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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16편: 기자 간담회

조인 작가 승인 2020.02.29 11:05 의견 0

“VIP가 원하시는 일입니다.” “네. 전 장관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주실 건지 알고 싶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요. 다른 방법 있겠습니까? 최대한 보위해 드릴 테니 끝까지 버티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제발 가족들은...” 

장관직을 제시받았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특히, 총장이 걸려. 그 양반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데.’ 사실, 법조계 출신이 아니기에 더 고사했어야 할 장관 자리였다. 개혁이 명분이었지만, 검찰 내부를 경험하지 못한 외부인이었기에 섣부른 인사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참여 정부 시절 문화와 관련한 부서 장관으로 일반인을 임명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열정도 있었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업무와 관련한 자료를 일주일 내에 보고할 수 있도록 하세요!”

라고 참모들한테 명령했다고 한다. 대부분 밤늦게까지 자료를 만들어 장관이 정한 기일 안에 마무리해서 책상 위에 울려 놓았는데, 파일 더미가 사람 키만큼 됐다고 한다. 책상을 가득 메운 서류 더미를 보고, 

“이게 뭡니까?” “예. 장관께서 지시하신 서류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검토하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 드리자면, 원하신 서류가 다 올라 온 건 아닙니다.” “예? 얼마나 더 있나요?” “아마도 지금 올린 자료에 몇 배는 될 거로 생각합니다.” “아, 그렇군요.”

본인이 지시한 일이니, 철회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장관은 며칠 동안 서류를 훑어봤다. 그러나 연예인처럼 살았던 사람이 행정 서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결국, 계속 쌓이는 서류는 방치한 채 얼마 되지 않아 이런저런 행사를 핑계로 사무실을 나갔다. 그 당시 담당 공무원들이 그 장관을 가리켜 “무식하면 용감하다니까!”라는 말로 비아냥 댔다고 한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적격이지. 알면 따지는 게 많아!” 

측근의 반대에 VIP가 했던 말이다. 다시 한번 유사한 실수를 저지르려는 참이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전 편을 통해서 계속 등장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실을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는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얼마 되지 지나지 않은 실패 사례가 있음에도 VIP는 참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본인이 다르며,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조국심’이 이미 그의 세포마다 각인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VIP의 판단 미스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내정자는 겁이 많았다. 과거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이후로 법조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검찰, 판사한테 열등의식마저 갖고 있었다. VIP는 그 열등감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장관이라는 직책으로 눌러서 검찰 개혁을 완수할 것으로 생각했다.

기자회견은 성공리에 끝났다. 수려한 외모와 말주변으로 내정자를 향한 시선이 조금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여론조사도 긍정적인 반응으로 전환했다. 기자 간담회 주최가 내정자이니, 이후 나오는 보도는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론은 팩트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진실과 별개로 모든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고 싶기에 여론이 호도하면 그 방향으로 기울여지게 돼 있다.

헬스장에서 노인들이 모든 TV마다 TV조선을 틀어대니 어쩔 수 없이 장관 비리를 듣게 되고, 그 기간이 몇 주가 되면, ‘아무리 꼰대 조선이라도 거짓말만 할까?’라고 인식이 전환되는 시점이 있다. 그 시점을 분기점으로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이미지는 계속 좋아지지 않게 된다. 이제 팩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부정적이기에 싫게 되고, 오히려 좋은 평가가 나오면, ‘조작했구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역시 기자회견 하기를 잘했습니다. 분위기가 좋습니다.” “얼마나 호전된 건가?” “초기에는 거의 80% 이상이 반대했다면, 현재는 40% 이상이 우호적으로 돌아섰습니다.” “믿을 수 있는 통계인가?” “사실, 여론조사는 조작도 가능하고, 과거처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젊은 세대들은 어차피 크게 관심 없고 50대 이상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추세라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해도 된다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여론의 방향을 돌리면 해결되리라 생각했지만, 검찰은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밀어붙여!” “네? 청와대 압력이 만만치 않을 거 같습니다.” “청와대가 포기하게 만들면 되지.” 

총장은 여론조사를 믿지 않았다. 아니 여론 반응을 볼 필요 없었다. 이건 힘 겨루기지, 국민의 염원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검찰 개혁? 웃기는 소리구먼. 검찰 개혁에 관심 있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내정자의 위법이나 불법 정황이 드러나면 버티기 힘들 거야.’ 

조국이 되고 싶었던 자는 검찰 개혁이 국민의 염원인 것 마냥 선전하고, 모든 언론이 북새통으로 검찰 개혁과 똑같은 높이로 내정자의 비리를 맞세워 떠들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러한 보도를 원하는 국민은 얼마 없었다.

“검찰에서 계속 수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뭐라? 내 의지를 전하지 않았나?” “아닙니다. 그랬는데도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체 개혁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우스운 꼴이 됐구먼, 내가 기르려 했던 개가 나를 물려 하다니.” “예. 적당한 시점에 잘라내야 할 거 같습니다.” “철저히 잘라내야지. 어쨌든 장관 임명은 진행해!” “예.”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게 됐구먼. 그래도 여기서 지면 말이 아니지. 곧 선거도 다가오는데.’

원만한 협상도 가능했을 텐데, VIP는 힘으로 눌러버리기로 결심했다. 과거처럼 막강한 힘은 없어도 본인이 임명한 총장 정도는 누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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