로 챙길 수 있다면, 실적 비례 보상에 이끌려서 위험한 새벽 배송을 선택하는 사람이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로봇으로 대체하기 힘든 인력이 귀해지면, 기업은 처우 개선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안 그러면 퇴사를 말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배송 금지나 배송비 인상은 나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대증요법이다.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고, 유망한 중소기업들에 많은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고, 기업의 현금 유동성을 고려해서 세금을 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원인 요법이다. 물론 원인 요법은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심야 배송 금지가 신속하고 적절한 해법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새벽 배송 문제는 쿠팡만 바라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쿠팡이 위축되면 네이버와 CJ가 있다. 당근마켓과 심부름 서비스도 있다. 만약 대기업의 새벽 배송 서비스가 사라지면, 대량 실업과 더 질 나쁜 일자리 확산이 기다린다. 구체적인 빌런을 상정하고 공격하는 전술은 구조를 바꿀 여력을 훼손할 수도 있다. 당장의 승리를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한 승리를 미룰 수도 있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무질서한 경쟁 구조이지 개인의 이윤 동기가 아니다.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까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 대한민국헌법 제1호 제87조
※칼럼니스트: 이완
자살 예방과 기회 격차, 정치철학을 연구합니다. 경제는 최후 승자를 가리는 생존 게임이 아니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