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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 (65)] 촬영과 교감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6.14 12:29 의견 0

교감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접촉하여 따라 움직이는 느낌’입니다. 사전을 뒤져 교감의 의미를 알아보지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훌륭한 사진가들의 강연에도 교감은 자주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교감의 실천적 방법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교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말로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교감은 쉬운 말로 ‘친해지기’입니다. 서로 대화가 통하는 정도에서 촬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람의 내면을 뽑아내거나 사물의 진수를 담을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전 춤을 추는 친구에게 두사람이 춤을 출 때 상대와 교감하는 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연습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몸놀림이 자신의 호흡과 음악의 박자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서로 ‘춤을 통해’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친해지기’보다 한 수 위는 아마도 ‘사랑하기’인 듯합니다. 그 친구가 단서를 달았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고 ‘춤을 통해’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진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물을 촬영할 때는 사물의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시간을 기다려 그 사물의 본질을 드러낼 때까지 인내합니다.

인물 촬영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데는 그저 얼굴만 본다고 사랑에 쉽게 빠지지 않는 듯합니다. 신비로운 무엇인가의 조합에 의해 사랑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이성적인 대화가 좋아서 빠질 수도 있고, 미모에 첫눈에 동하기도 합니다. 미모에만 혹하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그 사람의 표정이나 눈빛 이런 것들이 종합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에나 해당 되겠지요.

실로 마음이 동해 누군가를 사랑하기까지는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다양한 변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델 촬영에 들어갔을 때 저의 경우 셔터가 끊어지는 매 순간마다 모델을 칭찬 합니다. ‘멋지다’, ‘끝내준다’ 등등의 말로 모델을 부추기지요. 그럼 모델도 저의 목소리와 셔터 소리와 스트로보의 충전음에 박자를 맞춥니다. 물론 그 촬영의 양상에 맞는 배경 음악도 한 몫을 합니다.

그러면서 촬영 할 때 정말 모델과 사랑에 빠집니다. 이런 것을 ‘춤을 통해’라고 말 했던 제 친구의 의미가 맞아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촬영하는 동안 모델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 촬영 중에 정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저의 경우 유명인들-연예인 말고-을 촬영하러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잡지나 출판사의 요청에 의해 그런 분들을 촬영가는 경우 촬영 대상의 프로필은 종이 한 장에 불과 합니다. 그렇지만 대개 신문에 오르내리거나 TV에 얼굴이 알려진 인물들이 많지요. 어떤 경우에는 정말 종이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하는 프로필만 가지고 상대를 촬영하러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다음 말을 이어가기 전에 한 마디 꼭 하고 싶은 것은 첫눈에 서로 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남자이고 촬영해야 할 상대도 남자인 경우도 똑 같이 해당 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피촬영자가 저를 본 첫 순간 ‘아......괜찮은 남자가 왔군’이라고 느끼면 그 촬영은 거의 수작으로 남습니다. 상대가 저를 본 순간 별로인 놈이 왔군 이라고 느끼면 수작은 이미 글렀습니다.

그 사람이 유명하던지 그렇지 않던지 이것이 아주 중요 합니다. 첫눈에 카메라를 들고 온 상대의 무장해제를 시키는 것.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좋은 인상과 좋은 이미지와 좋은 에너지를 한껏 충전을 해서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면 그의 눈을 보고 저의 눈으로 선의를 전하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바로 ‘교감’ 입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무소유’로 유명하신 법정 스님을 살아생전 여러 차례 촬영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정중히 예를 드리고 고양이 발걸음으로 당신이 제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촬영을 했습니다. 대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허락 받은 자리라고 부산하게 움직이거나 자신의 움직임을 상대에게 알립니다. 실패의 원인이지요.

한국이 세계에 내 놓을만한 예술가 중에 ‘물파(物派)와 미니멀리즘의 거장 이우환 선생님의 촬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우환 선생님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단히 집중력이 강하신 분이기도 했지만,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반응할 만큼 민감한 분이셨다고 기억 합니다. 이런 분들을 촬영할 때는 정중한 예는 기본이고 그 분이 저의 움직임을 전혀 감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셔터 소리가 크지 않는 작은 카메라를 들고 들어갑니다. 일하고 집중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게 발걸음도 죽이고 셔터 소리도 적은 카메라로 촬영 합니다. 그러다 선생님과 눈이 맞으면 그 자리에 서서 목례만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다시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저는 가만히 서서 선생님의 집중 상태가 저의 발걸음을 인식하지 못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촬영에 임합니다.

이런 것 모두가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조용히 촬영을 하기는 하지만 혹시 발걸음 소리가 나더라도 선생님께서 이해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 일종의 예의의 표현이지요. 이런 자세가 상대가 저를 인정하게 해 주는 주요한 점 중의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의 촬영에 있어서는 제가 그를 좋아하기 보다는 피촬영자가 저를 좋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의뢰 받은 사람들은 거의 다 바쁜 사람입니다. 촬영 시간으로 할애 받는 것이 15분이거나 30분 내외입니다. 이럴 때 난감하지만 해결해 와야 하지요. 그 때 첫 인상도 중요하지만 촬영에 임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정말 진지하고 당신을 존경하기 때문에 좋은 사진을 꼭 찍고 싶어 하는 느낌을 상대가 가지만 시간을 조금 더 할애 받거나 추가 촬영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상대와 교감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교감의 몫은 제가 아닌 상대의 몫입니다. 저의 첫인상과 촬영에 임하는 자세와 자신을 귀히 여긴다는 느낌이 들 때 상대도 저를 귀히 여깁니다. 그리고 평생의 후원자이 되지요.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것이나 촬영하는 것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세우는 것. 이것이 바로 교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태도와 자세에서 나옵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정말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면 상대도 감흥하거나 감동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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