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부터 우체국 당일특급 서비스가 없어졌습니다. 전국 모든 지역은 아니지만,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한 내륙의 주요도시의 경우 오전 일찍 접수하면 늦은 저녁까지 배송되는 우편서비스였습니다. 퀵서비스보다 저렴한 배송서비스를 표방하던 실속있는 서비스였는데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다행히 익일특급 서비스는 여전히 제공되고 있지만, 우체국 집배원을 중심으로 한 차별화된 서비스가 하나 없어진다니 섭섭하기만 합니다. KTX 특송서비스를 제공하던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를 통해 진행된 서비스였는데, 적자 누적이 계속되자 2022년 12월 31일자로 업무를 종료하면서 이와 연동된 우체국 당일특급도 멈추게 된 속사정이 있더군요. (다행히 <짐캐리>라는 수하물 운송·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을 통해 KTX를 활용한 수하물 서비스는 부활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또 다른 기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체국 당일특급 서비스는 우편물보다는 물품을 배송하는데 초점을 맞추던 서비스입니다. 이와 유사하지만 보다 원초적인 우편서비스는 바로 전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보는 우체국이 아닌 전화국 소관이었으며, 지금은 전화국이라는 국가기관에서 공기업으로 전환된 KT(한국통신)에서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전보가 갖던 기능인 신속배송이라는 특성이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KT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하게 되어 있고, 급한 연락을 주고받는 신속배송에 목표를 두지 않고 이용자가 선택한 카드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인쇄하여 3~5일 이내에 배송하는 온오프라인 카드배달 서비스로 전락했다고나 할까요?
제 글을 통해 모처럼만에 ‘전보’라는 통신수단의 이름을 대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어쩌면 난생처음 ‘전보’라는 명칭을 들어본 분도 있을 겁니다. 전보를 소개하기에 앞서 전신의 발달이 전보를 등장케 했습니다.
전신은 먼 거리에 떨어진 발신자와 송신자가 전선을 연결해 소통하는 방법으로 모르스 부호라 불리는 약속(프로토콜)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도시의 가로변에는 전신주라 부르는 기둥이 서 있는데, 전신주와 전신주를 가로지르는 전선은 원래 전기를 공급하기보다는 통신을 위해 가설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보는 전신을 통해 수신한 메시지를 종이에 기록해 메시지가 최종으로 도달해야할 사람에게 전달하는 서비스입니다. 전신이 전보로 전환되다보니 전신주를 전봇대라 부르게도 된 것이죠. 최초의 전보는 통신의 신속함과 경제성을 생각해 매우 짧은 메시지로 압축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산 사는 사람이 서울 가는 일정을 알리고자 할 경우, “5월 10일 서울역 10시 착”이런 식으로 말이죠.
우리나라 전보는 개화기인 1885년 서울과 인천을 시작으로 확대되어 갔습니다. 인편으로 보내던 연락이 1882년 고종 황제의 칙령으로 설치된 우정총국을 통해 우편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와 비교해 보면 전보의 시작은 매우 빠른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보는 우편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되기 때문에 긴급을 요하는 때에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흔히 ‘축전’이라 부르는 것도 전보의 한 종류였습니다. 지인이 승진하거나, 학교를 졸업하거나, 시험에 합격하거나, 큰 상을 받았을 때 시의적절하게 축하하는 방법이자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전보 사용량이 줄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면서부터입니다. 1990년대 들어 정보화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상황 가운데 눈부실 정도로 통신이 발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FAX가 보급되며 전보와 우편이 가진 기능의 일부를 분담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전보가 문자 메시지만 전달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약도나 도안, 해상도가 낮은 흑백사진을 전송할 수 있었습니다. 전보와 달리 전화회선을 사용하는 FAX는 전화가 설치되는 곳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몇 분 사이로 팩스를 주고 받으며 글자와 그림이 동시에 들어간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 의사소통하는게 가능했습니다. 전신망을 이용한 전보에 비하면 매우 큰 혁신이 이루어진 거죠.
1990년대 후반에는 IMF 극복을 위해 산업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국민PC와 국민인터넷이 보급되며 전자우편이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메일을 당시에는 전자우편이라 불렀지요. 이어 MSN 메신저, 네이트온 등 인터넷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메시징툴이 등장하며 전보는 점점 도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급 전보서비스인 경조서비스 정도만 남았습니다. 경조전보는 고급스런 카드에 메시지를 인쇄해 전달하는 서비스였기 때문에 지인에게 애경사가 생겼을 때 신속하면서도 정중하게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용도에나 적합했거든요. 그러나 이마저도 스마트폰과 멀티미디어 메시지에 강한 카카오톡이 등장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서비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온라인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정착되고 나니, 우선 받을 때는 기쁘지만 예쁜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전보는 점점 더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신속하게 전달한다 하더라도 빛의 속도와 버금가는 통신 속도를 쫓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KT가 제공하는 전보 서비스는 신속전달을 포기하고 특별한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전달하는 정도의 명목만 남은 거죠.
한 때 “Video killed Radio Star”라는 팝송이 유행했었는데, 시대의 변화, 기술의 진보는 과거에 첨단으로 여겼던 것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풍조를 만들어 갑니다. 전보가 사라지고 전보를 대체하는 카카오톡이 등장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구분되는 완전히 다른 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보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 그렇지 두 가지는 동일과정을 거치며 대중에게 각광받는 서비스가 되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전보도 처음에는 단문 메시지로 출발해 축하카드처럼 이미지를 메시지로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꽃다발이나 가벼운 선물을 함께 주문해 전달할 수 있었으니 오늘날의 기프티콘과 유사합니다. 심지어 ‘전신환(電信換, telegraphic transfer)’이라고 돈을 보내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우체국에 돈을 맡기고 돈을 받을 사람에게 전보를 보내면, 받는 사람이 이를 들고 우체국에 가 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통해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와 연동되는 카카오의 송금 기능을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편 전신환의 흔적은 무역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TT 송금’이라 부르는 방식이 전신환 서비스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지금까지 전보와 카카오톡의 비슷한 점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를 포괄하는 가장 큰 공통점은 하나의 서비스에서 출발해 생활 전반으로 파고드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발전하는 점이랄까요? 그러나 전보를 사용하던 시대의 사람들과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지금의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단순히 세대 차이라 볼 수 없는 뭔가가 있음을 느끼고 계시죠? 이를 두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라고 말합니다. 가장 큰 대비는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두드러집니다.
라이프스타일은 독일의 심리학자 아들러의 이론에서 출발했습니다. 아들러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프로이드나 융이 집단과 집단의 무의식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개인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연구 과정 속에 집단과 개인의 생활양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무언가를 형성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죠.
여기에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가 탄생해 지금은 학술용어가 아닌 일상어로 정착된 것입니다. 아들러 이후에는 경영학자들을 통해 소비자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었고, 지금은 의식주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비즈니스의 대세가 된 거죠.
앞으로 가끔씩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상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 의식주와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 정리를 목표로 해나갈 계획입니다. 함께 궁금증을 공유해 나가며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나와 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 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계속되는 연재를 눈여겨 봐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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