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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18편: 블로거 이야기

조인 작가 승인 2020.03.22 11:36 의견 0

나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프리랜서다. 그리고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자라서 사회에 대한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빌어먹을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아!”

한때는 정치에 관심이 있었고,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현재 보수당과 진보당이 다르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정치는 포기했다. 

“내가 정치하지 않는 게 내 후손들한테 떳떳할 수 있는 길이다!”

어린 시절에는 정치가가 되고 싶었다.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고 싶었다. 요즘 꼰대들이 보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을 법하다. 원래 가난은 사회 개혁을 부르짖게 만든다. 현상 유지는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개혁은 가난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평등은 그럴싸한 포장지고 내용물은 기존과 다를 바 없다. 결국, 또 다른 혁명이나 개혁으로 사람만 바뀔 뿐이다. 

“과거는 미래의 기억이다.”

귀족들을 갈아엎고 등장한 부르주아들은 그들이 말하는 혁명을 하지 않았다.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혁명을 했다. 사실, 새로운 지배 계급이 등장한 것이지, 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한 두 사회자가 1929년에 시작한 오스카 시상식에 흑인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참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2020년 시상식에 흑인 후보는 한 명 있네요.”라고 말하면서 수많은 스타를 웃긴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의 영화 <기생충>이 노미네이트되고, 수상도 했다. 흑인은 한 명뿐이지만 동양인은 여러 명이 참석했으니, 참 많이 발전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전복시켰다. 과거 드라마 속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실제로도 공산주의는 계급 전복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좀 단순했다. 사회과학적인 방법을 너무나 맹신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는 걸 그는 이해하지 못했던가? 

그의 전공이 철학이라고 할 때 그의 업적은 심사숙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선동적이었다. 천재적인 유대인 중 한 명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을 좀 쉽게 생각했다. 사실, 그는 엥겔스의 후원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던 사람이었기에 프롤레타리아를 언급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당시 사회과학이라는 게 복잡할 필요 없었던 학문이었기에 그는 단순하게 세상을 나누고 예측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틀렸다. 공산주의 혁명은 시도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왜?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다. 소비에트 시대 지배자들은 과거와 똑같이 단, 방법만 혹독하게 다르게 해서 인민을 괴롭혔고, 그런 혹독한 괴롭힘으로 인간 개량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은 불쌍한 인민만 죽어 나갔다. 붕괴할 때까지 니체의 ‘위버멘쉬’도 스탈린의 ‘슈퍼맨’도 등장하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두 가지 계급으로 나눈다. 세상을 아메바처럼 만들어 버리면, 세상이 쉬워 보인다. 과거에는 남자와 여자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사회적 관습이었지, 고대 그리스에서도 남자 애인이 있었고,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은 정액받이 소년을 데리고 다녔다. 그 소년들은 장군들의 성욕을 풀어주고 그들의 정액을 마시면서 오히려 만족했다고 하니, 내가 생각하는 더러움이 아니었나 보다.

성경에도 동성애가 등장한다. 그리스민족과 히브리민족이 다른 점은 전자는 남성과 남성과의 관계를 이성 관계보다 우월하게 봤다는 것이고, 후자는 ‘죄(sin)’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마르크스가 세상을 성경적 관점으로 본 건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일까? 사실, 그가 탄생시킨 공산주의는 성경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선언해서 반종교성을 드러냈는데, 그러고 나서 공산주의를 새로운 종교로 만들어 기독교 자리를 탐낸다. 그리스 철학과 성경을 잘 알고 있는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새로운 진리의 길로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가 교주가 됐다. 그의 사후에 마르크시즘은 변화를 거듭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나, 그가 그토록 비판한 기독교와 비교하면 그 힘은 조족지혈(鳥足之血) 수준이다. 살아남았다고는 하나, 변질됐고 그 추종자도 많지 않다. 반면에 기독교는 선진국에서는 몰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못사는 국가나 사회에서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나?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바뀌었으니 달라져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한다. 물론, 과거 군사정권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아무 데서나 해도 잡아가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말만 자유롭게 하게 해줬다고 해서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말하는 소리는 내 주변에 있는 몇 명한테만 전달될 뿐이다. 티브이를 틀기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정신없는 소리는 수천, 아니 수십만 명한테 전달된다. 그중에는 아직도 미디어가 정직하다고 믿는 광신자들이 많다. 

확증편향, 그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말을 전해주는 언론을 신뢰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마음이 편하면 그게 보약이다. 40대가 넘어서면, 성향이 바뀌기 힘들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그 나이를 넘어섰는데 바뀌는 게 많다. 일단, 정치적 성향도 점점 중도로 바뀌고 있고, 투표만큼은 꼭 했는데 이제 모든 선거에서 기권한다. 선거 기간만 되면, 국민의 권리라고 하면서 투표를 권한다. 혜택도 있다. 그래서? 누굴 찍으라고? 내가 원하는 후보가 없는데 투표장에 나갈 필요가 있나? 오히려 투표율이 50%가 넘지 않으면, 아무도 안 뽑는 게 민주주의 아닐까?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두 당이 공천 질을 하고 있다. 개혁해야 살아남는다고 하면서 물갈이를 서두른다. 기본적인 이념이 같은데, 사람이 달라지면 새로워질까? 영화 《신세계》는 경찰과 조직 중간보스의 우정을 멋짐으로 보여준다. 정말 파렴치하다. 아니, 경찰이나 조폭이나 같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경찰이 오랫동안 조폭에 몸담게 되니, 경찰로 돌아갈 수 없었다. 주인공이 살길은 ‘보스’가 되는 길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 하급 경찰관이 조폭의 보스가 된다. 

조폭같은 두 당에 몸담은 새로운 사람들이 최종 목표로 하는 지점은 당 대표, 그리고 대통령이다. 당 대표도 바뀌고, 대통령도 바뀐다. 그런데,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붉은 여왕 효과’에 빠진 것 같다. 지들은 변했다고 해도 국민이 볼 때 달라진 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늪에 빠지면 발버둥치면 칠수록 늪에 더 깊게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그의 마지막 호흡마저 늪으로 말려 들어간다. 조금이나마 버티는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죽지 않는 건 아니다.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늪에서 나오고 싶다면,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나는 달라. 빠져나올 수 있어!”라고 하는 순간 다른 사람보다 일찍 숨을 멈출 것이다.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들어가는 이유는 개혁을 원하는 게 아니라, ‘나’를 고양하고 싶기 때문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목표 아닌가?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천주교인도, 신천지인도 모두 유교라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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