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미아리_이야기(22)] 미아리 건달 꺽수 이야기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2.14 12:08 의견 0
“씨벌, 내가 챔피언 출신인데 그까짓 돈 3백만 원 때문에 양아치 짓거릴 할 것 같소”

 

심한 전라도 사투리로 나지막하게 깔고 내뱉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정말 살이 떨리는 일이다.

 

꺽수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물론 워낙 유명한 건달이라 동네 술집에서도 보고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몇 번 보긴 했다. 그런데 내가 꺽수와 집안일 때문에 직접 대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꺽수의 본명은 최경수. 사람들이 그를 ‘꺽수’라 부르는 건 그의 이름을 빗대어 부르는 것이지만, 남의 기를 잘 꺾어놓는다고 해서 지어준 별명이다.

 

우리 집은 미아리삼거리 안쪽 동네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곳이 경남 아너스빌 아파트 부지로 편입되면서 보상금을 제법 받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미아삼거리 전철역에서 가까운 곳에 4층짜리 다가구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옥탑 방까지 포함하면 5층짜리 건물이 우리 집이 된 것이다. 우리 집은 현재 CGV로 바뀐 옛 대지극장 뒷골목, 속칭 ‘여관골목’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됐다.

 

이 여관골목은 우리나라 최초의 러브호텔 밀집 촌이다. 이 이야기도 미아리의 역사와 관계된 것으로, 나중에 따로 ‘미아리 이야기’ 에피소드 중에 하나로 풀어볼 예정이다. 우리 집은 미아리에서만 55년을 살고 있는 그야말로 미아리 터줏대감이다. 지금이야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엔 동네에 새로 이사를 오는 집들은 기존의 집들에 시루떡을 돌리며 인사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미아삼거리로 이사 오는 사람들은 터줏대감인 우리집에 떡을 돌리는 것을 빼먹으면 큰일 난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런데 새 집을 구하고 이사 갈 마음에 들뜨고 바쁠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하게 밝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사 하기 전에 새 집 단장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살 3층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이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계약날짜가 한참 지났는데도 말이다. 도통 이사할 생각을 하지 않는 세입자에게 이사비용 조로 300만 원 정도 얹어줘 내보낼 요량으로 설득을 하는데 이 집 남자가 요지부동인 것이었다. 물론 돈 300만원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 세입자가 대지극장 뒷골목에서 내로라하는 건달이라는 거다. 그가 어머니에게 특별히 해코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삼류건달의 험악한 말투와 외모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겁나고 낯선 경험이었을까는 짐작을 하고도 남는 것이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550"] 미아삼거리 여관골목과 먹자골목은 화려하고도 화려하다. 하루라도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새로 생긴 담스모텔로 향하는 연인들

(사진 : 이정환)

 

하루는 어머니가 내게 같이 가자며 나를 앞세우신다.

 

“너 그 사람하고 절대 싸울 생각은 말아라.”

 

나의 급한 성격을 잘 아는 어머니 말씀이다.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한번 봤다가,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면 멱살이나 한번 쥐었다 놓아야지' 가벼운 생각을 하며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그 집에 도착해 들어가 보니 집안이 완전 난장판이었다.

 

“씨벌, 이 여편네야, 술 더 가져오란 말이야.”

 

자기 마누라한테 술 사오라며 고래고래 쌍스런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남자가, 길에서 몇 번 마주쳤던 바로 '꺽수'였다.

 

나는 오금이 저리고 말았다.

 

자기가 마시던 맥주병을 거실바닥에 깨뜨리고 그걸 지근지근 밟고 돌아다니는 괴물 같은 남자가 이사를 안 나가고 내 어머니 속을 썩이는 인간이 ‘꺽수’다. 거실은 온통 피범벅이고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고, 그 피 냄새가 심히 역해 나는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아줌니, 왜 그러쇼 내가 집을 못 구해서 여기서 조금만 더 살아야겠당께요. 아따, 내가 챔피언 출신인데 그까짓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강짜부리는 줄 아쇼”

 

내겐 눈길 한번 안 주고 소리만 지르는 꺽수가 오히려 고마울 뿐이었다. 물론 꺽수는 대번에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간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 내가 얼마나 젖비린내 나는 범생이로 보였을까

 

나중에 꺽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들은 얘기인데 꺽수가 그리 자랑스러워하는 챔피언은 프로복싱 한국 챔피언인 것이다. 그는 한국 챔피언 한번 먹었던 걸 가지고 마치 세계 챔피언을 먹은 양 의기양양 내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씨벌, 내가 챔피언 출신인데'라는 말이 그의 18번 멘트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무튼 꺽수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은 전부 혀를 내두른다. 세상에 그렇게 겁 없는 인간은 처음 봤다며… 꺽수는, 하지 말고 보지 말라는 현장엔 항상 있었다. 다행히 그날 꺽수를 만났을 때 그가 나를 자세히 안 봐서 그런지 나중에 길에서 마주쳐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결국 우리는 처음 제시한 금액인 3백만 원의 세 배 이상을 그에게 지불하고서야 그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 일이다.

 

헌데, 그 후 좁은 미아리 골목 안에서 그와 다른 인연이 어찌 생기지 않았겠는가!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