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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17편: 주사위는 던져졌다

조인 작가 승인 2020.03.15 11:25 의견 0

“검찰 개혁은 국민의 염원입니다. 검찰의 힘이 지금처럼 밀폐된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검을 휘두른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은 요원할 것입니다.”

어렵게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검찰 주요 인사는 못마땅한 낌새를 보였다. 관례로 으레 참석해야 할 검사장들이 취임식에 대거 불참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해? 두고 보자!’

장관은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명분은 조촐한 취임이었다. 

“직무로 다사한 나날을 보내는 검사들을 장관 취임식에 참석하게 하는 건 검찰 개혁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 ◇ ◇ ◇ ◇

“저 친구 웃기는구먼.” “네. 총장님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쪽팔려서 장관 하겠습니까?” “그러나저러나 저 친구 뒤는 확실히 캐봤지?” “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확실히 보내버려!” “예.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한 것들로만 진열하겠습니다.” “보낼 때는 확실히 보내 버려야 뒤가 없는 법이야.” “하지만, 청와대에서도 만만치 않게 나올 겁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본인들도 이번 인사가 잘 못 됐다는 건 인식해야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야.” “예. 잘 준비하겠습니다.”

검찰은 매일 장관의 측근과 그 가족까지 파헤쳐서 장관 이미지에 커다란 생채기를 냈다. 검찰이 하는 일이 참 많을 텐데, 대한민국 검찰은 장관 뒤를 캐는 일 외에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권력에도 할 말을 하는 검찰, 법 앞에는 모두 공평할 수 있게 만드는 검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총장 신호탄의 희생자는 바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장관이었다. 그렇게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던 사람이 자신의 특권으로 자녀들을 밀어주고, 아내도 합세해서 권력을 남용한 정황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아닙니다. 음모입니다.”

일반적인 장관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 여론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워낙 교수 시절부터 반듯한 이미지를 가꿔온 장관이었기에 그 배신감이 더 컸나보다. 언론과 여론은 되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 로마의 시저가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고 말했다는데, 로마 시민이 그를 반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면 주사위는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말이라도 아꼈다면, 그 여파가 지금과 같지 않았을 텐데. 누가 미래를 점칠 수 있으랴? 정의의 투사처럼 발언했던 직언들이 부메랑이 돼 돌아와 자신의 목을 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개 검사한테 전화만 해도 다음 날 바로 권력 남용이라는 보도가 전파될 정도였다. 그의 입은 진보와 정의를 외쳤지만, 그의 환경은 특권층에 가까웠고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평생 누려왔기에, 그가 말한 진보는 없는 자들을 위한 게 아니라 조금 더 갖길 원하는, 본인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그는 결코 깨달을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위를 바라보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과거에 한 목사의 딸이 50평대에 사는 친구 집에 방문하고 나서 부러운 마음에 “나는 언제 저런 집에서 살아볼까?”라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마침 동행하던 친구가 “너는 지금 몇 평에 사는데?”라고 물었더니 목사 딸이 하는 소리가 “응. 40평대에서 살아!”였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고, 그 욕망이 인류 발전의 동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보는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집단의 보편적 발전이 아니던가?

“아내가 몸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담당 검사한테 그 부분을 알린 것이지, 직권을 남용해서 압력을 가한 건 아닙니다.”

가택수색 당시 집에 있었던 아내가 걱정돼 담당 검사한테 전화한 게 일파만파(一波萬波)가 돼 새로운 구설수가 됐다. 담당 검사도 압력으로 느꼈다고 실토해서 장관의 애처(愛妻)로운 호소는 먹히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는구나!’ 사법고시 실패 이후 처음 느껴 보는 비정함이었다. 대통령조차도 더는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장관까지 임명까지 했으니, 사실 나머지는 내 몫이었던가? 나는 하고 싶지도 않은 자리를...’ 

아이들은 경력 조작과 비리 입학으로 현재 다니는 학교도 제대로 졸업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본인과 아내는 검찰 기소에 처했으니, 장관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버티세요! 언제까지 계속 저렇게 공격하겠습니까? 어찌 됐든 장관이 총장의 상관 아닙니까?” “좀처럼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실, 총장이 저보다 약자라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VIP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의지할 데는 대통령뿐이었다. 

“여기서 VIP를 운운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기자 간담회도 열고,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까지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위기에 처하면 VIP께서도 좋지 않으실 텐데요?” “지금 VIP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기다려 보시죠.” 

하소연할 곳도 없고, 그저 숨통이 조여올 뿐이었다. 좋은 가정, 좋은 직업, 좋은 경력 등 남들 부러워할 필요 없이 살았던 장관의 앞길에는 항상 즈며밟고 갈 꽃잎만 가득하리라 생각했는데, 그 꽃이 진달래 꽃잎일 줄을 그가 알았을까? 밟고 갈 때마다 몸부림친 애한(哀恨) 담긴 꽃잎의 아픔을 그가 알았을까?

아무도 밟히기 싫어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뿌려졌을 뿐이다. 기에 뿌려지고 누군가의 발아래 밟히는 순간 꽃잎은 더러워지고, 결국에는 쓰레기가 돼서 썩어 사라지게 된다. 그런 꽃잎을 밟으면서 혼자만 한 걸음 한 걸음 나간다고 해서 진보라고 할 수는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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