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중요하다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137)
조연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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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16:05 | 최종 수정 2020.02.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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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다양한 의미로 번역된다. 협동, 교회, 교제, 교회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동체”는 새로운 시대의 대안이다. 사회와 관련한 대부분 저서는 현재 문제 해결 방안으로 공동체를 제시한다. 교육, 문화, 정치, 사회 등 모두 공동체를 강조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공동체는 ‘집단’이 아니다. 다수의 횡포로 인해 소수가 불이익을 당해서도 안 되며, 공동체 이익을 강요해서 역시 소수의 의견을 무시해도 안 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공동체가 아니다. “한 몸”, “지체”라는 성경적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는 공동체 내의 갈등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는 존중에서 더 나아간다. 단순한 의견 존중은 서로에 대한 전투 의지는 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 됨”으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똘레랑스”가 종교전쟁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을 하나로 화합하게 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코이노니아”는 바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현실 교회의 모습은 교회 건물은 하나일지라도 계층이 다르다. 조직은 피라미드형이며, 회의는 반 폐쇄적이다. 사실, 공개를 요구하는 성도도 별로 없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무관심하게 ‘한 시간’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 이런 상태로 공동체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며, 수주대토(守株待兎)와 같은 어리석은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유경제 활동은 교회 청년들과 노령층들을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세대 간의 갈등과 차이도 어느 정도 해소할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모든 연령층이 연합하여 참여할 수 있도록 권유해야 한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넘어선 과학 기술 발달의 충격으로 인한 ‘아노미’를 해결할 방법은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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