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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57)]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욕쟁이 신부님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7.04 10:49 의견 0
“야! 거기 뒤에 군바리 놈들, 미사시간에 조는 건 참겠는데 떠들진 마라. 부대장한테 얘기해서 다시는 성당에 못 오게 만든다.”

 

머리가 하얀 전곡성당의 백 신부님은 성정이 불같았다. 내가 상병 말년일 때 대대장으로 온 천주교신도인 김중령 덕분에 부대원 중 천주교신자들은 전곡에 위치한 전곡성당으로 미사를 보러 나가게 되었다.

 

그 전의 대대장은 기독교신자여서 교회일에만 열심히 지원을 해줬다. 부대 안에 교회와 절만 있던 것도 천주교 신자들이 소외당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군종병이 둘이 있었는데 한 명은 기독교 군종병 또 한 명은 불교 군종병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은 종교행사 시간에 의무대에 모여 주기도문이나 읽고 가톨릭성가를 몇 곡 부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김중령이 대대장으로 부임을 한 이후부터는 본인도 미사를 보러 가야 했고 천주교인들도 종교행사를 제대로 시켜주라는 백 신부님의 간청이 있었다. 우리부대는 대대장의 지시로 일요일 종교행사시간에 수송부에서 차량 한 대를 빼어 천주교신자들은 영외에 있는 전곡성당으로 보내서 미사를 보게 하였다.

 

영외에서 미사를 본다는 건 한마디로 엄청난 특혜였다. 미사는 대대장 부부와 함께 봤지만 대대장부부가 먼저 관사로 귀소를 한 후에 병들은 나중에 귀대를 했기 때문에 약 한 시간 정도는 자유시간을 즐기다 들어가곤 했다. 물론 대대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같은 천주교인으로서 그 정도 혜택은 눈감아준 덕분이다.

 

처음 전곡성당으로 미사를 보러 나갔을 때는 마침 부활절이었다. 신도들과 성당 측에서 성당 앞에 여러 음식을 펼쳐놓고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해줬다. 이게 웬 횡재 아무튼 대대장 덕분에 천주교신자들은 살판이 났다. 그 후 나는 병장으로 진급을 했다. 병장으로 진급한 후엔 성당차량 인솔을 내가 맡게 되었다. 단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대대장과 사모님한테 많은 신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좋은 일도 문제가 생기는 법. 부대 내에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 시간 이후에 한 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있단 걸 알게 된 내 동기 놈들이 내게 자기들도 종교행사에 따라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거다.

 

동기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러마 하고 허락을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그들이 미사에 따라 나오면서 사고가 생긴 거다. 내 동기 몇 명이 미사에 참석을 하지 않고 전곡 시내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다방에서 놀다가 헌병대에 걸린 것이었다.

 

욕쟁이 탱자씨네 실내포차에서 백열 형과 한잔 마시는 날, 이 때 백열 형은 포차 옆에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했는데 탱자씨는 백열 혈은 자지사장이라고 불렀다. 욕쟁이 탱자씨는 얼마 후 뇌암으로 사망했다.

(사진 : 이정환 기자)

 

큰 사고는 없었지만 이 사실이 대대장에게 보고됐다. 당연히 인솔자인 내가 대대장한테 크게 혼이 났고 다신 그런 일이 없을 거란 다짐을 하고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미사를 마친 후 자대복귀 시간이 엄격해졌다.

 

일요일에 부대 밖에서 약간의 자유시간을 얻었던 천주교 신자 부대원들은 미사가 끝나자마자 복귀를 하게 되면서 점점 신자 수가 줄어들었다. 결국 나의 병장 말년에는 천주교 종교행사는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제대 후 할머니가 견진성사를 본대서 기념사진을 찍어드리려 성당에 갔다. 우리식구들은 하월곡성당이 본당인데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다. 하월곡성당은 대중교통이 애매한 곳이라 늘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할머니가 다니기엔 좀 힘든 거리였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께서는 그 동안 성당에 다니지 못한 한을 풀려는지 걷기에 무리가 있는데도 정말 열심히 성당에 다니셨다. 그러면서 견진성사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이 너무 눈에 익은 분이다. 성사를 다 마친 후 할머니와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가까이서 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그 분은 바로 전곡성당의 백 신부님이셨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연천 ***대대에서 근무했던 이정환 병장입니다. 충성!”

 

나의 인사에 신부님이 깜짝 놀라시며

 

“야! 그래 기억난다. 그 꼴통부대 새끼들.”

 

하신다. 신부님은 정확히 기억을 하고 계셨다.

 

백 신부님을 다시 만난 후 성당에 냉담하고 지내던 나는 이날 이후로 열심히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신부님의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살가운 입담은 여전했다.

 

약주를 좋아하는 신부님과 술자리도 편히 몇 번 하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지난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들어보니 우리 부대원들 때문에 신부님이 엄청 골머리를 썩으셨었다. 부대원들이 미사에 안 오는 일로 대대장과 언쟁도 크게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탱자네 포차에서 외삼촌과 한 잔 마시는데 실내포차 주인장인 탱자씨가 묻는다.“조카 지난번에 보니까 백신부님이랑 무지 친한 거 같던데 어떤 사이야 그리고 견진성사 때 그 분은 누구셔"

 

이런저런 내용을 설명하니 참 인연이 대단하다며 놀라는 눈치다.“아휴 난 그 신부님 무서워서 말도 못 꺼내겠어. 얼마나 무뚝뚝하고 무서운지 신자들이 다들 피해 다녀.”.지금은 은퇴를 하셨을 텐데 다시 만날 인연이 생기려나알고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 속이 깊으신 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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