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 이어 프랑스기메동양미술관에 있는 <사계절 행려풍속도>를 살펴보겠습니다.총 8폭의 그림 중 지난주에는 관리의 행차를 막고 송사를 하는 풍경인 <노상송사>와 양반들이 유흥을 즐기는 모습을 담은 <기방쟁웅>을 설명했는데요. 이번 주에는 <가두매점>과 <노상풍정>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 가두매점(街頭買占)
<가두매점>은 행려풍속도 8폭 중 인물이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그 만큼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들의 행동과 표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조선 후기 서민들이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 시대 활발했던 상공업 도시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작은 다리가 놓인 개천 양옆으로 늘어선 버드나무에선 이제 막 푸른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개울가 옆으로 거위 한 마리와 오리 세 마리가 보입니다. 잔잔한 개울가만큼이나 동물들의 모습도 여유롭군요.. 아마도 그림속 계절은 은 이제 갓 여름을 맞은듯 합니다.
푸릇푸릇 버드나무 너머로 보이는 기와집과 반듯한 돌로 만들어진 둑의 모습, 꽤나 섬세하게 조각된 다리난간을 보니 양반들이 살던 동네로 짐작되는군요.
개천 근처에서 사당패 몇 명이 흥겨운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사당패들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형태로 모여 선비, 노파, 어린아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고 있습니다.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으로 구성된 사당패는 신명나게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북을 치며 추는 두 명의 남자와 부채를 들고 덩실거리는 한명의 여성은 흥에 겨운 듯 보입니다. 삿갓을 쓴 다른 여자 사당은 관중석에 다가가 부채 위에 돈을 걷고 있습니다.
관객들 모습들 모두 제각각입니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아예 앉아서 보는 구경꾼, 한쪽 옆구리에 활을 끼고 화살을 들고서 흥겨움에 취한 양반, 손자를 업고 나온 할머니, 삿갓 쓴 나그네, 봇짐을 진 아이, 돈을 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이는 양반까지 여러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을 통해 현장의 생동감과 흥겨움이 그림 너머로 전해지는 듯 합니다.
보자기를 덮은 소반을 머리에 이고 댕기머리의 여인이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사당패 구경을 하는 무리 중 두 남자의 시선은 다리를 건너는 처녀의 뒷모습을 향하고 있네요. 미묘하게 흐뭇해하는 느낌까지 주는 그들의 모양새가 웃음을 자아 냅니다.
¶ 노상풍정(路上風情)
<가두매점>이 생동감 넘치는 도시의 한 장면을 담았다면 <노상풍경>은 한가로운 여름날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마을의 길목마다 버드나무가 보이네요. 어느덧 버드나무의 가지마다 잎이 무성해졌습니다. 바람에 따라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초록물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짙어진 버드나무 이파리를 보니 녹음이 푸르른 한 여름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마치 높은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그려진 것처럼 저 멀리 보이는 풍경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두막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 길게 뻗은 산성과 산들이 보입니다. 마을의 풍경에서 시선을 조금만 앞으로 옮기면 논밭 사이로 강아지와 여인, 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늠름하게 앞장서서 걷는 강아지, 참을 이고 가는 여인과 엄마를 따라가는 아이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그림의 제일 앞쪽에는 말을 탄 양반행렬과 소를 타고 가는 선비가족이 길 한복판에서 서로 마주친 풍경이 펼쳐집니다. 흰말을 타고 하인을 대동한 양반은 긴 담뱃대를 물고 소를 탄 선비가족을 당당하게 쳐다봅니다.
소를 탄 여인은 어린 아이를 안은 채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이 그림에서 많은 짐을 짊어진 채 아이까지 업은 여인의 남편은 매우 힘겨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모습에서 양반의 권위적인 면이 돋보입니다.
앗, 버드나무 사이로 보이는 낚시하는 총각이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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