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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18)] 사진과 사진가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2.21 15:56 의견 0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일가를 이룬 사람을 말합니다. 사진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을 말하지요. 제가 1991년도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 올 때만 해도 대개 사진가라는 말 대신 사진작가라고 불렀습니다. 그 때 저는 명함에 ‘사진가 김홍희’라고 파서 다녔지요.

소설작가라고 하지 않고 시작가라고 하지 않듯 사진작가라는 말이 저로서는 어색하고 왠지 촌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한국에서 사진가라고 명함을 파고 다닌 사람은 아마 제가 처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 길었습니다.

아무튼 사진가는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으면 결과물로 사진이 나옵니다. 이 때 사진은 사진가의 사유의 결정체로 사진가의 정서, 교양, 성격, 관심, 철학, 그리고 사진 실력(촬영, 인화, 후보정 능력 등)이 한눈에 드러납니다. 이것은 사진가의 내면세계를 찍은 X-레이이거나 MRI에 해당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진을 발표하는 것은 무섭습니다.

모두가 이런 의미를 다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훈련과 숙련을 거쳐 오랜 세월 사진을 보아 온 내공이 쌓여야 보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소수라고 할지라도 무서운 존재들입니다. 한 칼의 내공이 있고 자신의 사진을 위해 평생 무술을 수련하듯이 지존의 자리로 가기 위해(경쟁적 자리가 아닙니다) 인생과 열정을 바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여담을 하고 가겠습니다. 나이가 먹거나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 중에 사진을 잘 찍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전문가 뺨친다는 말이 어울리는 분들이 계시죠.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자신을 빛내면서 사진에도 탁월한 역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진계 에서는 그런 분들에 대한 위상을 높게 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일생을 어디에 투자 했느냐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을 두 번 살 수가 없습니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하나의 일에 투자한 셈이지요.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위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양보를 한다고 해도 인생을 투자한 것에는 승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사진을 창작해 내는 작가든 아니든. 모든 분야에 평생을 바쳤다고 해서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평생을 거기에 투자를 했으면 일회성을 가진 인생의 담론으로는 충분히 그 세월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능력이 있어서 다른 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사진 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납득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 자신이 하는 일을 인정받고 싶다면 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연쇄 고리를 가지고 있는 담론입니다. 실력이 있다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김홍희 작가 제공

그래도 이런 분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자신의 이름을 드날리게 되는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 젊은 비평가들이 새로운 안목으로 비평의 지평을 넓혀가게 될 때입니다. 그 때 이런 분들이 시간을 이기고 살아남습니다. 시간을 이기고 살아남는 분들을 대개 천재라고 부르지요.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고호도 알고 보면 그림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어깨 너머로 공부해서 천재로 남은 작가니까요.

이것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전문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거나 자신과 같은 위치가 아니라면 배척 합니다. 예로 서울에 사는 사진가들이 가지는 기득권도 마찬가지로 작용합니다. 그들은 지역적으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기가 용이 합니다. 그 기득권과 그 권력적 행위로 함께 먹고 삽니다. 나무랄 일은 아니지요.

같은 대학을 나온 사진가들끼리 서로 연결하는 콘체른을 짜서 함께 행동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킵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런 외부적인 일에 대해 너무 반응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진은 지금과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현실과 싸우지만 지금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적이지만 미래적이고 제안적인 특별한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여담이 길었습니다. 사진가가 찍은 사진은 누구의 것일까요 저작권을 인정해 주니 소유권으로서는 작가의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누구 입니까 독보적이고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 입니까 우리는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사회적이고 환경적이며 시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작품 역시 사회적이고 환경적이고 시대적인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계약으로서는 소유가 분명 사진가의 것이지만 좀 더 크게 눈을 뜨고 보면 내 것이라고 말 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인류적이고 대승적 생각입니다. 사진가가 찍은 사진은 개인의 사유 활동으로 그 결과물을 낳지만 그것은 결국 사회적, 환경적, 시대적 창작물이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작가의 작품은 인류의 문제를 건드립니다. 우리가 보통 감동의 공통분모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인류 공통의 화제를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 아닙니까

사진을 찍던 창작을 하던 인류의 한 사람으로 작업에 임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인류를 위해 창작 되는 것. 이런 행위들은 아주 중요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무슨 사진을 찍습니까’라고 물으면 대개 호구지책이라고 말 합니다. 밥 먹기 위해 사진을 한다는 말이지요.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 합니다. 작가는 근사하게 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로 호구지책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당연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지만 멋은 없습니다. 좀 천박해 보이지요. 저의 경우는 일일이 답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답을 하지만 여러분들은 멋진 답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사진은 지금 이 21세기 인류의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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