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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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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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에서 금산여관으로 돌아오니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두루치기에 술 한잔 걸치며 식사겸 안주로 먹었다. 시인과 나처럼 화가 나서 훌쩍 여행을 떠나 온 분당 사는 분도 합석했다.
▲ 이렇게 저녁이 공짜로 제공됐다. 내가 뭐라고. ⓒ 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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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과 남편 분(다들 홍대빵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이 조용히 자리를 내어 주셔서 이런저런 이야기와 시낭송으로 저녁을 채웠다. 시란 상처 있는 가슴들을 때론 울리기도 한다. 이곳의 마감시간은 12시다. 둘째 날이 끝났다.
아침을 먹고 강천산으로 떠났다. 강천사를 지나 현수교를 건너 신선봉 정상에 올랐다. 산을 내려와 저수지를 거쳐 왕자봉으로 향하다 돌아 왔다.
▲ 강천산 봉우리 중 한 개. ⓒ 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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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교, 건널 때 조금 떨린다. ⓒ 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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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순창고추장 산나물 비빔밥을 먹었다.
▲ 순창고추장 산채비빔밥, 10가지 반찬에 9천원, 서울 사람들으면 아주 공갈 염소똥이라 할 것이다. ⓒ 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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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쌔뿌렀다"던 버스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 마냥 걷기로 했다. 한참 지나 팔덕면사무소 앞에서 다니는 버스가 있는지 물었다. 가르쳐 주지만 도무지 버스가 올 기미가 없어 그냥 걸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문득 들리는 차소리에 뒤돌아보니 승용차 한 대가 멈줘 있었다. 아까 내가 면사무소 앞에서 버스를 물어보았던 그 분이었다. 그분은 6개월에 한 번씩 서울대병원에 온다고 했다. 우리 집을 소개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 주방 앞에 다실 공간이다. 공간을 데우는 난로. 항상 결명자 차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다. ⓒ 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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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걸었기 때문에 피로가 많이 누적된 모양이었다. 눕자마자 곯아떨어져 달콤한 쪽잠을 자고 일어나니 반겨 줄 사람이 돌아 왔다. 그와 공주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방으로 돌아 와 하루를 정리했다.
▲ 금산여관 벽화. 어떤 만화가가 일주일간 그린 벽화란다. ⓒ 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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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기간 동안 머무른 금산여관은 이미 잘 알려진 게스트하우스였다. 무엇이 그곳을 그렇게 유명하게 했을까 내가 느낀 것은 마냥 내 집처럼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같이 하니 모인 모든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아껴줬다.
▲ 큰 수건에 금산여관을 수놓았다. 우리집도 선물용으로 준비 해야 겠다. ⓒ 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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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식구라는 주인장 내외의 철학이 묻어나왔다. 주인장의 행동과 마음에서 미련 없이 모든 걸 내어 주는 넉넉한 마음이 느껴졌다. ‘혹시 손해가 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염려 보다 ‘아무렴 일부러 손해를 끼칠까’ 하는 마음으로 모든 손님들을 하나하나 보듬는 세심함이 돋보였다. 그곳은 모두의 안식처, 피난처였다.
▲ 살짝 주방이 보이는 다실. ⓒ 칼럼니스트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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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은 인구 3만 내외의 작은 시골 읍내로 도시처럼 우리를 바쁨으로 내몰지 않는 여유가 있다. 따뜻한 호남의 인정이 살아 있고 순창이라는 어감에서도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머지않아 게스트하우스 <금산객잔>이 문을 연다고 한다. 그 때 또다시 그곳에서 지친 심신을 다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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