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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19편: 우한발 폐렴

조인 작가 승인 2020.03.29 11:20 의견 0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로 인해 폐렴이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되도록 공공장소를 피하시고, 청결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명절의 즐거움과 아쉬움에 어색함을 던져주는 보도였다. 심각하게 보도하는 것 같지는 않으나, 괜히 나가서 감염돼 고생하지 말라는 멘트였다. 설날 연휴 끝나기 하루 전에 꽤나 어설프게 전달한 것이다. 국내 환자도 있다고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크게 염려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다만, 중국인들이 몰려드는 시기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중국과의 교역이 끊기면 국가 경제에 타격이 크다는 걸 사드 때 경험했기 때문에 중국 우한발 폐렴과 관련해서 자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연휴 마지막 날에 참 어색한 뉴스네요.” 
“그러게, 말이다.” 

지원은 어머니께서 싸주신 김치, 어묵, 두부조림 등 밑반찬을 챙기는 중이었다. 살던 곳을 등지고 대구에 내려간 지 5년째다. 종종 서울을 오가면서 활동하지만, 결혼 전만큼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겨서 명절이 아니면 집에 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들 고향으로 내려갈 때 상경하고 다들 귀경할 때, 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교통지옥은 피할 수 있었다. 
 

다들 과거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인파와 차량이 움직이고 있는 게 명절이다. 전국의 60% 이상의 인구가 몰려 사는 수도권이지만, 이 기간 만큼은 물 빠진 갯벌 같다.

“야, 너희도 내일 코엑스 간다는 거 취소해! 우한발 폐렴이 중국에서 유행이라고 하는데, 사망자도 있나 봐! 괜히 아이들 데리고 갔다가 안 좋은 일 생기면 안 되니까.” 

명절 연휴 마지막 날에 코엑스에 쇼핑하러 간다는 동생한테 전화를 걸어서 만류했다. 큰 문제야 없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리고 지원 가족도 여의도에 가려던 일정을 취소했다. 

“아빠, 저 세종대왕을 보고 싶어요!”

어느 날 책을 읽던 딸 아이가 지원한테 한 말이다. 당연히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지원은 아무렇지 않게, 

“그래, 어렵지 않지. 이번 명절에 한 번 다녀오자.”

그리고 무심코 책을 보니, 세종대왕 동상이 여의도에 있다는 게 눈에 띄었다. 

‘응? 여의도에 있다고?’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광화문 거리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늘 그렇듯이 세종대왕 동상이 이순신 동상 주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원 옮겨진 세종대왕 동상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해서 명절 연휴 기간에 여의도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우한발 폐렴으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여보, 우리도 내일 일찍 내려갑시다. 아무래도 수도권보다 대구가 낫지 않겠어?” 
“그래요. 새벽에 출발할 수 있도록 해요.”

중국에서 들어온 우한발 폐렴 환자가 수도권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당연히 수도권과 중국에서 더 떨어진 지역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서 무심코 뱉은 말이다.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전염병이 물리적 거리를 쉽게 극복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었다.

새벽 4시, 명절 음식과 반찬을 챙겨서 출발한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해 보니 전국 고속도로는 무리 없다. 막힘 없이 ‘뻥’ 뚫렸다. 물 흐르듯이 쉽게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1월의 겨울 새벽은 고요하고, 이동하는 차량도 거의 없다. 다만, 이런 원활한 흐름에 긴장하라는 듯이 신호등만 제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을 뿐.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상경하는 차량의 행렬이 바둑알로 가득한 바둑판 같다. 매번 상경할 때, 하향할 때 지원은 ‘참 다행이다.’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간혹, 사고 소식도 듣고 도로가 꽉 막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본인이 겪는 일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지원의 마음을 억누르기도 한다. ‘고향이 뭐길래? 저리도 이동해야 하나?’ 아마도 지원도 고향을 찾아 이동하기에 다른 운전자들의 마음이 이입되기에 그런 것 아닐까?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아이들의 체력은 어른들의 휴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소리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소리와 “제발 뛰지는 마!”라는 부모의 고함이 잘 버무려져 집에 돌아온 티를 마음껏 보여주고 있었다. 

“애들이 쉬질 않으니, 우리도 쉴 수가 없네.” 
“그러게. 어쩔 수 없이 밤에 자야 할 거 같아.” 
“이렇게 된 거 라면이나 끓여 먹읍시다. 어머니께 받아 온 김치도 있으니.” 
“오케이!” 

아이들이 커가면 먹는 양도 늘어난다. 신혼에는 라면 두 개면 충분했는데, 요즘에는 3개도 부족하다. 밥까지 말아서 먹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먹는 양이 늘어난다.

“그나저나 우한발 폐렴 환자가 더 생겼대.” 
“그래?” 
“확진자는 얼마 안 되는데, 전염성이 크고 아직 약도 없나 봐.” 
“음. 메르스 꼴 되는 거 아닌지 몰라.” 

메르스 당시 확진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치사율이 높아서 공포의 시기를 보낸 적 있다. 특히, 대구는 자각 없는 공무원 한 명 때문에 그가 사는 지역 일대 경제가 무너지고, 메르스 공포로 떨게 한 지역 아닌가? 

“나는 메르스 안 걸려! 지난주에도 메르스 때문에 입원한 지인 보고 왔는데, 괜찮잖아!”

그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엄청난 민폐를 끼쳤고, 오죽하면 시민들이 나서서 해임하라고 항의할 정도였다. 이후 징계위원회에서 해임을 결정했으나, 즉각 항소했고 이후 비판이 수그러들고 모든 기억을 과거의 지갑 속에 잘 접어두는 대중의 특성이 다시 작용하자, 복직해서 잘살고 있다고 한다.
 
지원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설마?’가 불쏘시개에 불붙기 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스쳐 지나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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