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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60)] 전시와 비판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5.31 11:34 의견 0

사진작가가 일정 수준이 되면 대개 그룹전에 참여합니다. 여기서 좀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하게 되면 개인전도 준비하고 출판을 꿈꾸지요. 전시와 출판은 작가의 꿈이기도 하고 그 작가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입니.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 일을 진심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그룹전을 자신의 한계로 짓는 분, 개인전 1, 2회 정도에서 자신의 한계를 결정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태권도 도장에 보내 검은 띠를 딴 후, 아이가 태권도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도장에 보내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태권도를 해서 선수로 키울 것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에게 함부로 보일 정도만 아니면 된다고 하는 부모님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주위에는 의외로 이런 분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사진을 한다고 소개를 하면 자신도 왕년에 사진을 했다는 사람. 거기다 개인전도 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저는 요즘도 사진을 하시느냐고 묻지요. 그런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제는 안 한다고 대답합니다.

지금은 안 하고 있다는 대답은 ‘사진을 그만 두었습니다’로 들릴 수 있지만, 개인전 경험을 했으니 사진의 끝을 보았다는 듯이 말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습니다. 저로서는 사진전 한 두 번 한 정도는 아이가 태권도 도장을 부지런히 나가서 검은 띠를 딴 것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검은 띠, 다시 말해 초단을 따고 난 뒤부터가 진짜 사진을 시작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초단은 되어야 몸놀림이 태권도의 동작에 익숙해지고 그에 맞는 몸의 근육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고난도의 동작을 쉽게 이행할 수 있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기본이 바로 초단이지요.

사람들은 초단이 태권도의 시작인 줄은 알지만 개인전 한 두 번이 태권도의 초단에 해당 되는 줄 모릅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이 태권도 초단을 땄다고 해서 3단이나 4단이나 되는 다른 아이와 맞붙여 싸울 엄두가 나겠습니까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의 실력이 초단인 줄도 모르고 사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거나 오랫동안 사진으로 인생의 바친 사람들의 사진에 대해 함부로 판단을 내립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저는 저와 함께 사진을 공부하는 ‘사진집단 일우’ 친구들이 수료를 할 때가 되면 매주 한 번씩 세 차례에 걸쳐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은 사진을 잘 찍지는 못 하지만, 사진을 보는 안목이 엄청 높아져 있다. 어느 사진 전시장을 가더라도 그 전시 사진에 대해 여러분의 비판적 잣대로 말 하지 말라. 혹시 그 전시장의 작가 선생이 와서 여러분에게 자신의 사진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제가 어찌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겠습니까’라고만 답하라”

몇 십 년 동안 사진을 발표해 온 작가가 항상 좋은 작품만을 낼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획기적인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자신의 평년작은 밑도는 작품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전시를 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작품전을 간 것이 그가 수 십 년 동안 한 전시 중에 가장 훌륭한 전시일 수도 있고 가장 나쁜 전시일 수도 있습니다.

전시 한 번 본 것으로 그를 단번에 평가 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지요. 이것은 작가에게도 좋지 않지만 자신에게 그 작가에 대한 편견을 심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소 중의 하나로 작동하기 쉽습니다. 이런 편견은 한 번 머리속에 박히면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작가에 대한 평생 편견으로 살게 될 수 있습니다. 지성인의 기본 태도가 아니지요.

전시를 한 두 번 한 초단의 실력으로 수 십 년 동안 인생을 걸고 사진을 한 사람의 작품에 대해 개인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관객의 몫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발을 불고 다닐 정도의 실력인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는 있겠지요.

전시를 하든 출판을 하든 그것은 개인이 결정할 몫입니다. 그리고 그 개인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남의 전시 역시 존중 해야 합니다. 그 작가의 전시와 출판은 최선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초단의 실력으로 9단에게 훈수를 두는 자신이 아닌지 냉엄하게 돌아 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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