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라운지 일렁」에서 개최된 2025 누구나글쓰기 성과공유회 (사진: 윤준식 편집장)
지난 10월 25일 부산 영도에 소재한 「라운지 일렁」에서는 특별한 북 콘서트가 열렸다. 주인공은 신중년 다섯 명. 1년간 격주로 만나며 각자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모임의 계기는 「매거진S」 윤준식 편집장의 소책자 『누구나 글쓰기 누구나 책내기』였다. 이 책을 읽은 나춘선 작가가 책에서 영감을 받아 ‘누구나 글쓰기’를 테마로 한 동아리 「누글누글」을 시작했고, 부산노동권익센터의 지원을 받으며 부산역 「유라시아 플랫폼」에서 격주 간격으로 모임을 이어갔다.
■ 다섯 빛깔 이야기들
『엄마의 바다』강혜숙 작가는 엄마와의 추억을 풀어냈다. 저술 계기는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덕분이다. 드라마를 보며 해녀였던 엄마의 사연이 겹쳐 보여 많이 울게 되었고, 결국 엄마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출장 때문에 기차를 많이 이용해야 했는데,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집필 시간으로 잡았다. 매번 부산역 파리바게트를 집필 공간으로 이용했는데, 빵 쟁반에 까는 유산지를 버리지 않고, 자필로 초고를 쓰곤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옛날 기억들이 손을 따라 흘러나왔다”며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Well-dying;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잘 풀어냈다.
서문을 낭독하는 강혜숙 작가. 읽다가 목이 메이고, 함께한 모든 이들의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진: 윤준식 편집장)
우태현 작가는 『우아씨 해방일기』를 펴냈다. 난임으로 고생하다 13년 만에 아들을 얻은 경험을 책으로 쓰는 과정에서 25년 만에 육아일기를 꺼내게 되었다. 저술을 완료하고 나니 항상 까칠하던 아들이 “엄마의 이야기에 감동했어.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에 가족사진 새로 찍어”라 했다며 이번 저술에서 느낀 보람을 표현했다.
박미자 작가는 이번이 두 번째 저술에 도전한 케이스다. 이번에 낸 작은 책 『기장의 바람』은 자신이 힘들 때마다 찾아간 기장의 여섯 항구 이야기를 담았다. 원래는 함께 활동하던 이들과 공저로 책을 내고 싶었으나 실행이 어려워졌고, 「누글누글」과 함께하는 힘으로 버틴 결과 저술에 성공했다. 이에 멈추지 않고 내년 칠순을 기념해 또 한 번의 출판을 꿈꾸고 있다.
최용호 작가는 이미 「누글누글」 참여 전에 퇴직 후 2천km 국토완주 이야기를 담은『인생의 페달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이미 책을 펴낸 데뷔 작가였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저술활동을 위해 「누글누글」과 함께해왔다. 이번 북콘서트를 계기로 국토완주 과정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원래는 유튜브로 여행기를 기록하려 했으나, 장비가 연달아 고장 나며 결국 글로 남기기로 했다. “퇴직은 쉼표이지, 마침표가 아니다”라는 그의 메시지는 이날 북콘서트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했다.
모임의 리더로 나섰던 나춘선 작가는 “정작 내 책은 내지 못해 가슴이 너무 아프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그간 경험했던 도시재생 15년의 이야기와 부산 건축여행 이야기를 풀어내기엔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대신 내년 봄에는 저술을 완료할 것을 목표로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신중년 작가 4명의 저서가 전시된 북테이블 (사진: 윤준식 편집장)
■ 솔직한 고백들
북토크 과정에서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글쓰기의 고통을 털어놨다. 나춘선 박사는 “시작할 땐 두 달이면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결국 못 쓰게 되면서 북 콘서트 하지 말까 고민했다”고 했다. 박미자 작가도 “쓰는 내내 포기할까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이에 강혜숙 작가는 “한 달에 두 번씩 만나며 분량 체크를 했다”며 “이에 맞춰 숙제하듯 써내다보니 책이 나왔다”며 글쓰기 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책 준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강혜숙 작가는 미생물 아틀라스를 책으로 쓰고자 하고, 최용호 작가는 규제혁신 책을 구상하고 있다. 우태현 작가 또한 저술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면 역사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고려시대 역사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
「누글누글」 모임을 이끌어왔던 나춘선 작가는 “50대가 되면 살아온 삶을 정리해보는 게 중요하다. 올해 장기간 격주로 만나며 서로를 밀어준 결과, 다섯 송이 꽃이 피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도전에는 때가 없다는 것을 이들이 증명했다”며, 「누글누글」 2기 활동을 기약했다.
북(book)콘서트니까 북(악기)콘서트도 함께 하겠다며 나선 골목명창(?) 최용호 소리꾼. 요즘 판소리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모든 이들을 북소리로 리드하며 창과 가요를 즐겁게 부르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윤준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